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트빌리시, 드라이 브릿지 위에서
아침 일찍 트빌리시 거리로 나선 아내와 나의 다리에는 아직 한참의 기운이 더 남아있고, 그 에너지만큼의 노정이 우리 앞에 더 뻗어있다. 우리가 어서 탑승하기를 기다리는 투어 버스라든가, 웨이터가 냅킨과 커트러리를 단정히 깔아놓고 초조히 예약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레스토랑 같은 것도 없으니, 우리의 걸음은 한없이 느긋하고 보폭은 갈수록 좁아진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걷고, 배가 고파 오면 음식 냄새를 따라 아무 곳이든 들어가 메뉴판을 요청할 것이다. 발바닥이 조이고 무릎이 눌려오면 길가 낡은 벤치를 후후 불어 대충 먼지를 날리고 다리를 크게 꼰 채로 기대어 앉거나, 그마저도 빈자리가 허락되지 않거든 통행객이 적은 계단에 슬쩍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잠깐 숨을 고른 후 일어설 것이다. 대수롭잖은 구경거리에도 주춤주춤 멈추어 서는 일이 다반사지만, 서로 채근하는 잔소리 한마디 주고받지 않으니 이런 날에는 부부가 같은 여행법을 가진 것이 더 고맙게 느껴질 따름이다.
4월 9일 공원과 이어지는 기오르기 레오니제(Giorgi Leonidze) 공원을 빠져나온 우리의 걸음은 이렇게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진다. 양쪽으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건물들이 비계에 뒤덮여 있는 먼지투성이 구간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길 양옆 아래쪽으로 차도가 보인다. 조용히 걸어가던 주택가 도로가 한 걸음 지나는 사이에 갑자기 요란한 고가도로로 변한 것이다.
아내는 어디쯤 온 것인가 지도를 보다가 재미있는 지명을 발견하고는 앞서가던 나를 불러 세운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고가도로 이름이, 마른 다리래, 마른 다리.”
“다리 이름이 마른이야? 마른 브릿지?”
나는 다리 이름이 마른(Marne) 쯤 되는 줄로 생각한다. 프랑스 어딘가에도 그러한 지명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말로 마른 다리. 영어로는 드라이 브릿지.”
드라이 브릿지(Dry Bridge, Mshrali Bridge, მშრალი ხიდის)라니. 다리는 다리인데 물을 건너지 않는 다리라서 붙은 이름이리라. 그 이름을 알고 나니, 괜히 이 다리가 정답게 느껴지고 그 위를 건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경쾌해지는 느낌이다. 순교자가 처형 당해 매달렸다거나 하는 장엄한 사연이 붙지 않아도, 사람들의 입과 귀에 무심히 달라붙는 이런 다정한 이름들에는 마음을 가볍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밤비 내리는 원효대교의 북단에는 괴물에게 끌려간 딸을 구출하기 위해 손에 무기를 든 가족들이 헤매 다니고 있거나, 영동대교 위의 한 수척한 여인은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홀로 걷고 있을 것 같지만, 떡전교나 술막교, 굽은다리, 두물다리 같은 곳이라면 건너편에 밤눈 어두운 아버지가 살이 두어 개 꺾인 낡은 우산을 쓰고 딸을 마중 나와 있을 것 같다는 말이지.
이야기가 이쯤 오고 나니, 이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어내려와 주신 독자께, 괜히 한 번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당신이 오늘 건넌 다리의 이름은 무엇입니까?”하고 말이다.
