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는 사라지고 시인은 살아남는다

조지아 트빌리시, 푸시킨 광장에서

by 후안

트빌리시의 오래된 시간들은 충분히 만끽을 하였는지, 이제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돌려 신시가지들의 탐색에 욕심이 생긴다. 도심을 길게 가로지르고 쿠라 강도 건너면서, 트빌리시를 좀 더 멀리 탐색해보는 동선을 계획하고 숙소를 나선다.

길의 시작은 슬쩍 기대기만 해도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구옥들의 담벼락 사이로 이어진다. 올드타운 안의 골목들이 다소간 어지럽게 미로처럼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지나왔던 골목을 그대로 역주행하며 실수 없이 서북쪽으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낸다.


그러면 이제 우리 앞에는 자동차들이 제법 속도를 내며 달리는 잘 뻗은 왕복 사차로 도로가 가로지르고, 그 너머로는 시월 말의 날씨에도 푸르게 잎을 드리운 나무들이 가득한 작은 공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당신이 만약 트빌리시의 올드타운에 숙소를 구했다면, 당신은 도시 외곽으로 향하는 몇 가지 투어의 약속 장소로 매번 저 공원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전철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번 저 공원을 지나다니게 될 것이므로, 이곳의 이름 정도는 미리 알아두는 편이 좋겠다. 이곳은 ‘푸시킨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며, 지하도를 이용해 방금 건너온 도로는 ‘푸시킨 거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런 곳에서 또다시 푸시킨을 만나다니, 뜻밖이군’ 하고 나는 생각한다. 문득 트빌리시에 앞서 여행했던 도시,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만났던 한 러시아 여인과의 짧은 대화가 떠오른 것이다.

통성명과 더불어 서로의 고향을 확인하던 중 그녀가 자신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다고 하자, 나는 젠체하며 ‘아, 도스토옙스키의 도시!’라고 대꾸를 했다. (왜 그랬냐고? 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한 강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녀는 발끈 화를 내면서, ‘아니야! 푸시킨의 도시야!’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러시아 시(詩)의 태양이라는 푸시킨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절대적인 숭배를 대략 알고 있었건만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은 나의 결례가 분명했겠지.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목소리를 높일 일인가 싶었지만, 그것은 비틀즈 팬의 면전에서 ‘오호, 당신은 링고 스타의 팬이시군요’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게 분명했으므로, 나는 그녀의 질타에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다. 다만, 여행이 끝난 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푸시킨을 왜 이토록 사랑하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하고 반성적인 마음을 먹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와 2,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심지어 십 년 전에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지금도 반(反) 러시아 구호의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는 도시에서, 말하자면 원수진 나라의 국민 시인의 이름이 난데없이 등장하다니.

주변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내밀하고 반동적이며 부적절한 랑데부에 대한 해명을 스스로 찾아내어야만 했다. 그렇게 내가 캐낸 답은 ‘그저 사랑이었다’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푸시킨이 조지아를 너무도 사랑했고, 조지아인들도 푸시킨의 시를 너무나도 사랑한 것, 사랑이 사랑답게 국경을 초월한 것, 그것이 전부다.




과연 그럴만한 사랑이었는지, 조지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시 한 편을 번역해 보았다. (물론, 러시아어를 한 글자도 모르는 관계로, 영문으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겼지만.) ‘조지아’라고 해야 할지 ‘그루지야’라고 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시인이 시를 썼던 시절의 환경과 그의 모국어대로 ‘그루지야’라는 오래된 이름으로 옮겼다.


<그루지야의 언덕에서>


그루지야의 언덕은 밤으로 둘러싸였고

아라그바 강은 돌 틈으로 흘러간다

내 감정은 서럽고 무심하여도

내 슬픔은 눈부시게 빛이 난다

내 슬픔이 오직 당신으로 가득하므로


당신을 향한, 오직 당신을 향한

나의 영원한 근심을 막거나 방해할 도리 없이

내 가련한 심장은 또다시 끓어올라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 없이는, 존재할 방법이 없으니



<На холмах Грузии>


На холмах Грузии лежит ночная мгла;

Шумит Арагва предо мною.

Мне грустно и легко; печаль моя светла;

Печаль моя полна тобою,

Тобой, одной тобой... Унынья моего

Ничто не мучит, не тревожит,

И сердце вновь горит и любит - оттого,

Что не любить оно не может.





공원에는 오래된 동상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A.C.Пушкннь.’라고 적혀 있는 이 동상이 누구의 것인지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저 키릴 알파벳 어디에서 내가 ‘Pushkin’을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조지아어로 ‘პუშკინი’라고 써놨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리라.) 공원의 이름에서 재빨리 유추하여 금방 눈치를 채긴 했지만 말이다.

