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관의 글은 계속 퇴짜 당하는 중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선 두 개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나름 내부 검열이다.
1차 검열 단계는 '나'다. ENFP인 김주무관의 기준은 굉장히 개방적이라 웬만하면 다 통과한다.
'나'를 통과하면 2차 검열 단계로 넘어간다. 2차는 남사친이었다 남친이었다 남편이 된 계장님이 담당하고 있다. 공직생활 10년이 넘는 ISTJ 계장님의 칼 같은 '자고로 공무원이란' 기준에 의해 글들은 '헤쳐 다시모여'가 된다. 어떤 글은 헤쳐 모이지도 못하고, 작가의 서랍 속이라는 '뒷방'에 갇히기도 한다.
1시간 정도 걸려 쓴 개구쟁이 같은 글들은 검열 시스템을 통과하면 선비의 도포 냄새가 입혀지면서 조금 공무원스러워진다.(*공무원스러워지다: '폴짝폴짝' 뛰어다녔던 김주무관의 마음과 정신을 '풀썩' 앉혀놓는다는 것) 하지만 최근 두 달 동안 두 단계를 통과한 글이 없다. 이러다가 브런치 문을 닫게 될까 봐 불안함에 서둘러 몇 자 적어본다.
먼저, 내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뒷방신세가 된 나의 몇 개의 글들을 소개해본다.
예를 들어 특별? 한 팀 점심식사에 대해 쓰려고 했더니 :
계장님은 "음, 아무래도 그 '특별'에 대해 쓰는 것이 아직은 시기상조다. 당신 공무원 퇴직 후 쓰는 걸로"
이건 기획단계에서 무산됐다. 그래서 작가의 서랍에 제목만 적어놨다.
또 특별? 한 민원인 에피소드를 써 봤는데:
계장님은 "음, 그 민원인이 나중에 어디선가 당신의 글을 보고 그 '부분'에 대해 소송을 할 수도 있어, 당신 공무원 퇴직 후 브런치에 발표하는 걸로"
그다음엔 업무 에피소드를 써 봤는데:
계장님은 "음, 너무 많은 다른 주무관들이 등장하는데, 조심스러워, 이건 써 놨다가 10년 후에 발표하는 걸로"
최근엔 태어나 처음 해 본 전쟁훈련=을지훈련 이야기를 재미있게 써 봤다. 아무리 ENFP라 해도 전쟁이니 국가기밀(?)은 절대 적지 않았다. 계장님은 "전쟁 훈련을 공개적으로 글로 쓴다는 거 자체가 위험한 발상인 듯 해, 특히 전쟁훈련인데 가볍게 쓸 주제도 아닌 거 같고, 이건 당신 공무원 퇴직 후 쓰는 걸로? 사실 이건 아예 앞으로도 안 썼으면 해"
"요즘 우리 00청에서 이런 게 핫한데, 이거 써볼까?"
계장님은 " 그건 일반적으론 문제가 안 될 거 같은데 굳이 김주무관이 쓸 내용은 아닌 거 같은데, 공무원에 대한 시선도 있고". 나는 "그래 이것도 썼다가 공무원 퇴직 후 발표하는 걸로. "
이렇게 내 글은 계속 퇴짜를 당하는 중이다.
내 글이 왜 계속 퇴짜를 당하는 것일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계장님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내 글이 '공무원'이 주제임에도 신선하고 유쾌하다고 했다.
문제는 '나'였다. 처음에 나는 조직을 편견과 선입관 없이 어린아이처럼 보고 들었고 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조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보게 되자 자꾸 의문이 생겨났다. 이것은 조직에 대한 나의 시선을 만들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못한 거친 시선들을 계장님은 우려하고 있었다.
고작 1년 7개월의 시간을 보낸 나의 조직에 대해, 조직원에 대해 나는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 글이 나의 단어가 조직과 조직원에게 꿈을 주는 무지개는 못되더라도 상처를 내는 무기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내 생각을 내 글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 같다. 난 길을 잃은 듯 두 달 정도 브런치에 글을 못 올렸다.
브런치는 작가님의 색깔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드럽게 주기적으로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김주무관의 색깔은 무슨 색으로 할지, 김주무관의 시선은 어때야 하는지 정하지 못해 글을 못 올리고 있다. 공무원 작가로서 질풍노도의 시기가 온건가.
김주무관이 헤매고 있는 이 길에 답은 있을 것이라고 믿어본다. 믿으면 보이겠지.
<사진출처: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