“흥, 저는 다리 같은 건 건너지 않았는데요.”라고 해버리시면 뭐 거기서 그만이겠지만, 짐작컨대 조금만 멀리 움직여도 다리 한두어 개쯤 안 지나기가 쉽지 않으실 것이다. 길을 내기 위해 하천을 수두룩 복개해 덮어버린 서울시 안에만 따져보아도, 한강을 가로지르는 대교가 (가로지르지 않는 노량대교를 제외) 27개나 걸쳐져 있고 (2022년 12월 고덕대교가 개통되면 28개), 시내 40개의 크고 작은 하천에 523개의 다리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괜히 튕기지 마시고, 곰곰이 자신의 출퇴근길이나 등하굣길, 아니면 그저 여름밤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서는 동네 마실길이라도 짚어가며 개인사의 통계표를 작성하는 일에 동참을 해주십사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하루에 몇 개의 다리를 건너고 있는가, 그 이름은 무엇인가 하는 시시콜콜한 문제를 한 번쯤은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일 아닌가 말이지.
정말로 내 주변에는 다리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고 최후까지 버티실지 모르지만, 오늘 내가 걸어간 길 아래로 복개된 하천이 흐르고 그 한편에는 다리의 이름을 새긴 동판을 박아놓은 교명주(橋名柱) 같은 것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물을 건너지 않는 고가도로도 분명히 교량으로 정의가 되기는 하니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처럼 마른 다리가 셈이다. (을지로와 충무로 사이를 평행하게 따라가는 길의 이름은 ‘마른내길’이다. 이름에서 뻔히 보이다시피, 도시가 커지면서 하천이 말라버리고 덜렁 다리만 남아있는 곳도 전국에 수없이 많이 발견되겠지.)
외국, 특히 유럽의 멋진 다리들 이름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도시나 마을의 지명이 붙은 것들이라 특별한 작명 센스 같은 것을 인정하기는 힘들다. 좀 독특한 경우라도 죄다 성인이나 왕 같은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붙어있는 게 다반사이니 말이다.
다리에 탑이 있으면 타워 브릿지고, 카를 4세가 공사비를 대면 카를교, 새로 지은 다리면 누에보(Nuevo) 다리거나 퐁 뇌프(Pont Neuf, 실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지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비교를 해서 외국의 사례를 본받자 말자 하는 이야기로 흐르려는 것은 아니다만, 우리나라 다리들의 이름은 특히 더 섭섭한 감이 있다. 죄다 동네 이름 뒤에 대교(大橋)나 교(橋)를 붙인 것들 뿐이고, 그나마도 두 개가 넘어가면 1교, 2교라니.
‘진입로가 혼란스러운 성수대교의 이름을 홀림다리로 바꿉시다! 다리를 건너면 길이 크게 휘어지는 청담대교의 이름은 굽돌이다리로, 북단으로 길이 끊긴 동작대교는 막힌다리로 바꿉시다! 라고 시민운동을 벌이면 참여해 줄 사람이 있을까?’, ‘국립 작명소를 국회 내에 설치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집회를 벌이면 오가는 사람들이 장한 일 하신다면서 성실히 서명을 모아줄까?’
잡념에 시달리며, 나는 마른 다리를 건너간다.
‘만약 트빌리시가 샌프란시스코처럼 한국인들이 많이 건너가 사는 도시였다면, 골든 게이트 브릿지(Golden Gate Bridge)가 이례적으로 금문교(金門橋)라 불리듯이, 이 다리도 건조교(乾燥橋)나 건성대교(乾性大橋)같은 이름으로 옮겨졌을까?’, ‘그나저나, 그렇다면 비가 오는 날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젖은 다리나, 반건조 다리가 되는 거야?’ 따위로 자꾸만 불어나기만 하는 잡념을 한아름 안고, 나는 계속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 위에서,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해가면서 건너오는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 아마 자꾸만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목요일 저녁에 술 한 잔 하자고 불러내고 있는 중은 아닐까. “야, 시끄럽고, 빨리 마른 다리로 나와.”라고 말이다.
다리 아래 저 큰길에서 택시를 내리는 사람은 아마도 데이트 신청을 받고 허겁지겁 차에 올라, “마른 다리로 빨리 가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나도 이곳 트빌리시에서 누군가 인연이 생기면 꼭 말해 보리라.
“마른 다리 위에서 우리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