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는 밤 열차 안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
소음과 어둠 속에서 잠이 깬다. 약간의 두통과 저림증이, 떨치지 못한 가위처럼 몸을 누른다. 머릿속에서 풍선이 부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안압이 높아지고 이충만감으로 청각이 먹먹하다.
일정한 박자의 금속음이 오래된 난청처럼 철컹철컹 귀에 맴돌고, 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가로로 누운 몸이 기분 좋게 흔들리고 있다.
커다란 하품으로 풍선을 터트리고, 이제 뻥하니 진공이 된 듯 멍한 머리로 아주 잠깐, 여기가 어디더라 생각을 해본다.
맞아, 아내와 열차를 탔었지. 아제르바이잔 바쿠 역에서 저녁 9시 50분에 출발하는 N38 야간열차. 카스피해를 따라 바쿠의 남서쪽으로 잠깐 벗어난 후, 다시 북서쪽으로 13시간 이상을 달려 아침 10시 30분쯤이면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할 열차다.
얼마나 잠에 빠져있었던 것일까. 머리맡 차창을 가린 낡은 커튼에 물자국이 번지듯 희미한 여명이 벌써 묻어 있다. 철컹철컹 환등기 불빛처럼 점멸하는 그 빛이, 맞은편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아내의 모습을 껌뻑껌뻑 비추고, 모든 것이 잠들기 전과 제자리임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감과 긴장감이 한 번에 밀려든다.
꼬박 하룻밤을 달려 이국의 국경을 넘는 야간열차에 탑승하고 있다니. 팔라우의 어부가 썰매를 지치며 빙어 낚시를 즐길 수 없고, 네팔의 셰르파가 따뜻한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져 마이너스 해발고도를 탐험해 볼 수 없는 것처럼, 열차를 타고 영토를 벗어나는 일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경험해 볼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 짜릿한 스릴이 깨어나면서 남아있던 잠의 먼지와 소금 같은 눈곱을 순식간에 털어낸다.
전날 저녁, 플랫폼을 따라 곧게 누워있던 열차를 처음 보자마자, 나는 이것이 구 소련 시대의 유물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해가 드는 서가에 오래 꽂혀있었던 책처럼 빛이 바랜 페인트, 창틀 리벳에 거뭇거뭇 지워지지 않는 녹 자국이 그 세월을 증언했으며, 별다른 기교 없이 투박하게 생겨 먹은 꾸밈새와 외장 도색에 선택된 -마치 군복이나 작업복 같은 카키와 베이지- 페인트의 색상이, 감춰지지 않는 사투리처럼 그 출신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소련의 어느 공장, 아마도 아직까지 공업이 성한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또 어쩌면 도시의 이름이 바뀌기 전인 스탈린그라드의 한 공장에 생산되어 철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후, 하루에 한 번씩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의 국경을 넘어야 하는 사역에 시달리며, 궤도를 이탈해 고향으로 달아나지 못하고 늙어 가는 열차일 수도 있겠다.
이런 열차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니. 싱글벙글한 얼굴로 졸라맨 배낭이 온몸을 짓누르는 무게마저 잊은 채, 예약한 객차를 찾아 플랫폼을 빠르게 걸었다.
우리가 예매한 칸은 2인 침실칸, 일등석이다.
열차표에는 표기된 ‘SV’는, 짐작하건대 Sleeping Vehicle을 말하는 것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러시아어로 спальный вагон(Spalny Vagon), 영어로 옮기자면 Sleeping Car, 침대칸이었다. 어쨌거나 정확히 그 의미에 도달을 하였으니, 이 정도 눈치면 여행길을 찾는데 제법 도움이 되는 셈이다.
탑승할 객차 앞에 서서 티켓을 요구하는 중년의 여성 승무원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다. 마치 자신은 이 열차의 낡은 부품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노골적으로 시위하기라도 하듯, 무뚝뚝함을 갑옷처럼 단단히 껴입고 찌푸린 미간으로 티켓을 살핀 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무심히 돌려주기만 할 뿐이다.
잠깐의 우회로나 새로운 풍경 하나 없이, 또다시 똑같은 레일 위를 오가야 하는, 또 다른 피곤한 하룻밤이 이제 막 시작되는 참이겠지. 어쩌면 자신이 맡은 칸에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탑승하게 된 것이 출발 전부터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고.
