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올드 트빌리시를 거닐며
많은 유서 깊은 도시들 안에는 저마다 올드타운이라 불리는 오래된 터가 똬리를 틀고 들어서 있다. 그곳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시침질하듯 띄엄띄엄 길이 이어 붙고, 사람과 건물들이 곁붙어 나가면서, 도시는 매일 하루씩 나잇살이 불고 나이테를 긋는 생명처럼 서서히 자라나,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으로 이곳에 무겁게 버티고 서있다.
그 역사가 천오백 년이 넘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역시, 그러한 곳이 없을 리가 없다. 우리는 제벨레 트빌리시(ძველი თბილისი, 올드 트빌리시) 안에서도 가장 오래된, 자유광장과 쿠라 강, 평화의 다리 사이에 놓인 정말로 오래 묵은 동네에 숙소를 구했다.
이 복잡한 길에서는 동네 사람들마저 제대로 번지수를 아는 사람들이 없나 보다. 길을 가던 친절한 주민들 대여섯 명이 선뜻 나서 도움을 주었건만, 배낭을 짊어진 채로 같은 골목을 십여 차례나 왕복한 끝에야 겨우 주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어두운 건물 계단을 오르며, 입구에 호스텔 간판 하나 붙여놓지 않은 주인장의 멱살을 잡으리라 씩씩대었지만, 막상 문이 열리고 아늑한 공간이 나타나자 노여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우리 부부는 이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정말로 다정하고 멋진 친구들을 많이도 만나게 된다.
부지런히 짐을 부린 후에, 산의 가장 높은 곳, 동굴의 가장 깊은 곳을 찾아가는 탐험가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 오래된 거리에 제대로 한 발 나서보는데, 공기마저 낡아서 바스러지기라도 할 듯, 호흡조차 조심스러워진다.
트빌리시의 구시가지를 설명하고자 할 때,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를 말하는 것만큼이나 그곳에 무엇이 있지 않은가를 말하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곳은 다른 천년고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 중심에 마땅히 위치할 법한 거대한 성당이나 궁전, 웅장한 첨탑, 반듯한 사각 모양의 광장이 없다. 프라하나 바르셀로나, 빈의 구시가지를 떠올려보면 그려지는 그러한 풍경들이 말이다.
대신 이곳에는 고령의 원시림처럼, 수백 년 된 주택들이 골목골목 버티고 서 있다.
많은 건물들이 난방과 신식 배관을 위해 벽을 두껍게 하고, 무너진 담벼락을 걷어내고 다시 지어지기도 하였지만, 아직까지 수백 년 전 모습 그대로 기우뚱 버티고 선 채로,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긴 세월, 마을은 허물어지고 고쳐쓰기를 반복하면서, 이제 어떤 곳은 주거 구역이 되고, 어떤 곳은 레스토랑 골목, 어떤 곳은 요란한 클럽들이 모여있는, 나름 기능적으로 구획이 정리되어 여태껏 활기차게 생활의 박동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나는 정다운 이곳을 수차례 돌아다니면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여기를 거닐다 보면 이곳에는 넓고 반듯하게 뻗은 길마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몇 번씩이나 의도하지 않았던 골목으로 들어서 길을 잃어가면서 말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쿠라 강의 경계를 따라 구부정한 길들이 만났다 갈라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하나의 길로 만난다.
삼거리, 오거리가 제멋대로 만나 전혀 공평하지 않게 각을 나누어 가지며 다시 쪼개지기를 반복하니, 제 아무리 길눈이 밝은 이라도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동서남북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생겨난 길의 궤적, 이것은 이곳이 오래된 마을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표다. 작은 하천들이 쿠라 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목마른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 집을 지었을 것이고, 그 집과 집 사이에 수백 년 동안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 복잡한 길들이 서로 이어 붙어 나갔을 것이다. 저 노인의 고목 같은 피부 위에 길을 낸, 깊고 얕은 주름들, 저 세월의 지문들처럼.
해가 기울면 이 작은 마을은 므타츠민다 산의 그늘 속으로 조용히 몸을 숨기고, 강 건너편의 트리니티 대성당, 대통령궁, 리케 콘서트홀 같은 가까운 세기의 거대한 건물들이 불을 밝힌다.
낮고, 좁고, 어두운 이 작은 마을 곳곳에 천 년이 넘는 놀라운 이야기와 역사들이 비밀같이 숨어, 또 하루치 시간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