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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Sep 13. 2018

미의식이 있는 사람은 다 디자이너다

No.14 <내일의 디자인>_하라 켄야

나는 언제나 능력있는디자이너들을 동경해왔다. 사물을 다르게 보려는 태도, 새로운 것을 꾸준하게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좋지만 그들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이너들만이 갖고 있는 '미의식' 때문이었다.


나는 일찍이 디자인을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고 썼다. 제품이나 환경은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토양에서 거둔 '수확물'이다. 좋은 제품이나 환경을 낳으려면 비옥한 토양, 즉 높은 수준의 욕망을 실현해야 한다. 디자인이란 욕망의 바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는 말에는 이러한 발상이 깔려 있다. (p7)


위의 말이 이 책의 저자 하라 켄야의 미의식이다. 디자인이란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인데 그것은 멈춰있는 것이 아닌 '에듀케이트' 하는 것이다"(작가는 educate의 본래적 의미인 '교육하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꽃피우게 하다'라는 확장된 의미로 에듀케이션의 의미를 차용했다). 디자인은 욕망의 투영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이 꽃피워진 것이고 식물이 꽃피우기까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내고 꽃봉우리가 피어나듯 욕망 또한 시대에 따라 여러 단계를 거친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처음 나왔던 시절 사람들이 자동차에 대해 가진 욕망은 '속도' 였다. 말(馬)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의 쇳덩어리가 사람들을 단시간에 여기저기로 옮겨주는 신개념 테크놀로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러한 욕망은 계속해서 발전해 무려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의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자동차는 산업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상품이다. 산업사회가 변하는 급격한 속도는 자동차의 진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특히 디자인의 측면에서의 자동차를 보면 그 특징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유럽을 필두로 자동차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차체에 있다. 유선형의 디자인을 통해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도로 진화했으며 차체의 소재 또한 거칠고 무거웠던 소재에서 점점 더 가볍고 매끈한 소재로 진화하며 한층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후기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지금 자동차에 대한 욕망은 속도보다는 이동 그 자체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자동차에 대해 속도 그 자체보다 이동편의성, 환경친화성, 내구성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이 부분은 일본 자동차 산업에 불고 있는 개인화, 소형화에 대한 하라 켄야의 의견으로 한국에서는 양상이 다를 수도 있다). 상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변했기 때문에 디자인 또한 그에 맞춰 변해야 했다. 최근 일본 주요 도로에 중형 세단이나 SUV 같은 묵직한 차량들에서 경차, 소형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에 따른 분석이다. 작가는 이러한 경향을 이제 더 이상 자동차가 사회적 신분이나 스타일을 드러내는 소재가 아니게 되었고 타고 내리기 편하고 짐을 쉽게 나를 수 있는 일용품으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선호하는 차량 자체가 달라졌으니 디자인 또한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에듀케이트 되었다.




디자인은 스타일링이 아니다. 물론 물건의 형태를 계획적이고 의식적으로 만드는 행위는 디자인이지만, 디자인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디자인이란 만들어내기만 하는 사상이 아니라 물건을 매개하여 살림이나 환경의 본질을 생각하는 생활의 사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만들기 못지않게 헤아리기 속에도 디자인의 본령이 있다. (p51)


'미의식'이 있는 디자이너는 어떤 상품을 만드는 것에 천착하지 않는다. 하라 켄야의 말처럼 '만들기 못지않게 헤아리기 속에도 디자인의 본령'이 있다. 그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만들기 못지않게 헤아리기를 염두하는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다. 쉽게 말해 '미의식이 있는 사람은 다 디자이너다'. 물성이 있는 상품, 애플리케이션, 법률, 의료기술, 교육, 인간 관계, 모금 등등 무엇을 만들든 미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만들 '그것'을 매개하는 살림이나 환경의 본질을 염두하는 사람들은 다 디자이너다. 인간의 주된 욕망이 계속해서 변하듯 디자인은 변할 것이고 그 욕망을 이해하여 사물의 쓰임을 깊게 고민하는 사람은 진짜 디자이너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툴을 잘 다뤄도 그냥 사짜로 남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디자이너로서의 하라 켄야의 성숙한 태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어른으로서의 하라 켄야의 시선을 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공업에 대한 어마어마한 투자와 노력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서있다. 괴물같이 추격하는 중국이라는 외적 위기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 사회 진입이라는 내적 위기 앞에 일본은 이제 다른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그는 대안으로 개인화된 주거문화 수출, 일본의 전통을 특화시키는 관광산업, 의류, 패션, 라이프스타일에 활용되는 신소재 산업 등을 제시한다. 그는 한 나라의 어른이자 디자인 전문가로서 새시대 일본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한다. 미의식이라는 견고한 철학과 논리를 바탕으로 예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권위적인 어른의 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겸손하고 진지하게 일본의 미래를 염려한다.


우리도 이런 어른을 품고 있을까 생각했다.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지만 그냥 번뜩 지나가는 생각은 이어령 선생님 정도? 비슷한 어른일까? 일본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식의 비교의식은 좀 유치하다는 생각을 한다. 올드세대 영세대의 구분이 아닌 디자인이라는 한 영역의 권위자로 의미있는 오피니언을 제시하는 사람과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에 대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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