전 세계 동상들의 고질병인 조분증(鳥糞症), 즉 새똥 테러의 흔적 하나 없이 소중하게 관리되어 온 듯한 이 흉상의 뒤편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1890’이라고 새겨진 숫자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짐작대로 흉상의 제작연도가 맞았다. 이 기념물은 1890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들어져 1892년에 이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시인의 서거 55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흉상 그 자체의 나이만 해도 벌써 130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트빌리시의 오래된 보물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 동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한 명의 러시아인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말이다.

푸시킨 공원에서 조금 눈을 돌리면, 황금빛 조각상을 얹은 거대한 원기둥 첨탑과 분수를 축으로 하는 환상 교차로 광장을 볼 수 있다. 낮에도 밤에도 눈부시게 황금빛을 번뜩이는 (실제 황금으로 장식된)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성 게오르기우스’. 그렇다, 조지아뿐만 아니라 러시아 모스크바, 잉글랜드, 크로아티아, 바르셀로나, 베네치아 등 유럽 각지의 수호성인으로 활약하시는 성 조지, 호르헤, 조르디, 죠르죠, 게오르그, 유리 등으로 불리는 그분이 맞으시다. (일설에 따르면 애초에 조지아의 국호를 빌려오기도 했으며,) 잉글랜드와 더불어 성 조지 십자가가 국기 한가운데 큼직하게 그려지는 나라이니 저 정도의 모뉴먼트가 하나 정도 없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어색함이 걷힌 것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기다란 창을 용의 아가리 속으로 내리꽂는 저 멋진 기념비가 저곳에 올라간 것은 고작해야 2006년의 일이니 말이다. 1956년부터 1991년 8월까지 트빌리시의 중심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동상의 주인은 바로, 소련을 건국한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었다.

나는 그 시절 트빌리시의 풍경을 나중에 따로 찾아보았는데, 아니나다를까 거대한 동상이,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자세, 20도 정도의 상향각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역사의 위대한 순간을 거머쥐려는 듯 펼쳐 든 손을 높게 뻗고 있는 바로 그 자세, 프로파간다 포즈로 우뚝 서 있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다스 베이더의 데쓰 그립이나, 팔로우 스윙 직전의 다트 드로우 자세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georgiaabout.com


1991년 트빌리시에서 레닌의 동상이 끌려 내려오던 그 시기에, 동구권 전체에서 소비에트의 많은 유산들이 무너져 내렸다. 조지아인들도 부지런히 여기저기 새겨진 소비에트의 국장들을 뜯어내고, 벽화로 그려진 키치들은 페인트로 두껍게 뒤덮었을 것이며, 베라 무히나(Vera Mukhina)의 작품을 흉내낸 노동자 청동상 같은 것들은 잘게 쪼개어 다시 용광로 안으로 던져 넣었겠지. 소비에트가 어째서 그토록 사랑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자이크 벽화들은, 대체할 벽감이 마땅찮았던 것일까, 아직도 상당수 살아남아 조지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레닌의 동상은 그 자리에 위태롭게 직립한 채로 겨우 35년을 버티다 끌려 내려오고 그 이름마저도 지워지면서, 이곳은 ‘자유 광장’이라는 이름을 73년 만에 다시 되찾았다. 시를 노래했던 또 다른 러시아인의 동상이 130년 동안 소중하게 보호받으며 그 이름이 시내의 큰길이며 공원에까지 붙여지는 동안 말이다.




또 누가 사라지고 누가 기억되었는가. 오늘날 자유광장으로 모여드는 길은 모두 6개이다. 이 길들 모두 조지아인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왔으니, 힌트를 얻기 위해 이들의 신원을 하나씩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

자유 광장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짚어보자면, 중세 시인이자 조지아 문학의 가장 큰 공헌자 쇼타 루스타벨리(Rustaveli, 1172~1216), 조지아의 시인이자 학자 기오르기 레오니제(Giorgi Leonidze, 1899~1966), 스탈린 대숙청 시기에 동료들을 잃고 우울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조지아의 시인 갈락티온 타비제(Galaktion Tabidze, 1892~1959), 소설가이자 극작가 겸 배우 샬바 다디아니(Shalva Dadiani, 1874~1959), 1923년 소련 비밀 경찰에 체포되어 처형당한 반 소비에트 민족 해방운동 지도자 코테 압카치(Kote Afkhazi, 1867~1923), 그리고 여기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 (Pushkin, 1799~1837).


보라, 혁명가는 사라지고 시인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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