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런던은 아직도 마르크스의 유령이 두렵다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서

by 후안

이번 여행은 애초에 스코틀랜드로, 그곳에서도 스카이 섬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계획했다. 런던에서 그리 긴 시간을 보낼 생각은 아니었건만,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북쪽으로 향하는 야간열차의 일요일 침대칸이 매진되는 바람에 하루가 더 늘어나고 말았다. 여행 중에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공항이 파업을 하거나 악천후로 인해, 아니면 아예 쿠바에서처럼 일언반구 해명도 없이 예약해 두었던 비행기나 기차 편이 사라지기도 하니까.

뜻하지 않게 늘어난 일정이라면, 꼭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마음을 접었던 곳을 여유를 가지고 찾기에 좋다. 영국의 위대하신 역사는 충분히 감상하였으니 마음속에 깃발을 꽂아두었던 곳, 마르크스의 묘지를 향해 길을 나서 본다.


런던 여행자의 주요 동선이 그려지는 곳, 템즈강을 끼고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티 오브 런던,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를 벗어나는 길이다. Zone으로 구분하자면 Zone 1에서 3으로 가는 길. 위치도 애매해서 택시가 아니라면 어느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이니, 가는 길에는 버스를,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면 걷는 내내 내리막길만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세인트 판크라스 옆에서 한참을 기다려 올라탄 버스가 캠든 지역을 길게 종단해 달린다. 런던에 있는 동안 엄청나게 마셔댔던 캠든 맥주의 브루어리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하고 두리번거리는 사이, 차창 밖 거리에 중심가의 번화함이 지워진다. 이내 낮은 황갈색 빅토리안 하우스들이 어깨를 맞대며 이어지고, 단출한 상점들마저 띄엄띄엄해지다가, 이제 하이게이트 힐이구나 싶은 오르막이 나타날 때쯤엔 넓은 정원과 벽난로 굴뚝을 가진 예쁜 집들이 등장하면서 주변으로 나무와 숲들이 울창해지기 시작한다. 좁은 언덕길을 느릿느릿 오르며 사람 사는 동네를 엿보는 재미가 있는 길이다.


마르크스가 묻힌 하이게이트 묘지공원은 캠든 지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오르막길이 이제야 끝났구나 싶을 때쯤, 목적지인 하이게이트 웨스트 힐 꼭대기에 도착해 버스에서 하차한다.

우리를 뒤따라 내린 또래의 부부가 있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우리처럼 하이게이트로 가는 모양인데, 그쪽도 초행길에 길도우미가 필요한 것 같다. 길가의 펍 하나가 너무 예뻐 사진에 담고 있는데, 혹시 하이게이트 묘지로 가는 길이냐며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이미 우리 부부의 모습에서 그 답을 읽었으리라. 이 조용한 동네에서 카메라와 구글맵을 손에 쥐고 두리번거리는 사람이라면 갈 곳이 거기밖에 없겠지.


“맞아요, 묘지로 가는 중이에요.”

“혹시 가는 길을 아세요?”

“예, 알고 있어요. 이 길을 돌아서 내려가면 돼요. 같이 가요.”

“오, 고맙습니다.”

“사실은 저희도 여기 처음이에요. 두 분은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희는 영국 사람이에요. 런던 여행 중이고요.”

“아, 저런. 두 명의 영국인이 방금 한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런던의 길을 물으신 거군요.”


시시한 농담에 한바탕 웃음으로 화답해주는 다정한 사람들이었지만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영국 부부가 버스가 너무 늦게 온 탓에 오후 약속 시간에 늦을 거 같다며 작별을 고하고는, 알려준 길로 뛰다시피 앞질러 나갔기 때문이다.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 싶어 어느 쪽 묘지를 가느냐고 물으니 서쪽으로 간다고 한다. 하이게이트 묘지는 스웨인스 길을 경계로 두 곳으로 나뉘는데, 우리가 가는 동쪽 묘지와 달리 서쪽은 가이드의 투어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다.


