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이야기

저기 먼 바닷가에, 골렘을 유기하고 돌아온 이야기

by 후안

젖은 모래를 그러모아 인간의 형상을 빚는다.


자꾸만 흩어지는 거친 모래를 열심히 주물럭거려 모아 보지만, 내 마른 두 손바닥은 평생 조소(彫塑)에 재주를 보인 적 없다. 고작해야 한겨울의 하루 이틀 정도, 동그스름한 눈사람의 얼굴을 빚어본 것이 전부.

그러니 모래바닥에 드러누운 얼굴의 생겨먹은 꼴은, 만지면 만질수록 우스꽝스러워지기만 할 뿐이지.




남은 해가 길지 않다. 더 주무른다고 조금이나마 모양새가 나아질까. 그래, 이쯤에서 조물주의 무책임함을, 대충대충, 적당히 마무리하는 기술을 떠올려야지.

그 기술이라 하는 것이, 제각기 멋대로 생겨먹은 얼굴의 모양새부터, 목숨을 바쳐 우주의 이치에 심오하게 다가서거나 아예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전혀 다른 골상과 두뇌의 생김새, 몹쓸 병을 물려받아 고통스러운 말년 끝에 비참히 죽거나 백 년을 무병장수하다 잠결에 죽을 팔자, 혹은 고종명(考終命)할 운명을 맘대로 결정하는, 하다못해 홍채의 색깔과 정수리에 돋아난 머리카락의 곱슬거리는 정도, 대화중 풍기는 입냄새의 농도까지, 모조리 무작위 주사위 노름 아래 던져버리는 것이니, 바로 지금, 그 무책임함을 흉내 내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래, 그분이 나를 빚으며 그러하셨듯. 적당한 수준에서, 대충, 뭐 이만하면 됐지, 싶을 때쯤 손을 뗀다.

창조하는 모든 인간들이 기억해야 할 말, “대충”. 지금은 사람의 형상이면 족하다. 대충, 짐승과 구분되는 사람의 모양이면 된 것이다.


정작 중요한 의식은 이다음이다. 워낙 조심스럽고 민감한 절차이기에, 내가 당시 주머니에서 슬금 꺼내어 참고한, 3천 년 가까이 비밀리에 전수되어 온 인스트럭션의 일부를 기꺼이 아래에 공개하는 바이다.




* 사제들은 기록된 의식을 순서를 따라 정확히 진행할 것.


1. 형상의 귓바퀴가 온전히 붙어있는지 확인한다. 귓등이 불완전한 경우, 아무리 또박또박 명령을 내려도 제멋대로 명령을 귓등으로 듣고 함부로 왜곡해 위험한 행동을 할 위험이 있음이다.


2. 머리통이 바스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살금살금 한쪽 귓구멍을 파낸다. 양쪽을 파낼 경우, 주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위험이 있으므로, 최초에는 한쪽만을 파내도록 한다.


3. 전수받은 비밀의 고대 주문을 귓구멍 가까이 대고 2회 이상 암송한다.

지역별, 인종별, 어족별로 발음상의 차이가 있음을 양해하지만, 가능한 정확한 발음을 시도할 것. 특별히 발음이 어려운 구간의 경우 3~5회 반복을 양해한다.

예시) “데쓰삐에르따에쓰데마씨아도따르데빠라라에쓰꾸엘라!”


4-1. 주문 암송 후에도 1~2분 내로 반응이 없을 시, 형상을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형상을 빚는다.


4-2. 주문 암송 후, 창조물이 눈을 뜨고 호흡을 시작하면, 곧바로 다음 명령을 입력할 것.

4-2-1. “골렘, 너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어.” / “저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4-2-2. “골렘, 너는 창조주인 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해.” / “저는 창조주인 당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합니다.”


4-3. 골렘이 위 명령을 복명복창하지 않을 경우,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즉시 파괴하여 분자 상태로 되돌릴 것.




이러한 지침에 따른 나의 진행상황은 아래와 같다.


