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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May 01. 2022

바야흐로 쿨한  '인정'의 시대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과 노신사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기업지원팀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게 보였다. 내 자리는 사무실 문과 대척점에 있어서 흔하지 않은 광경을 바로 목격할 수 있었다. 순간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저분들은 무슨 지원금을 신청하 오신 걸까? 사업주? 근로자?


그들은 계속 직진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으셨다. 나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먼저 노부인이 본인 소개를 하셨다. "우리는 부부예요."

노부인은 중단발의 흰머리 컬이 굵은 웨이브를 하신 후 단정히 묶으셨고, 노신사는 자연스러운 가르마펌을 하신 듯 짧은 흰머리 댄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러? 요즘에 40 중반을 넘어서도 출산을 하는 경우도 있기에, 설마 출산휴가는 아니실 거고. 일단 내 주 업무가 이런 지원금들이다 보니 이런 생각을 막 하면서, 막 무슨 말을 입 밖으로 내던져야 하는지, 마스크 안 속 내 입술이 꿈틀거리고 있을 때,

 

노부인께서 수줍게 말을 거셨다.

"국가에서 가족을 돌보면 지원금을 준다 해서 왔는데요."


나는 '아무 말도 먼저 안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생각하며

" 아, 네, 코로나19 가족돌봄비용 신청하러 오셨나요?"라고 했다.


코로나 19 가족돌봄비용 담당자는 따로 있지만 신청이 폭주하는 시점에 모성 업무 담당자들끼리 조금씩 분담을 했었다.  그제야 '맞다. 이 업무도 내가 하고 있었지?' 이상하게 안도감이 몰려왔다.  상담은 이어졌다.


노부인은 노신사를 가리키며

'우리 둘이 직장 퇴직하고 서로를 집에서 돌보고 있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국가에서 비용 지원을 해 준다고 해서 버스 타고 상담하러 왔어요.'라고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느낌이 뭐랄까. 굉장히 또박또박 묻는 모습이 해맑은 초등학생 같았다. 죄송한데(?) 상당히 귀여운 노부인이셨다. ㅎㅎ


나는 정말 설명을 쉽게 잘하는 친절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자, 선생님 코로나 19 가족돌봄비용이란~~~~~~~ '


나는 눈앞에서 나 좀 받아달라고 애쓰며 울려대는 전화도 받지 않고(일반적으론 앞에 민원인에게 죄송합니다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는다. 전화가 길어지면 이번엔 전화 민원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앞에 상담하는 분이 계셔서 하고 끊는다.) 집중해서 설명을 해드렸다.


노부인과 노신사도 맑은 눈으로  말에 귀 기울이셨다. 노부인은 설명이 끝나자 애썼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시더니


"아,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일하시는 데  시간을 뺏었네요. 죄송해요. 우리가 코로나 걸린 적 없어서 안 되겠네." 멋쩍어하시면서 노신사에게 "우리 버스 타고 집에 갑시다" 하셨다.


노신사도 백 퍼센트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허허, 그런 지원금이었군" 하셨다.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온갖 정보를  검색해서 찾아낸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설명을 해주면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를 '못' 하는 것보다는 이해를 '안' 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인정하면 혜택을 못 받으니깐, 그냥 끝까지 인정을 안 하는 거다.


어떤 민원인은 '내가 법을 해석할 줄 아는데'라고 하면서 본인 주장을 펼친다. 어떤 민원인은 '담당자보다 내가 더 많이 안다'라고 시작을 한다. 어떤 민원인은 '네 00(포털사이트)에서 그렇게 말했다'라고 본인 의견을 꺽지 않는다. 어느새 네 00도 사람이 됐다.  


하지만 노부부는 티브이나 인터넷에 나온 정보들이 많이 생략된 것임을 알기에 정확하게 알고 싶어 담당자를 찾아온 것이다. '나의 유리함'이라는 색깔은 칠하지 않고 담당자의 말을 듣고 삭제된 정보를 메꾸자 답이 나온 것이다. 쿨하게 '난 안되네.'


바야흐로 쿨한 인정의 민원들이 더 나타나기를......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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