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

쿠바, 아바나에서 꼬히마르로 가는 길

by 후안

몇 년 전 쿠바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이 글을 개략적으로 정리해 지인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한 바가 있었는데, 그때 그 누구도 이 글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몇 부분을 가져와 패러디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하였다.

한마디로 나는 패러디에 완전히 실패한 셈인데, 이것이 순전히 나의 기술이 부족했던 탓이기만 할까.


아마도 <노인과 바다>쯤 되면, ‘실제로 읽어보지 않았지만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책들’ 목록에서 꽤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나는 자신을 달래야만 했다.

실제로, 이 걸작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전혀 모른다고 말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노인이 바다에서 고생하는 이야기, 제목에 그 내용이 모조리, 단단하게 완숙된 계란의 속처럼 명료하게, 싹 다 나와있는데 말이다. 백이십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이야기에서 굳이 줄거리라는 걸 뽑아내어 요령껏 줄이면 채 일백 글자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뒤로 몇 년이나 되는 시간이 나에게 더 허락되었음에도, 나는 그 글재주라고 할 만한 것에서 약간의 진보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통탄한 심정으로, 글의 몇 부분에 장난기를 부린 곳이 있음을 제 입으로 밝혀야만 한다. 농담인에게는 가장 비참한 순간을, 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왕 창피를 당하는 김에 소설의 그 유명한 첫 구절을 여기 아예 옮겨 적어놓고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번역은 민음사를 기준으로 하였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덧붙인 김에 더 꼬리를 대보자면, 맨 마지막의 문장은 패러디가 아니라, 실제 그날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그는 아바나에서 낡은 버스를 타고 아내와 꼬히마르로 가는 꼬레아노였다. 한 시간 하고도 사십 분이 지나도록 바닷가 마을에는 한 발짝도 딛지 못했다.


그날 아바나에서 꼬히마르로 가는 길은 재난에 가까웠다. 숙소를 나설 무렵 길바닥을 점점이 적시던 희미한 빗방울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몇 미터 앞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드센 장대비로 변한 것이다. 잦아들 기미가 조금도 없이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리는 광기 어린 게릴라성 호우에, 아바나의 이 오래된 지붕과 낡은 벽들이 오늘에야 마침내 무너져 내리고 말겠구나 싶었는데, 정작 정류장에 함께 있던 아바노들의 얼굴에는 그러려니 하는 태연함이 묻어있었다.



버스 정류장이라고 하는 곳도, 캐노피나 벤치는 고사하고 표지판 같은 것 하나 없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꼬히마르로 가는 버스가 이곳에 서는 것이 맞냐고 몇 번씩이나 묻고 또 물어야 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수십 명으로 늘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상당한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구경하며 삼십 분을 넘게 기다려, 마침내 주변의 사람들이 손에 짤그락짤그락 동전 소리를 내며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무자비한 폭우를 뚫고 아바나 시내를 돌고 돌아, 도시의 마지막 정류장으로 낡디 낡은 버스가 마침내 엉금엉금 다가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강물에 떠내려오는 먹잇감을 발견한 피라냐 떼처럼 씩씩거리면서 버스에 달려들기 위한 준비 운동으로 버스 운전기사를 위협했다.


악천후에 연착한 버스는 이미 만차다. 하지만 이미 타고 있는 사람들의 수만큼 더 많은 승객들이 버스 앞문과 뒷문으로 동시에 밀고 들어갔다.

아수라장이었다. 아마도 이 험한 날씨에 지금 도착한 버스를 보내고 나면 앞으로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버스를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실상 우리 부부의 의지와는 크게 관계없이, 사람들에 휩쓸리면서 우리도 꾸역꾸역 버스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대한민국의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만원 버스쯤이야 나도 숱하게 타보긴 했다만, 낯선 땅에서 당하는 이 경험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종류의 사건이었다.

얼굴이 서로 닿을 정도로 (실제로 뺨이나 코가 마구 닿고 비벼지기도 했다.) 빼곡히 들어찬 버스 안에서, 어째서 이 사람은 대화를 멈추지 않는가. 아니 대화라고 하기에도 적당한 설명이 아닌 것이, 듣는 사람 하나 없이 모조리 말하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저마다 결코 짧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뱉어내는 사이에,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음과 냄새, 열기가 이미 버스 안을 잠식한 습기와 더위를 부추겼고, 버스에 겨우 매달려 달달거리는 낡은 에어컨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열에너지가 한가득 밀폐되었다.


머리야, 맑아져라. 맑아지란 말이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언제쯤 이 버스에서 내릴 수 있는가. 이것은 내 팔인가 옆 아주머니, 혹은 내 뒤 노인의 팔인가. 내 가방은 지금 어디에 매달려 있는가. 나와 함께 버스에 타기는 한 것인가. 꽉 눌린 사람들의 몸과 몸 사이에서 겨우 꼬물꼬물 축축한 손을 움직여 호주머니의 휴대전화를 찾은 후 눈앞으로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도 앱을 열어본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빗물을 흠뻑 먹은 탓인지, 아니면 쿠바 정부가 미국 인공위성에 방해전파를 쏘고 있는 것인지 GPS의 현재 위치가 이리저리 미친 듯이 널뛰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바다, 그래 바다라도 보이면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열심히 차창 밖을 염탐해 보지만, 안에서는 자꾸만 두터워지는 입김이, 바깥에서는 끝없이 창문을 두들기는 굵은 빗방울로, 초행길의 실마리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사실 바깥이 보인다 치더라도, 차가운 빗물에 젖어 얼룩덜룩한 데다 김까지 두껍게 서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경은 숫제 안대에 가깝게 변했다.

