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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Sep 21. 2018

현대카드와 지적자본론

No.17 <지적자본론>_마스다 무네아키

현대카드지만 현대카드 아닌 현대카드

세계일주를 떠나기로 다짐하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용카드'를 만드는 일이었다. 장기여행자에게 신용카드란 은근히 중요하다.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 우리 여행을 좀 더 실속있게 만들어줄 신용카드를 물색했다. 기준은 간단했다. 1.공항 라운 이용 기능을 갖출 것 2.기왕이면 사용금액이 항공마일리지로 적립될 것. 다양한 카드를 후보에 올렸고 결국 우리의 선택은 현대카드였다. 현대카드 중에 연회비 5만원을 내면 전세계 600여개의 공항 라운지 이용이 가능하고 결제금액 1000원당 최대 1.5마일의 항공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한 카드가 있었다. 이 카드는 여행자에게 최적화된 카드로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 28번 정도 비행기를 탔는데 거의 대부분의 공항라운지를 이용했으니 뽕을 뽑는 정도가 아니라 뽕을 뽑아 솜을 만들 정도였다. 사실 이러한 엄청난 기능성은 우리가 현대카드를 선택한 부차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았다. 아내가 현대카드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디자인 때문이었다. 우리 현대카드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했을 때 아내가 보인 반응은 '오! 내 인생 첫번째 현대카드라니!' 였고 카드를 신청하고 받을 날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마침내 택배로 카드가 왔고 포장을 뜯었는데 기대로 가득찬 아내의 얼굴이 실망으로 굳어졌다.


"이거 현대카드 아니잖아?"

"이거 맞아 현대다이너스카드"




이래뵈도 현대카드랍니다


나이키 신발을 간절히 바라던 아들한테 나이스 신발을 사주는 꼴, 선물 받은 루이비통 가방 패턴이 분명 루이비통인데 V모양이 묘하게 작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마 저 카드는 다이너스 카드와 현대카드의 제휴에 의해 만들어진 카드라 현대카드 특유의 디자인을 살릴 수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아내에게 있어 [현대카드=감각적인 디자인+계산할 때 간지나는 카드] 였으니 저건 현대카드이나 현대카드가 아닌 현대카드였다. 나는 "카드가 연회비 저렴하고, 포인트 많이주고, 잘 긁히면 되지" 하고 포장을 뜯어 척척 내 지갑에 넣었다. 싸늘하다. 등 뒤로 아내의 날카롭고 뜨거운 시선이 날아와 꼳혔다. 나는 조용히 컴퓨터방으로 들어갔다.

이거 모르면 그냥 컴퓨터방으로 들어갈 것

책리뷰 하는데 갑자기 웬 현대카드이야기? <지적자본론>이라는 책을 이해할 때 가장 적절한 예시가 현대카드가 아닐까 싶어 개인적인 경험을 꺼내봤다. 이 책은 일본 전국에 1400여 개 이상의 츠타야 매장을 운영하는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CCC)의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영론에 관한 책이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고객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서적이 아니라 그 안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제안이다' 라는 말로 대표되는 '큐레이션' 개념을 서점에 도입해 상품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기획해 고객가치를 실현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이 책에서 써드 스테이지(플랫폼의 난립으로 판매자의 제안 능력이 중요한 시대)인 현재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재무자본이 아닌 지적자본이라고 주장한다. 지적자본이란 브랜드 파워, 데이터베이스, 풍부한 견식과 경험을 갖춘 접객 담당자 등 대차대조표에는 실리지 않는 자산을 말한다. 그는 이러한 지적자본을 얼마나 많이 소유했냐에 따라 앞으로 살아남을 기업이 결정되니 기업의 가장 큰 목표를 지적자본을 획득하는 것에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다이칸야마 츠타야_사진출처 : 네이버포스트 <서점인 듯 서점 아닌 서점같은 공간>

현카 멤버쉽이라는 이유있는 허세

다시 현대카드로 돌아오자. 현대카드의 방향성은 비단 감각적인 카드 디자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카는 디자인, 뮤직, 트래블 그리고 최근에 생긴 쿠킹까지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의 뮤지엄을 통해 현대카드 회원들에게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또한 현대카드는 멤버쉽에게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 센터, 도쿄 모리 미술관 등 전세계 유명 뮤지엄 입장권을 제공(하거나 할인) 한다. '현대카드를 소유한 사람=고급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만든다. 이 회사에게 있 '지적자본'이란 기업 뿐만이 아닌 그 기업을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한다. 어필 대상은 현재 멤버쉽이기도 하고 잠재고객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 비욘세, 레이디 가가 그리고 올 해 켄드릭 라마 대체 누가 데려왔는지 생각해 보자. 경제논리에 따르면 표면적인 이익이 하나도 발생하지 않는 '문화' 마케팅들. 계속해서 아궁이에 현찰을 태우는 꼴인데 그 아궁이를 통해 밥을 짖고, 방을 뜨듯하게 하면 배부르고 등따신 고객들이 저잣거리로 나가 현대카드의 작은 좋은 점을 큰 소리로 외칠 날이 분명 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현대카드의 문화마케팅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지적자본론' 이라는 기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디자이너가 돼야 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만 디자인할 수 있다는 오만을 경계하라

이 책의 부제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다. 저자는 이제 제안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그 제안은 가시화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어떤 직군에서 일하든 '디자이너적 발상'은 미래에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라는 말이다. 아니 이미 그런 시대가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풀자면 아주 늦었지만 최근에 포토샵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는 아주 기초적인 기능만 사용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할수록 미적 감각이 아주 조금씩 향상되기도 하지만(원래는 거의 0에 수렴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점은 아주 조금씩 '디자이너들의 사고방식'을 공부한다는 점이다. 레이어의 개념, 주목성이 높은 색감, 이해력을 높이는 구도 등 디자이너들은 늘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화하는 것을 훈련해 온 사람들이다. 머지 않아 디자이너가 권력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니 그것도 이미 왔다. 나는 너무 늦어버린걸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마스다 무네아키의 또 다른 말로 마지막 위로를 얻어 본다. 나는 확실히 디자인에 있어 아웃사이더다. 그러나 모든 이노베이션은 아웃사이더로부터 나온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따라서 비즈니스 세계에 몸을 둔 사람은 아웃사이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업계 흐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일반 고객의 입장에 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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