스웨인스 길에 접어들어서 지도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본다. 과연 이 길이 맞는 걸까. 무려 마르크스가 묻혀 있다는 런던의 유서 깊은 공동묘지의 입구가 이런 좁아터진 일방통행로에 뚫려있다고? 길을 따라 감옥의 담벼락 같은 높은 벽돌 담장들이 이어지고, 그 너머에서 자라난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컴컴하고 축축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이미 내가 안내해 준 길로 두 영국 부부도 내려갔으니, 양심상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없다. (다시 돌아서 올라오지 않는 걸 보니 아마 맞겠지.) 그렇게 가파른 내리막길을 천천히 산책 걸음으로 따라 내려가다 보니, 구글께서 점지하신 묘지 입구가 마침내 나타나 우리를 안도케 했다.


동쪽이든 서쪽이든 이 묘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굳이 입장료가 아니라 자선 기부 명목임을 말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돈을 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많은 정치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잉글랜드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이 무료입장인 점을 고려하면, 이 묘지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은 조금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워낙 오래된 묘지라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은 데다, 그 중후한 원숙미를 해치지 않으면서 쾌적한 공원의 모습으로 가꾸는 데는 분명히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충분히 수긍이 가고, 그에 보탬이 되는 얼마간의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다만, 바로 옆에 아름다운 워터로우 공원이 있으니 굳이 돈을 치르고 이곳에 산책이나 소풍을 위해 오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고, 결국 묘지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기꺼이 6천 원쯤 되는 돈을 내고 이곳을 찾는 것이니, 따지고 보면 죽은 자들의 구경값을 내야 하는 명분이 궁금한 것이다.

이에 나는 이러한 의심을 던져본다. 저기 묻힌 마르크스에게, 당신이 예견했던 바와 달리 이 영국 땅에서 태어난 자본주의는 결코 몰락하지 아니하였음을, 당신의 무덤마저 볼거리로 만들어 돈을 벌 정도로 아직 이렇게 뻔뻔스럽고 건재함을, 4파운드짜리 입장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알려주기 위함은 아닐까.


악질적인 망상은 거기까지. 친절한 매표소 할머니에게 입장료를 치르고, 묘지 지도도 한 장 받았다. 지도에 가볼 만한 묘지 몇 군데를 표시해달라고 부탁하니, 다정한 설명한 함께 열심히 표시를 해 주신다. 그 표시를 지침으로 지도에 그려진 올가미 모양의 큰길을 따라 한 바퀴 폐곡선을 그려 돌아보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 묘지나 그러하듯 이곳도 역시나 고요함이 가득하다. 가끔씩 짝을 찾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바람에 몸을 떨어대는 나뭇잎의 소리만 잔잔히 들려온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을 맞이하는 계절이라 조금씩 낙엽이 떨어져 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묘지에는 아직 초록이 가득하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죽은 자의 양분을 받아 빽빽한 숲을 이룬다. 미처 관리되지 못한 묘비를 휘어감은 덩굴들마저 아직 싱싱해, 다른 묘지들과 달리 죽음보다는 생명의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굳이 우리의 장묘문화의 기준을 들이대자면 이런 곳은 명당은커녕 흉당에 가까운 자리가 될 것인데, 주변의 큰 나무들이 뿌리를 깊숙이 후벼 감고, 높이 그늘을 드리워 결코 양지바른 자리도 아닌 데다, 멀리 자손들의 사는 곳이나 큰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절대 아니다. 묘비는 빽빽하고, 축축한 낙엽도 쌓이고 벌레도 많이 돌아다닐 것이 분명한 곳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곳이, 산 자들, 살아서 죽은 이들을 만나러 오는 이들에게는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곳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무릇 조상님의 공덕은 땡볕에 돗자리와 과일, 술, 북어포, 전동 예초기 등을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고행으로 치성드릴 수 있는 것이라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 이 곳에 박혀있었는지 금이 가거나 아예 쪼개어진 묘비들, 땅이 꺼진 것인지 불어오는 바람과 날아든 새의 체중에 오랜 세월 밀린 것인지 삐뚤빼뚤 똑바로 서지 못한 묘비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며 길을 나아가는데, 드디어 저 멀리 흉측할 정도로 거대한 마르크스의 두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On the 14th of March (1883), at a quarter to three in the afternoon, the greatest living thinker ceased to think.”

엥겔스의 부고 발표에 따르면 “이제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위대한 사상가”가 잠든 곳이다.


일요일 아침의 묘지공원에는 아직 우리 부부 말고는 인적이 없어서, 덕분에 마르크스의 묘비를 찬찬히 독대할 기회를 가진다.

