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는 넷이었다. 아들을 낳기 위한 도전은 넷까지였다. 다섯 번을 도전했다면 그땐 아들을 만났을까? 궁금하긴 하다. ㅎ 자매들은 만나면 꿈 이야기를 자주 했다. 밤에 자면서 꾸는 꿈 말이다. 미래에 뭐가 될 지에 대한 꿈 말고. <어젯밤 꿈>은 부모의 방패가 없었던 자매들의 유일한, 돈 안 드는 인생의 방패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를 생각하기엔 현재가 너무 가난해서 커서 하고 싶은 거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가 스무 살, 서른 살까지 살아있을까? 어린 시절 너무 쉽게 죽음을 여러 번 목격했다.(아빠의 죽음, 이모부의 오토바이 사고사, 친척의 자살, 옆집 아주머니가 농약을 먹고 자살, 친구의 동생이 여름 홍수에 쓸려 죽거나, 앞 집 방앗간 아줌마의 아들이 일을 돕다가 기계에 끼어 죽거나...) 살아있음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매들은 어젯밤에 자면서 꾸었던 꿈들을 말하면서 서로의 내일에 일어날 위험들을 막아주려고 애썼다. 내일까지는 자매들끼리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상의 미래는 힘들어도.
큰 언니가 밤에 안 좋은 꿈을 꾸면 아침에 말했다. "오늘 조심히 다니라고, 꿈이 안 좋았어'
시간이 흘러 자매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마흔 살, 쉰 살을 넘어 살아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젯밤의 꿈으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아침부터 전화를 건다.
일을 한참 하고 있던 오전 10시 넘어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야, 어제 꿈에 네가 사고 난 꿈을 꿨어, 오늘 조심해" 우리는 이런 전화에 익숙해져 있다. 나는 "그래, 조심할게. 웬만하면 밤에 집 안 나가야겠다."
어느 날은 내가 큰언니와 큰 형부가 까만색 옷을 입고 기차를 타는 꿈을 꿨다. 언니한테 바로 전화를 했다."언니야, 언니랑 형부가 꿈에 나왔는데, 어디 아프나?" 큰언니가 말했다. "오 그래? 형부랑 한번 병원 가봐야겠다. 알았어 고마워."
또 어느 날은 둘째 언니가 아침에 전화가 왔다. "셋째야, 내가 어제 꿈을 꿨는데 네가 아주 커다란 사람이 돼서 혼자 웨딩드레스를 입고 막 달리는 거야. 느낌이 좋지 않아. 조심해" 나는 "알았어, 느낌이 안 좋네. 조심할게"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대학을 다닐 때 크게 몸살에 걸려 학교 휴게실에 누워 있었다. 잠시 잠든 사이 돌아가신 할머니가 찾아와서 '금방 낫겠네'하셨다. 그때 할머니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할머니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를 보러 왔네'하면서 할머니를 붙잡기 위해 뒤따라 갔었다. 너무 빠르게 사라져 버린 할머니를 보고 얼마나 허망했는지 마음이 아렸다.
자매들에게 꿈은 위험을 경고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빠에게 위로받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멀어서 자주 볼 수 없는 자매들은 서로의 꿈속으로 찾아가 그녀들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오늘은 꿈속에서 저렇게 낚시해볼까?
2020년 2월 즈음,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야, 내가 문재인 대통령이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나한테 상장을 두 개나 주는 거야, 언니 너 시험 잘 되는 거 아니야?"
20년엔 공무직 공채시험을 4월에, 9급 공무원 시험을 7월에 보기로 예정된 상황이었다. 생애 최초로 돈 만원을 주고 동생에게 꿈을 샀다. 이건 보통 꿈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반사적으로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현직 대통령에게 상장을 받다니, 대박. ㅎ
그런데 며칠 후 동생이 "언니야, 내가 시댁에 얘기했는데 시어머니가 상장 두 개니까 하나는 동서한테 팔라고 하는 거야. 동서가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 그래서 서방님이 3만 원 주고 샀어."
나는 말했다. "근데 내가 샀는데 또 팔아도 되남?"
대통령이 준 상장은 두 개니깐, "괜찮아"했다.
두둥 결과는
나는 공무직 시험은 떨어지고, 공무원 시험은 붙었다. 동생의 시댁 동서는 떨어졌다. 상장 한 개는 어떻게 된 건지 미스터리인데, 동생 말로는 내가 공무직 시험 필기시험을 합격해서 그것도 합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내가 상장 두 개를 다 가져간 거 같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꿈은 처음 사는 사람한테 다 간다는 것 ㅎ>
사실 나도 20년 1월 1일에 꿈을 꿨었다. 나는 온 천지에 활짝 핀 분홍색 진달래가 가득한 것을 보고 철철 눈물을 흘렸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이제야 보는구나'하면서 실제로 잠이 깨어난 후에도 내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자매들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언니야. 내가 꿈을 꿨는데 언니 집이 바다 위에 있는 거야, 그런데 언니 네가 막 팔로 노를 저어서 바다 위의 집을 이동시키고 있는 거야" 또는 "막내야, 꿈에 네가 내가 자고 있는 방에 실제처럼 새벽에 찾아온 거야. 무슨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는데"
꿈 얘기를 하며 두세 시간 통화하는 자매들의 모습에 남편들과 아이들은 놀랐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꿈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통화가 끝난 후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