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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n 11. 2022

나는 돈을 주는 기계인가?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계산을 잘하는 것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돈'을 줘도 되느냐였다.

공무원이 된 지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야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퇴근하는 나를 붙잡는다.


W 주무관님은 부정수급 업무를 하셨었다.

서류와 각종 시스템들을 검토하시더니 " 직원이 네 명이야. 네 명의 핸드폰 뒷자리가 똑같아. 사업주 목소리와 지원금 신청인 목소리가 똑같아서 소름 돋았어. 둘이 형제 같은데. 직원 둘은 형님 부부이고, 참 이게 말이 되니? 나머지 둘도 가족관계로 의심이 되는데. 이걸 돈을 줘야 하냐?"


아버지가 사업주이고 직원은 딸 한 명인 사업장이었다. 처음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회계사무실에서 작성해 준 급여명세서, 이체확인증, 근로계약서 등 서류가 깔끔했고 결재요청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그냥 무심코 W 주무관님에게 "샘 아빠가 사업주면 딸한테 월급을 많이 줄 것 같은데 일반적인데요"라고 했다.


w주무관님이 듣다가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한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지금 결재 올리려는 사업장이 그런 구조거든요."

그랬더니 w주무관님이 눈이 동그랗게 되셔서 "야 그걸, 막 주면 안 되지, 근로복지공단에 근로자성 조사 의뢰하고 결과 보고 나서 한번 더 검토해 봐"


나는 순간 '이런 거는 처음부터 교육을 해줬어야 했던 거 아닌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내가 말 안 했으면 어쩔 뻔' 하면서 짧은 시간 잘못의 원인을 조직에 찾아보려고 했지만 다행히 나는 나이가 들어서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 이건 나의 잘못이라고 빠르게 인정해본다.


신규 공무원에게 1부터 10까지 알려주고 업무 담당자의 자리에 앉힐 시간이 조직에겐 없다. 그건 고용노동부 뿐만 아니라 지방직 공무원까지 무엇이 문제이기에 그런가는 그걸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아봐야 할 거 같고 현실은 이렇다.


나는 21년 2월 5일, 팀 발령 동시에 한 지역의 사업장에 각 종 지원금을 주는 담당자가 되었다. 그 지원금을 나는 모르는데 지원금 신청서를 검토하고 돈을 줘야 한다. 다른 신규 주무관님은 "민원인이 이런 지원금 있던데 설명해달라고 해서, 정말 죄송한데 제가 그 지원금 공부하고 나서 다시 전화드려도 되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가는 분명 국민을 도와주기 위해 지원금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간단하게  '그냥 주면 되는 줄 알았다.' ㅎㅎ 아직 공무원 시험공부 발이 남아 있어 지침과 법령을 열심히 공부해서 이삼일 내 지원금의 성격과 종류들을 소화해냈다. 시험에 합격한 자라면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


'그래 이제 해당 지원금에 맞는 서류를 낸 사업장이나 근로자에게 돈을 주자' 마음을 먹고 열심히 서류들을 봤다. 서류가 완벽하면 기분이 좋았다. 일이 금방 끝났다. 어느 순간은 내가 돈을 주는 하나의 도장이 된 거 같았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서류보고 돈 주기, 이게 끝?




어느 정도 지침, 법령과 서류에 익숙해지자 옆 주무관님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로드뷰로 찾아봤는데 그 사업장 건물이 없어. 허허벌판이야, 근데 서류는 완벽하고"

"서울에 사는 4인 가족 주부가 차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작은 도시로 출퇴근을 해, 한 달에 100만 원을 번 데, 어디서 일하는  줄 알아? 시아버지 건물. 거기서 청소한데. 그럼 출퇴근 관련 증빙자료 내라고 했더니 재택근무했데. 아주 당당해"

"근로자일까? 아닐까? 난 아니라고 본다. 가족이 모두 서울에 사는 데 이게 말이 돼?"

 

이렇게 배우는 것이다.  누가 일일이 앉혀놓고 가르쳐주는 게 아니고 일단 일을 하다 보면 주변 주무관님의 한숨소리, 한탄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걸 듣고 배운다. 처음엔 혼자서 독백처럼 읊조리는 선배 주무관들의 말이 귀에 안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들리고 보인다. 선배들은 혼자 질문하고 답하고를 반복하시다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나쁜 의도를 가진 신청인들을 향해 행동을 개시한다. 방법은 다양하시다. 직접  현장 확인하러 가시는 주무관님, 또는 모든 자료 탈탈 털어 나오는 먼지들을 모아 모아서 압박 모드로 관련인 모두에게 전화 조사를 하시는 주무관님, 또는 관련 기관에 각종 조사 공문을 곳곳에 발송하는 주무관님, 또는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서류를 제출케 하는 주무관님 등.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 보면 완벽해 보였던 그 어떤 부분에 빈틈이 생기면서 작은 금이 생기고 그 갈라진 틈에 조금만 힘을 넣으면 반토막이 돼버리거나 산산조각이 나기도 한다. 실제로 양심에 찔려서인지 스스로 지원금 신청을 반려해달라는 분도 있다.


하지만 '증거를 내놓으라'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신청인도 있다. "저 사람이 나빠보입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걸 입증해야 한다. 의심은 가지만 '나쁨의 핵심적 증거'를 찾지 못해 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담당자는 두통과 찝찝함으로 며칠을 무겁게 보내지만 밀려드는 지원금 신청에 잊고 다시 시작해본다.

 

돈을 주는 기계가 아님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는 선배 주무관님들을 보면서 짧게나마 내가 돈을 주는 기계인가라고 생각했던 1년 전의 아니 얼마 전의 나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나도 '돈을 주는 기계'가 아니기에 나만의 조사방식을 만들어 봐야겠다.


그런데 이루기 힘든 목표가 아닐까라는 힘 빠지는 기분이 누구에게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든다.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 사실 그대로를 밝혀가는 그런 조사방식이 있을까?

세금이 허투루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착한 조사, 그런 게 있을까?  왠지 없을 것 같다. 늦깎이 공무원답게 포기도 빨라진다. 그래도 가보자. 뭔가는 있겠지. 결국 찾겠지ㅎㅎ.  

김주무관의 조사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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