예열 중인 KTX 옆에 서서 꼬박꼬박 배꼽 인사를 올리는 코레일 승무원 같은 따뜻한 미소도, 짧은 환영사도 없지만, 나는 이미 한껏 들뜬 채 싱글벙글거리고 있는 중이어서 어지간한 불친절로는 이 기분을 망칠 수가 없다.
조금은 낡아 보이는 그녀의 유니폼마저도, 졸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의 오래된 교복처럼 정답고 반갑게만 느껴질 뿐이다.
하룻밤을 우리와 함께 달려갈 이 무심한 분은 우리 객차의 проводница(Provodnitsa), 차장님이시다.
앞으로 열세 시간 후, 결국 그녀는 따뜻한 포옹으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우리 부부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열차에서 내리실 예정이다.
내가 건수가 생길 때마다 ‘고맙습니다’라고 더듬거리는 조지아어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포기를 모르는 인사성으로 눈웃음을 잔뜩 묻힌 스몰 토크에 도전하며, 그리고 결정타로 달콤한 모닝 믹스 커피 선물 공세를 날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레일의 막다른 곳, 멈춰 선 열차 앞에서 함께 오붓이 어깨를 맞대고, 너 나 할 것이 없이 헝클어진 머리, 퉁퉁 부은 얼굴로 함박 미소를 지으며 남긴 기념사진은, 지금도 볼 때마다 그날 아침의 기분 좋은 행복감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북쪽을 향하는 열차의 객실 차창은 서쪽으로 뚫려 있다. 건너편에서는 이제 막 태양이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다. 사물들이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선명하게 반짝이기 시작한다. 불그스름 달아오르는 하늘빛 사이로 아침잠을 깬 수십 마리의 새들이, 야행의 짐승에 먹히지 않고 또 하룻밤을 살아냈음을 자축하며 작은 날개를 흔들어 어지러이 날아오른다.
반대로 돌아누운 채 발목을 까딱까딱 놀리며 그 풍경을 내다보던 중에 나는, 이번 열차 여행이 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여행 중에 있었던 몇 번의 야간열차 경험은 물론이고, 일 년 후에 타게 될 영국의 야간열차의 탑승 경험까지 미리 끌어와 비교를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 일 년 후 런던에서 스코틀랜드 인버네스로 향하는 칼레도니안 슬리퍼에서 잠이 깬 나는, 이 열차를 매우 그리워하게 된다.
신형 영국제 열차보다 이 낡은 소련제 열차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만의 공간에 편하게 드러누워 쉴 수 있는 2인승 일등실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칼레도니안 슬리퍼도 마찬가지로 꽤 비싼 금액을 감당하고 편안한 숙박을 위해 2인실에 탑승했으니 정답은 아니겠다. 그렇다고 낭만이나 운치의 문제도, 객실 내 마련된 어메니티 품질의 문제도, 열차 안 온습도의 문제도 아니다.
내가 찾아낸 답은 바로 공간, 물리적 면적, 객실의 가로 세로 폭에 있었다.
우선 가로 폭을 비교해 보자면, 이 소련제 열차의 객실에는 침대 두 개가 서로 마주보며 멀찌감치 병렬로 놓인 채, 어리석게도 머리 위의 광활한 공간을 -동그란 거울 따위나 달아놓고- 놀려두는 반면, 자본주의를 잉태하신 영국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열차는 침대를 이층으로 쌓아올려 이 공간을 아낌없이 집약적으로 사용하면서 객실의 폭을 3분의 2로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 따라서 객차에 더 많은 객실의 칸살을 지르고, 더 많은 승객들을 실을 수 있으니, 공간의 생산성, 공간의 정치에서 사실상 영국이 승리한 셈이겠지.
그런데, 더 큰 비밀은 객실의 세로 폭에 숨어있다.
나는 나중에 -양쪽 열차의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의 두 사진을 비교해서 보다가- 우연히 이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소련제 열차에 누운 아내의 발치에 조금 더 넓은 여유공간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객실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과, 거기에서 다리를 뻗고 잠을 청했던 내 몸의 기억도, 모두 같은 것을 증언하고 있다. 이 열차의 객실 침대가 훨씬 길다는 것.
그렇다면, 이 열차의 객실은 복도의 공간을 그만큼 베어온 것일 수 있다. 나는 복도를 촬영해 둔 사진들을 또 비교해 본다.
