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의 혀는 입의 혀 같지가 않아서

제 혀를 깨무는 일에 관하여

by 후안

혀를 씹었다. 바늘에 찔린 물풍선처럼, 순식간에 터져 나온 피가, 구강 아래 움푹한 곳에 그득히 고인다.

그 웅덩이로 씹다만 음식들이 흘러들어 뒤섞인다.


제 핏물을 밑 국물로 말아놓은 이 잡탕의 맛은 참을 수 없이 역겹다. 하지만 곧바로 미각이 마비된 덕분에 그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 입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란 게 세상에는 없으니 당장에는 시각도 큰 필요는 없겠다만, 너무 놀란 탓에 그마저도 뿌옇게 흐려지며 힘을 잃는다.

다만 통각은, 가장 부지런하고 정직한 감각답게 재빨리 제 할 일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기도 전에 한 뼘도 채 떨어지지 않은 뇌를 향해 이미 신속하게 옮겨간 것이다.


이 강력한 고통의 신호에도, 나는 가련한 단말마의 비명 한 마디 차마 흘리지 못한다.

바깥세상을 향해 뾰족이 내뻗은 말소리의 곶, 소리 기호의 밑동, 기표의 극점, 시니피앙의 뿌리, 언어의 근원, lingua의 말단, 바로 그곳, 혀의 끄트머리가 처참히 찢겨 나간 탓이다.

그러니 언어를 깡그리 빼앗긴 나는, 이 비참한 사고를 외부세계에 알릴 수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나의 혀는, 나의 말은, 나의 정신은, 도살당한 짐승처럼 뻣뻣이 드러누워 자신의 혈액에 속절없이 침수된다.




제 이로 제 혀를 물다니. 어떻게 이토록 끔찍한 사고가 벌어질 수 있었을까.

저작(咀嚼)과 연하(嚥下)는 혀와 치아뿐만 아니라, 잇몸, 턱관절, 입술, 뺨, 침샘, 깨물근과 이런저런 얼굴 근육들까지 일사불란하게 참여해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으로 작동하는, 사실상 불수의적이고 완벽한 메커니즘일 텐데.

이어서, 식도를 타고 위로 넘어온 음식에서 양분을 뽑아낸 후, 장을 따라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 필요한 신체활동까지, 이것은 섭식으로 에너지를 얻기 위해, 그러니까 무릇 생명의 제1원칙인 ‘먹고 살기’를 위해, 따로 배우지 않아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능수능란한, 유전자 속에 기본 탑재된 기능이 아닌가 말이다.


이 정교한 생명의 신비를 능멸하고 인체의 질서에 반역하여 오작동을 감행하기로 작당한 후, 교합력 25kg의 힘으로 혀를 찍어 눌린 공범은 치아 번호 23번과 33번, 좌측 상하악의 송곳니들이 되시겠다.


송곳니의 또 다른 이름은 견치(犬齒).

그렇다, 이것은 사람의 이가 아니다. 개의 이빨이다. 인간의 입 안에 수백만 년 단단히 박히어 버티고 있는, 사나운 짐승의 이빨이다.

당장에라도 인간에게서 성스러운 언어를 잘라내고, 고귀한 말문을 구취나는 금수의 아가리로 만들 기회를 엿보는, 위태로운 직립을 쓰러뜨려 네발로 포복하게 만들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네 가지런한 치열 안에 숨죽이고 잠복해 있는 야만스러운 길짐승의 섬찟한 흉기다.


그 치흔이 부인할 수 없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앞니는 자르고, 어금니는 으깨는 반면, 송곳니의 모두스 오페란디는 찌르고 또 찢는 것. 너덜거릴 정도로 찢어발겨진 채 붉은 생기를 잃으며 부어오르기 시작한 혀 끝의 무채색 자상 흔적과 그대로 일치한다.




나는 이제 이 상흔이 계속 부풀어 올라 입 안에 가득 차 버릴까 두렵다.

심지어 나는, 불행하게도, 변사자의 혀를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것이 글쎄 단단하게 굳어 새카맣게 부풀어 오르더란 말이지.

생명을 빼앗긴,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인체에서 제일 먼저 벌어지는 징후가 아마도 그것이어야 했을 것이다. 언어를 빼앗는 것, 사람 말을 봉쇄하는 것, 그 쓸모 없어진 혓바닥으로 이제는 제 밥길마저 틀어막는 것.


기형도 시인이 목격하고 고해한 것도 아마 그 검은 혀였을 것이다.

총검에 찔리고 관통 당해 쓰러진 이들의, 차마 다물지 못한 입 안에서 남은 비명마저 교살하던 그것, 그리고 스스로 말과 글을 봉인한 자신의 입 안에 검게 부풀어 오르던 제 쓸모를 잃어버린 그것, 망자의 혀가 흘러넘치던 거리에서 먼 곳, 먼 지방의 먼지의 방에서 책 따위나 읽으며 그가 두려워했던,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리던 검은 잎의 정체는.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는 곳, 크게 소리 내어 말하면 실례가 되는 곳, 꾹 다문 입 안에 혀를 가만히 눕히고 눈 앞의 은막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곳을, 제 주인의 쓸쓸한 순교지로, 진실을 말하지 못한 말문을 혀 깨물어 세상에 속죄할 장소로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횡포와 상관없이, 부디 그의 마지막이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았기를.




시키는 사람 뜻대로 순순히 움직여주는 것을 보고 ‘입 안의 혀 같다’라고 한다더니, 정작 입 안의 혀는 전혀 입 안의 혀 같지가 않다.

그것은 내 입 안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언제든 나를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다. 내 간교한 혀는, 내 비천한 언어는, 내 게으른 정신은, 어리석은 모음이 거짓된 자음을 잉태케 해, 내가 결코 원치 않았던 혐오와 교만, 질투와 이간의 말들을 내 것인 양 뱉어내고는, 용감한 고백과 사과의 말들은 꿀꺽 되삼키고 스스로 짐승의 예리한 이빨 사이로 몸을 던져 단 한 글자도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 이것은 나의 혀가 아니다. 망자의 혀고, 기형도의 혀다.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검은 잎이다.




다행히, 치유력이 강한 혀는 부상을 입은 그 순간부터 곧바로 회복을 시작한다. 지혈을 끝낸 자리에 듬뿍 묻혀놓은 구내염 치료 연고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며칠간은 제대로 된 밥맛도 술맛도 느끼지 못하겠지.


말은 멈추고, 맛은 끊긴다. 살아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이 이제 모두 내 입에서 떠난다. 자꾸 찔끔찔끔 눈물이 나는 것은 서럽고 또 서러워서이지, 결코 아파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