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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롭지 못한 공직생활

by 은반지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2주 가까이 글을 쓰지 못했다. 브런치에게 조용히 혼났다.

'왜 글을 쓰는 것을 멈추고 있느냐. 이제 충분히 쉬었다. 작가님~ 글을 쓰세요!'

여기에는 다 쓸 수도 없는 너무도 난해하고 슬프고 화나는 일들이 나를 할퀴고 갔다.

몇 번 시도는 했다. 하지만 글들은 한 문단을 넘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단어가 아닌 돌멩이들만 정신없이 내 손을 통해서 쏟아졌다.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이어질까 봐

누군가를 의도하여 독을 바른 펜으로 찌르게 될까 봐

쓰지 못한 내 마음은

마음에 쌓이고 쌓여 약을 먹어도 감기를 낫지 않게 했고, 묵직한 바위 덩어리가 되어 뒷골을 잡고 흔들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낫지 않을 것 같았던 감기도 나을 기미가 보이고 뒷골을 잡아당겼던 그 바위도 작은 조약돌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쓰지 못해 참담해졌고 참담해지니 쓰기 싫었던 악순환의 고리는 우연히 본 ebs에서 나태주 시인이 직접 낭송한 시를 듣고 끊어졌다. 지금 나는 벌떡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


사는 일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 비닐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면 된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자.

나를 태울 기차가 방금 떠나버렸다면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땀 흘리며 걸을 수도 있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자.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그래, 지금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진다. 그래 진다.

'사는 일'이 시처럼 지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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