그런데 진실은 정반대로 드러났다. 칼리도니안 슬리퍼의 복도는 짐을 든 두 사람이 마주치면 누군가는 뒷걸음으로 후퇴를 해야 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좁은 반면, 이 열차의 복도는 건장한 체구의 두 남성이 서로 어깨를 스치는 시비에 연루되지 않고도 여유 있게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그 폭이 넓은 것이다.
이 놀라운 여유 공간의 비밀은, 러시아인들의 신비로운 삼차원 구획 능력의 결과물이라거나 위대하신 구축주의와 건축적 실험의 현실적 성과물인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열차의 폭이 실제로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이 표준화하고 서유럽(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사용 중인 철도의 궤간, 즉 평행한 두 레일의 간격은 1,435mm이다.
이를 표준으로 놓고, 러시아의 기준은 이보다 넓은 1,520mm의 광궤가 되는데,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를 잇는 철도 역시 이 궤간으로 놓였다. 애초에 러시아 제국이 깔았으니 말이다.
고작 10cm도 되지 않는 차이라 해도 바퀴의 간격이 더 넓고 안정적인 만큼 아마도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차량의 크기는 더 차이가 났을 것이다.
다만, 더 넓은 간격의 레일을 놓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사면적이 요구될 테니, 역시나 공간의 경제와 정치에서는 이 쪽의 패배인 셈이긴 한데, 시간을 거슬러 조금만 더 살펴보면 그곳에는 역사의 슬픈 이면이 또 숨어있다.
러시아가 궤간을 넓힌 것은 독일이 열차에 군대와 화기를 싣고 순식간에 쳐들어 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하니 말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제대로 그 역할을 해주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가 두려웠던 스페인은 궤간을 1,688mm까지 넓혀서 깔았다.
시간을 더듬어 가는 이야기라면 당연히 여기서 끝내기가 아쉽다.
그렇다면 영국의 표준궤, 스티븐슨 궤간은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기원전 55년 브리튼을 침공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전차 바퀴 자국 간격이며, 이 간격은 로마의 쌍두마차를 끌던 말들의 최소한의 폭이며, 말 두 마리의 엉덩이 간격인 4피트 8.5인치이고, 미터법으로 결국에는 1,435mm인 것이다.
그러니 말이다. 기왕에 로마인들이 쌍두가 아니라 영화 <벤허>에 고증된 사두마차를 주력으로 했거나, 말이 아닌 코끼리를 두 마리 끌고 다니며 전 세계를 박살 내었더라면, 우리의 열차 여행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락해지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지도 위에 그려진 수많은 범례들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도로의 기호들이다. 길을 찾는 것, 결국 그것이 인간이 지도를 그려온 이유니까.
지도 위의 저 길들은 끈질기게 덧칠되며 살아 남아, 우리에게 기억되기로 선택된 것들이다. 실선, 파선, 점선, 쇄선으로 놓인 저 수많은 길들의 단단한 밑돌을 긁어내어 본다면, 기억 상실되지 않고 내리 물림해야 할 귀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딸려 나올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저 모든 선들의 다른 이름은 스토리라인이라 말해도 좋겠다.
세상의 모든 길들은 저마다 폭력과 우정, 단절과 교류, 사랑과 증오, 전쟁과 친선, 수탈과 무역의 관계를 빼곡히 기록해 둔 두루마리처럼 길게 펼쳐진 채 서로 물고 물려 교차하며, 그 역사의 끝을 결코 맺지 않고 영원토록 이어지기만 할 뿐이다.
하물며 산짐승의 발바닥이 얼기설기 눌러 다진 흙길도 아니고, 강인하게 제련된 철을 -심지어 두 줄씩이나- 깔아서 이어놓은 이 길이라면 더욱이, 이곳과 저곳 사이의 관계를 선명히 선 그어 보여주리라.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이 철길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에 도착하는가. 또 어디에 이어지지 않는가. 이 질문을 가지고 선을 따라 가보는 것은 결국,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놓인 이 지역 국가들의 관계를 개괄하는데 강력한 힌트가 된다.
