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 후안 비딸리오 아꾸냐 초등학교
수상쩍은 용모의 외국인이 초등학교를 기웃거리며 내부로 진입을 시도한다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아마도 이러한 유사시에 대비한 매뉴얼은, 사회 안전도에 따라 국가별로 조금씩의 차이가 있겠지만,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며 여기에는 어떠한 용무가 있어 방문하였는지 의심 어린 질의가 이어진 후, 마뜩잖은 답변이 돌아오거나 아예 용건을 답하지 못할 경우 이 구역에서 벗어날 것을 권고 또는 명령하고, 이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완력이나 더 나아가 경찰력이 동원될 수도 있겠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수위 아저씨의 싸리 빗자루가 막아설 가능성이 높고, 미국이라면 곧장 권총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숙소를 나서 올드 아바나로 가는 길에, 나는 초등학교 하나를 발견했다.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 초등학교(Escuela Primaria)라고 적힌 간판을 용케 읽어내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지극히 평범한 건물에, 키가 높은 문이 활짝 열려있고 그 안에 조그마한 홀이 놓인 곳이었다.
여행 중에 개방된 대학교 안으로 잠입해 강의실, 도서관, 전산실, 학교식당 등을 염탐하고 빠져나온 경험은 몇 차례 있었지만, 초등학교, 그것도 쿠바의 초등학교라니. 나비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호기심에 두 다리가 뻣뻣이 굳어 쉽게 지나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나는 수상한 행색으로 그곳을 기웃거리는 짓을 감행한다.
토요일을 맞아 한산해 보이는 학교 현관에는 형광등 하나 켜져있지 않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많지 않다. 헝클어진 화초들이 담긴 낡은 플라스틱 화분 몇 개가 놓여있고, 그 뒤의 벽에는 카스트로를 비롯해 몇 명의 흑백사진들이 붙은 알림판이 겨우 보인다.
안쪽에 놓인 책상에는 선생님인지 학부모인지 알 수 없는 어른 몇 명이 모여있다. 종이를 오리고 글씨를 써넣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데, 딱히 우리 부부의 등장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그 무관심에 안심한 나는 조금 더 과감해져서 경계를 넘어 두어 발 슬그머니 걸어 들어갔다. 알림판에 빼곡히 적혀있는 저 이야기들은 무엇에 관한 것인지, 혹시나 교실이 들여다보이지 않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 어두운 복도 안쪽에서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 한 분이 걸어 나왔다. 아마도 우리의 수상한 행동거지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음에 망설임이 없다. 나는 들여놓은 걸음을 다시 물러서며 손을 들어 사과의 뜻을 전하는데, 어느 틈에 벌써 코앞에 다가온 노인이 그 손을 덥석 잡는다.
“¡Hola!”
벙글벙글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노인의 손을, 나는 홀린 듯 맞잡고 악수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길에 궁금해서 잠시 들어와 봤어요.’라는 말을 도대체 스페인어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릿속이 복잡한데, 노인은 내 의중 따위 관심에도 없는 듯 손을 흔들며 혼자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낸다.
그러더니 우리 둘에게 손짓으로 건물 안쪽을 가리키다가,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 주뼛거리고 있는 나의 팔을 톡톡 치며 건물 안으로 안내해 들어간다.
아내와 나는 이 상황에 대해 굳이 소곤소곤하면서 모국어로 긴급회의를 주고받지만, 일이 너무도 순식간에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래, 아이들의 공간에 먼저 문을 넘은 것은 나였으니 어쩔 도리가 없이 연행되어 가는 수밖에 없다. 한낮의 초등학교에서 무슨 험한 일이야 당할까.
어리둥절 따라간 곳은 1인 사무실로 쓰이는 어느 방이다. 입구를 마주 보는 육중한 책상 위에 서류와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그 뒤로 중년의 여성 한 분이 앉아 서류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서자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노인은 더욱 기분이 좋아진 투로 대뜸 우리에게 그녀를 소개한다.
“이 분이 이 학교의 디렉또라입니다.”
‘Directora? 교장 선생님이라고?’
이 무슨 느닷없는 접견이란 말인가.
“어서 오세요. 이 곳은 후안 비딸리오 아꾸냐 초등학교입니다.”
잠깐의 정황 정리도 없이 곧장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대한 소개가 스페인어로 이어진다. 절반 이상 알아듣지 못한, 짧지 않은 학교 소개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교장실에 끌려온 문제아들처럼 두 손을 공손히 포개 모으고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마치 오늘 예정되어 있던 방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환영식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가 누구이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한마디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굳이 나의 국적이며 이름 등을 초급반 스페인어를 활용해 몇 마디 덧붙인다.
90도 인사로 뒷걸음치듯 교장실에서 나온 후, 이번에는 노인이 건물의 더 안쪽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노인의 정체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수위인지 선생님인지 아니면 학부모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만.
열린 문으로 슬그머니 들여다본 휴일의 교실에는, 책상을 한편으로 밀어낸 공간에서 아이들의 무용 연습이 한창이다. 한가운데 커다란 기둥 하나가 높은 천장을 버티고 서 있고, 작은 칠판과 브라운관 티브이 세트가 마련된 공간이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조심스레 던져 본 그 질문에, 노인은 벙글벙글 웃는 얼굴로 검지를 까딱까딱거리며 카메라가 좋아 보이니 많이 찍어달라고 도리어 부탁을 해온다.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입장에도 대수롭잖게 이어지는 아이들의 무용 연습을 잠시 감상하고,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히 카메라에도 담아낸 후 교실을 나와보니 이제 노인은 아예 사라지고 없다.
우리의 시찰은 이제 안내인 없이 조금 더 이어진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아이들이 꾸며놓은 알림판 앞에 서서 글도 몇 자 해독해 보고, 운동장으로 보이는 안뜰도 한 바퀴 거닐어본다.
학교를 나서는 길에 다시 마주친 노인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사진 많이 찍었냐면서 힘차게 악수를 흔들고 문 앞까지 배웅을 나서 준다. 나는 정말 멋진 곳을 보여주셔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더듬더듬 몇 번이나 건넸다.
이것이 쿠바 여행의 첫날, 첫 외출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학교의 이름이 된 후안 비딸리오 아꾸냐(Juan Vitalio Acuña)는 학교 입구의 게시판에 선구자(pionero)라는 타이틀로 사진이 걸린 인물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읽고 쓰는 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피델과 체 게바라를 따라 혁명에 나서 큰 공을 세웠고, 쿠바 혁명 후 체를 따라 볼리비아로 넘어갔다가 배신자의 꾐에 빠져 게릴라 그룹과 함께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