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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Sep 16. 2018

귀신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하는 한 소녀

No.15 <안주>_미야베 미유키

안주(暗獸)란 어두울 암(暗)과 짐승 수(獸) 즉 우리나라 발음으로 '암수'의 일본식 발음이다. 그 뜻은 '어두운 생명체'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덩어리였다. 어둠 덩어리.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상상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가오나시' 같은게 아닐까 생각했다. 주로 귀신이나 요괴에 대한 이야기 모음인 '미시마야 괴담대회 시리즈'에서 안주는 귀신이 아니다. 오히려 생물에 가깝다. 그리고 귀신이 아니기에 인간을 해하지 않는다.


어느 한 마을에 오래된 폐가가 있었는데 그 폐가에 어느 날 은퇴한 무사 부부가 이사 오게 된다. 폐가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 집에 살기를 꺼렸다. 평소 호기심이 많고 귀신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던 무사는 '별 일 있겠어?' 하는 마음에 세도 싸고 봄이면 정원에 수국도 이쁘게 피는 그 집에서 제법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오아아, 우어어, 부우우 하는 사람의 언어도, 짐승이 내는 울음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이상하게 여기던 부부는 머지 않아 그 정체를 발견한다. 그것은 정령이라고도,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냥 덩어리, 검은 덩어리였다. 그 덩어리는 그저 이상할 뿐 사람을 해하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가끔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적지 않게 놀랐던 부부는 이 생물에 조금씩 정을 붙이게 되고 이름도 붙여주고, 그 생물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생물을 돌본다. 그런데 사실 그 생명체에는 이 집과 관련된 어떤 사연이 있었는데...


더 이상 쓰면 스포일러가 되니 여기까지만 쓴다. '미시마야 괴담대회 시리즈' 두번째 편인 이 책 <안주>에서는 매력적이고 귀여운 생물(혹은 요괴)이 주로 나온다. 전작 <흑백>이 주로 인간의 욕심, 질투, 악함에서 나오는 오싹한 귀신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안주>의 요괴들은 뭔가 순수하고 귀엽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나 '가오나시'를 소설버젼으로 보는 느낌이랄까? 요괴들은 어린아이같이 토라지거나, 부끄러워 하거나, 서운해 한다. 생각해보면 귀신에게는 죄가 없다. 원래부터 인간을 해하려고 창조된 귀신은 없다.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이고 업보였기에 한(恨)을 품고 구천을 떠돌 뿐 귀신은 대부분 착하고 가끔 귀엽다.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축은 '괴담듣는 여자' 오치카의 성장이다. 어린나이에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한 사건으로 상처를 받아 휴식과 수양을 겸하여 삼촌의 가게에 하녀로 오게된 주인공 오치카는 괴담을 들으며 '인간'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조금씩 자신을 아프게 했던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치 그녀의 성장을 위해 사람들이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개별적인 귀신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시리즈는 성장소설이다. '문학의 목적은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 이라는 본령에 충실하다.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하는 소녀의 이야기라니. 좋은 컨셉이구나. 역시 미야베 미유키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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