이 철도의 밑그림이 된 길은 애초에 러시아 제국의 주도로 놓인 것이었다.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 남쪽으로 군대를 빠르게 이동시키고, 궁극적으로 이 일대의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1883년에 바쿠-트빌리시 사이에 건설한 철도는, 최근까지도 캅카스 횡단철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10월 철길이 다시 그어지면서 이곳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2007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터키 3국이 함께 뜻을 모은 이후 10년 만에, 바쿠(Baku)-트빌리시(Tbilisi)-카르스(Kars)를 잇는 BTK 라인을 개통한 것이다. 조지아에 7억 7,500만 달러의 우대차관까지 쏟아가면서 아제르바이잔이 강력하게 추진하여 완성한 새로운 질서다.
이것은 결국, 2005년 아제르바이잔 바쿠-조지아 트빌리시-터키 세이한을 연결해 원유를 유럽으로 보내기 시작한 BTC 송유관과 그 함의가 같으며, 실제로도 거의 같은 경로로 달린다.
이 새로운 길이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며, 만약 당신에게 이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결코 쓸모없지는 않을 이야기이)다.
이제 이 길은 러시아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그 오랜 세월 부동항(不凍港)을 갈구해 온 러시아의 남진(南進) 정책은 더욱 방해받게 되었다는 것.
조지아 역시 더 이상 러시아를 우회하지 않고도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아르메니아를 빙 둘러 피해 가면서, (아르메니아의 원수이자 아제르바이잔의 형제나 다름없는) 터키와 더욱 강하게 이어진다는 것, 그리하여 아르메니아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더욱 고립되어 나갈 것이라는 것.
1899년에 건설되어 1993년 터키-아르메니아 단교 때까지 사용되었던 터키 카르스-아르메니아 규므리(Gyumri)-조지아 트빌리시를 연결하는 철길은 앞으로 다시 연결되기가 더욱 힘들어졌으며, 따라서 아르메니아는 이제 유럽으로 향하는 철길도, 바닷길도 모두 상실하였다는 것.
그 조마조마한 이야기를 길게 적어놓은 두 줄 철길의 행간을 따라, 두 명의 이방인과 두 개의 배낭을 싣고, 열차는 캅카스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마침내 기력을 다한 짐승처럼, 열차의 거친 호흡이 서서히 느려진다. 이제 곧 국경에 도착한다는 신호일 것이다.
철컹이던 금속음의 동률이 그 BPM을 계속 떨어뜨리는 동안, 반대로 황급히 준비물을 점검하는 나의 심장은 그 리듬이 더욱 빨라진다.
차창 밖으로는 앙상한 전신주들만 촘촘히 이어질 뿐, 마을의 윤곽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건물 몇 개가 차창에 비치더니, 열차는 마침내 치익하는 긴 숨을 마지막으로 뱉으며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는다.
국경에서 2km 남짓 남쪽에 있는 고요한 기차역 Boyuk Kasik에 도착한 것이다.
엔진이 꺼지고, 밤새도록 시달렸던 소음이 사라지고 나니, 청각을 몽땅 잃은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세상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한참 후 먼 곳에서 누군가 열차에 오르는 울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아마 제복을 차려입고 출입국을 관리하는 관료일 것이다.
이제 곧 우리의 객차로 넘어와 우리의 여권과 준비한 서류를 걷어 가겠지.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가 하나씩 국적과 신상을 기록하고 다시 열차로 돌아올 것이다.
출국 도장이 하나씩 더해진 여권이 모두 제 주인을 찾은 후, 열차는 다시 힘겹게 시동을 걸어 천천히 국경을 지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10km쯤을 느릿느릿 달려 조지아의 Gardabani 역에 멈추어, 비슷한 절차를 한 번 더 거치게 될 것이다.
별문제 없이 여권을 돌려받은 후, 두 시간가량 더 열차를 달리다 보면 황량한 철길 주변의 살풍경들이 서서히 걷혀 나가고, 저 멀리 등대처럼 뾰족이 솟은 TV 타워가 이제 트빌리시에 들어섰음을 알려주겠지.
그러면 우리는 다시 단단히 끈을 조인 배낭을 구명조끼처럼 꼭 끌어 안은채, 이 새로운 도시에는 어떤 만남과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조마조마해하면서, 긴장으로 들뜬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배시시 웃기만 하면서, 손바닥에 한글로 써놓은 조지아 인사말을 다시 한번 진하게 새겨 적으면서, 열차가 이제 멈추어 서기를 기다리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