1. 양쪽 귓불에 마른 모래를 살살 뿌려가면서 단단하게 굳힌다. 이제 어지간한 바람에도 무너져 내리지는 않으리라 확신이 생긴다.


2. 머리통이 바스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살금살금 한쪽 귓구멍을 파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않도록, 오직, 한쪽만 열심히, 깊숙이, 행여 내 목소리가 막히지 않을까, 지침서의 가르침보다 더 깊이. 더 깊이.


3. 비밀스럽게 전해받은 고대의 주문을 외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귓구멍 가까이 입술을 갖다 대자, 형상의 귓구멍 안에서 바스락바스락 무언가가 빠져나온다.


3-1. 겁에 질린, 눈먼 소라게. 바쁘게 발을 움직여 파도의 소리를 찾아간다.


3-2. 다시. 비밀스럽게 전해받은 고대의 주문을 외자, 나의 골렘이 그 허연 두 눈을 크게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세상을 처음 보는 모든 산 것들이 그러하듯, 나의 골렘도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트린다.

다만, 나는 하얀 조개껍질로 혀를 심어주었기에, 나의 골렘은 처음부터 질문을 던지며 울부짖는다.


“으아아아앙!”

- 울지 마, 골렘. 이제 웃어야 할 일이 더 많을 거야.”


“여기는 어디입니까!”

- 여기는 지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물의 행성이지. 마른땅에 태어난 걸 환영해.


“저는 누구입니까!”

- 너는 골렘이야. 그리고 나는 너를 이 곳에 부른 사람이지.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


3-3. 골렘의 귀에 속삭였다.

3-3-1. 잊지 마 골렘, 너는 자유야.

3-3-2. 태양이 떠오르고 젖은 두 다리가 마르거든,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든 가도 좋아.


깜짝 놀란 골렘은 마침내 비명을 멈추었다. 천천히 물기가 마른 두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지금 자신이 놓인 세상의 꼴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모래알에 묻어있는 선조 골렘들의 유해 속 기억을 더듬어, 단 한 번도 이러한 자유의 약속이 허락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침내 나의 골렘은, 고마움에 소금기 가득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얌전히 이 자리에 누워 해를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자꾸만 흐르는 눈물로 뭉개지는 골렘의 광대뼈를 매만져 세워주다가,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뻗어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알려주고는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새벽, 두꺼운 비구름들이 동풍을 타고 높은 산을 슬금슬금 넘어왔다. 차곡차곡 두께를 높인 비구름이 수평선까지 길게 하늘을 덮어나가면서, 아침은 물론 한낮까지도, 그리고 그날 밤까지도, 검은 구름에 가려 태양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대신 크나큰 비가 이 곳에 쏟아질 예정이었다. 나는 그전에 서쪽의 큰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둘러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큰길을 따라 달리는 그때, 아니나 다를까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와 육지를 뒤집을 기세로,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빗물 속에 모든 약속이 지워진다.

사랑도 살아서야 하는 것.

살고 싶은 자들이 저마다의 탈것에 올라, 서쪽의 산을 넘어 마른땅으로 닿기 위해 물먹은 엔진에 불을 댕겨 아스팔트 위로 올라선다.


나도, 한 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차를 내몬다.

길 바깥에는 이미 서행마저 포기하고 비상등을 깜빡여 항복 선언을 한 차량들이 줄줄이 쓰러져있다.

차 안에는 이제 다가올 급류에 두려워하며, 누구 하나 달아나지 못하도록 어깨를 꾹꾹 눌러 얼싸안은 혈육들이 타고 있다.




한 치 앞의 시야가 물결로 뭉개지고, 무거운 빗물이 차 지붕을 뚫을 듯 쾅쾅쾅 두드리고, 차창을 깨부술 것 같이 쏟아지는 억수 줄기 속을 엉금엉금 지나면서,


나는 보았다.

낡은 우산을 주워 쓰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누런 모래 손을 흔들던 나의 골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