지난 2월, 누군가의 망치 공격으로 비석이 훼손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멀쩡해 보인다. 복원이 잘 된 것인가 가만히 손으로 만져보니 돌이 아니라, 아뿔싸, 사진이 출력된 아크릴 판을 덮어놓은 것이다.

그 훼손 행위가 있고 얼마 뒤에는 붉은 페인트 글씨로 온통 뒤덮이는 반달리즘에 당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누군가 야밤에 묘지의 담을 넘어 들어와 한 바퀴 빙 둘러가며 열심히 적어놓고 간 문구들은 이러하다.

“볼셰비키 홀로코스트 기념비”, “1917~1953, 6천6백만 명 사망”, “빈곤의 이데올로기”, “증오의 독트린”, “대학살 테러, 억압, 대규모 살인의 설계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집필한 <공산당 선언>의 머리글은 “하나의 유령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유령 또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1989 혁명을 기점으로 공산권이 붕괴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그 하나의 유령은 아직도 유럽을 떠돌고 있을까.

분명히 확인되는 사실은, 아직 그 유령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마귀 들린 자를 묶고 기름을 끼얹어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이, 흡혈귀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고, 늑대인간에게 은탄환을 쏘는 것처럼, 이제 와 저 유령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도록 퇴마 의식을 행하는 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묘지 측은 거둬들인 입장료로 이곳에 CCTV라도 얼른 설치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언제고 저 숲 안쪽에 놓인 마르크스의 진짜 묘소를 누군가 부관참시하여, 정말로 분노한 유령을 다시 일으켜 세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라 인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아까 만난 영국 부부가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서쪽 묘지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물어보니, 거기는 투어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어서 여기로 왔다고 한다. 준비성이 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단단히 준비하고 해외여행을 떠나온 우리와는 달리 여유를 가지고 찾아올 수 있는 사람들이니 충분히 이해는 간다.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는 눈치다. 그쪽 아내가 갸우뚱거리며 “그런데 마르크스가 왜 런던에 묻혔는지 알 수가 없네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냥 잠자코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만 “음, 저는 좀 알아요.”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궁금증이 더욱 커진 그 둘의 표정에 제대로 응답해야 하는, 잘난 척 나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계, 마찬가지로 독일인이었던 엥겔스가 영국에 살고 있었던 이유, 함께 공산당 선언을 썼던 일, 마르크스의 영국 망명과 뉴욕 데일리 트리뷴 특파원 생활, 엥겔스의 재정적 지원까지 어디서 이야기를 시작해 어디서 그쳐야 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영국인에게 영어로 설명해야 하다니. 우선 엥겔스를 아느냐고 물어본다.

“엥겔스? 그게 누구죠?”라고 되물어 오니, 더욱 막막해질 따름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주 짧은 대답을 만들어내었다.

“마르크스가 영국으로 도망 와서 아주 가난한 생활을 했는데, 그의 친구 엥겔스가 도와줬어요. 아주 부자였거든요. 친구이자 스폰서였죠. 그래서 마르크스가 죽었을 때, 엥겔스가 장례를 치러 준 거죠.”

앞뒤를 다 잘라먹은 이 스토리가 어느 정도 만족이 되었는지 다행히 고개를 끄덕여 준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말한 마르크스의 바로 맞은편에는 사회진화론을 이야기 한 허버트 스펜서의 무덤이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 재미있어 보인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두 사람이 일어나 앉아 캠든 맥주를 벌컥이며 맥주는 역시 독일이지 아니 영국이지 티격태격해가며 인간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저 멀리 은하수로 여행을 떠난 더글라스 아담스의 조그마한 비석 앞에는 찾아온 팬들이 선물한 펜들이 잔뜩 꽂혀있다. 저 멀리 성간을 여행하는 기나긴 길에, 멈추지 말고 그 재미난 이야기들을 계속 써 내려가 주기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제대로 된 6권을 완성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종이도 좀 같이 갖다 놓아준다면 더 좋겠지만.


큰 길을 따라 묘지를 돌아보는 산책을 끝내고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 다시 매표 사무실을 통과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까는 보지 못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르크스의 인형, 스티커, 일러스트북 같은 굿즈들이 진열대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기도 애석하기도 허탈하기도 깜찍하기도 한, 온갖 감정이 오묘하게 마음속에 뒤섞이게 되면, 우리의 신체가 보일 수 있는 감정 반응은 하나뿐, 나는 너털웃음을 쏟아내며 매표소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