빗물이 마를 새도 없이 줄줄 흘러내리는 땀에 젖어드는 피부는 이제 막 뭍으로 몸을 내민 양서류처럼 미끄덩거리고 끈적거리며 옆사람의 피부와 쩍쩍 달라붙는다.

뿌연 안경알 너머로 희미하게 확인되는 사람들 틈의 아내 형체만, 지금 내가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며, 내가 결코 실신해서는 안 될 이유이다.


이 북새통의 버스가 엉금엉금 달리던 와중에 특별히 높아지는 음성들이 있다. 들어보니 이건 일상의 대화가 아니라 말싸움이 크게 붙은 것 같다. 앞쪽에서 버스기사와 승객 몇 명이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귀를 기울여 사태를 파악하기로는, 버스 시간이 너무 늦어서인지, 혼란을 틈 타 차비를 내지 않고 탄 사람들이 많아 화가 난 건지, 원래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버스인데 꼬히마르에는 들어가지 않고 지나가겠다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닥 수준의 스페인어 실력으로 어떻게 저 내용들을 알아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이런 극한의 위기 상황에 놓이면 초인적으로 예리해지는 것이 여행자의 눈치 아니겠는가.)


하지만 버스 노선이란 건 제멋대로 우회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버스는 연착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정류장에 무정차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이 쿠바의 버스는 정말 그렇게 할 것 같았다.


¡Voy a Cojimar! ¡Cojimar! (나는 꼬히마르에 갑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나를 둘러싸고 있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도움의 말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착하고 고마운 사람들이긴 하다만, 저마다 의견이 갈리는 것인지 너무나 빠르고, 심지어 짧지 않은 말들이 겹쳐지면서, 나는 그중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광인처럼 눈알이 흔들리며 “꼬히마르! 엘 마르!”만은 꽉 잡고 놓지 않는, 상어 떼 같은 이국어와 악천후 속에, 조각배 같이 옹색한 버스에 실려 조난당한 가련한 이방인.


이 모든 광경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 난리통의 버스 안에서도 조금의 공간이 허락되자 마자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던, 아마도 대학생으로 보이던 단정한 옷매무새의 한 청년이 아니었다면 그날 우리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청년은 느리면서도 명확한 표현의 영어를 사용해, 우리에게 나중에 어느 정류장에서 이 버스를 내려서 꼬히마르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면 차비는 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 마침내 환승해야 할 정류장에 버스가 멈추고, 우리는 또 몇 번이나 묻고 물으며 재차 확인을 한 후, 몇 명의 사람들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쏟아져내리는 폭우 속에서 자그마한 접이식 우산에 두 개의 몸을 가리고, 자기를 따라오라는 어느 아주머니의 뒤를 졸졸 쫓아 차도를 무단횡단했고, 담벼락이 다 무너져가는 어느 창고 건물의 짧은 처마 아래에서 대충 비를 가리며, 다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마침내 버스가 도착하고, 우리의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던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어서 이 버스를 타라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며 등을 떠민다. 아까 분명히 자기도 꼬히마르로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자기는 다른 버스를 기다린다니, 혼란스러움은 커져만 간다.

어쨌거나 아주머니가 기사에게 자초지종 몇 마디 더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추가 운임 없이 일단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 안에서도, 나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꼬히마르? 꼬히마르?” 질문을 던지지만, 신기한 듯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확답을 주지 않는다.


야속한 버스는 아무 대답도 없이 덜컹덜컹 앞으로 달리기만 한다.

이 난리통과 같은 상황에서, 함빡 젖은 우리는 서로를 보며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뭐 어디든 가게 되겠지?”

그 사이 차창 밖으로, 비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마침내 부부는 우산을 펼쳐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빗물에 온통 침수된 행낭을 다시 고쳐 메고 길의 북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도착할 때까지 부부는 다섯 번이나 두리번두리번 길을 찾아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꼬히마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무겁게 젖어 거의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바닷가에서 문을 연 바 하나를 발견해 비틀비틀 걸어 들어가자 어린 바텐더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여기가 꼬히마르입니까?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의 마을?

손님 하나 없는 가게의 바닥에서 들이친 빗물을 대걸레로 훔쳐내고 있던 바텐더가 무심히 손가락 하나를 뻗어 어두운 벽 한 곳을 가리킨다. 그곳에 엉성한 헤밍웨이의 초상화 하나가 걸려있다.

우리는 바에 앉아 뜨거운 커피와 캐러멜 몇 조각으로 몸을 말리면서 비가 완전히 멎고 파도가 고요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비가 그치자, 마을로 들어온 으리으리한 관광버스에서 캐나다 관광객 수십 명이 내려, 카페 <테라스>로 줄지어 몰려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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