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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Oct 01. 2018

책은 눈이 아닌 손으로 읽는 것

No.18 <메모습관의 힘>_신정철

6두품의 책읽기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왔던 사람들의 독서를 성골, 진골의 독서라고 생각한다. 진골, 성골들은 어린 나이일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니 문자에 대한 해독력이 높고, 뭔가를 새로 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글을 읽는다는 것,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은 일상적이다. 일상을 넘어 그들에게 책읽기와 글쓰기가 놀이이자 취미다. 그냥 '읽는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하는 지식 귀족층이랄까. 종종 그들이 나 같은 6두품들은 감히 쳐다도 못 볼 '이해력의 성'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내 독서는 6두품이다. 그것도 높히 쳐줘서 그렇지. 사실 4두품이거나 평민, 천민일지도 모른다. 20대가 넘어서 "책 읽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더라" 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듣고는 그때 부터 억지로 책 읽는 습관을 들였다. 군에 있던 시절. 내가 속한 부대는 제법 널럴한 곳이어서 전역 전에 각자가 원하는 자기계발을 할 여유가 있었다. 내 후임은 사시 1차 합격을 목표로 공부했고, 동기는 토익 900을 목묘로 공부했다. 내 목표는 그냥 책 100권 읽기 였다. 독서력도 하나의 근육인지라 평소에 독서하지 않은 사람이 책 한권 읽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정도면 꽤 많이 읽었지 생각하며 페이지 수를 보았는데 이제 막 40페이지를 발견하고 실망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실망의 기억이 계속 남아 내 독서 습관 중 하나는 '되도록이면 페이지 넘버를 보지 않는다'이다. 실망하기 싫어서. 그렇게 내게 독서는 유희나 지적탐구가 아니라 하나의 훈련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아마 100권은 채우고 제대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100권을 읽고서야 이제 어디가서 "나는 책읽기를 좋아해" 하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100권을 채웠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읽었으나 읽지 않은

태생적으로 잘못 배운 독서 습관은 악습을 남겼다. 그 뒤로도 책을 하나의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여겼던 내게 중요한 건 책의 내용보다도 책 자체였다. 과시적 책읽기라고, 책 자체보다는 책을 읽고 있는 나에 더 많이 집중했었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보다 그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에 집착했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책을 읽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책 읽을 시간이 안나기 시작했고 슬슬 책에 싫증을 냈다. 책을 읽어도 별로 달라지는게 없다고 느꼈다. '책 좋아하는 사람 중에 망하는 사람 1호'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책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다가 우연히 브런치를 시작했다. 브런치에는 다양한 글들이 올라오는데 대부분 필력이 장난이 아니다. 처음에는 브런치에서 회원들을 '작가'라고 표현하는게 오그라들기도 하고 어색했는데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다들 나만 빼고 작가 수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브런치에서 나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그냥 가장 익숙한 서평을 다시 써보기로 결정했다(이전에 네이버 블로그에도 꽤 서평을 남기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도하는 서평의 목적은 '서평을 위한 글쓰기' 라기 보다는 '독서를 위한 서평쓰기'에 가깝다. '족보없는 독서 습관'으로 읽었어도 잘 기억 못하는 지난 날의 책읽기를 후회하며 나는 '쓰지 않은 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 라는 거창한 다짐과 함께 읽은 책은 무조건 서평으로 남기겠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책을 읽으면 덮고 바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비록 짧더라도 서평을 남기기로 했다. 나중에 '그 책'을 떠올릴 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을 가능성을 대비하여 감상을 찾아보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이 브런치에 쓰는 서평이 좋은 글로써 큰 가치가 없어 보이더라도 그냥 나를 위해 계속 글쓰기를 쌓는 것 뿐이다. 일종의 독서 2.0 이다.


독서 3.0 - <메모습관의 힘>

그렇게 한 권 읽고 한 편 쓰고를 실천하다가 <메모습관의 힘>을 만나고 독서 3.0으로 넘어가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사실 이 책을 '메모'라는 주제로 한정 짓기는 조금 아쉽다. 이 책은 메모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독서와 글쓰기, 블로그와 현대 사회의 지식과 정보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메모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분야가 바로 독서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을 이내 노트에 옮겨 적는다. 단순히 필사의 단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고 펜의 색깔을 바꿔서 그 문장 아래 자신의 생각을 적어본다. 그렇게 좋은 문장을 메모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으면서 책을 명확히 이해하고, 책에 동의하거나 비판하기도 하고, 글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효용성 있는 글을 쓴다. 책 한권을 통째로 삶아 먹는 느낌. 허세형 독서가인 내 입장에서 가장 못 하는 것이 바로 '책을 읽다가 잠시 나오는 일' 이다. 나는 원체 텍스트에 대한 집중력이 없던 사람이라 한번 책 위에 올라타기도 어려울 뿐더러 한 번 올라타면 내려오고 싶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잠깐 나와서 메모를 하고 생각을 적고 하는게 나한테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진짜 책읽기, 진짜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의미있는 문장과 만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책에서 빠져 나와서 '메모' 하고 '사유' 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책이 데이터가 아닌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된단다. 자격지심이 동한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또 한번 좌절한다. '지금까지 내 책읽기는 역시 다 무쓸모 였을까'


근본이 없는 자 용기는 있다. 자격지심이 발동했지만 나는 또 한번 그냥 따라해보기로 했다. 어색하고, 오래걸리고, 몇 번 실패할지라도 그의 메모습관을, 그의 책읽기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책을 읽은 후 나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게 되면 책에서 빠져 나와 메모하고 사유해 보기(사유한 것을 적을 것)

2.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쓰든 노트에 한번 정리한 뒤 살을 붙여 글을 써보기

이 책부터 어설프지만 따라해보기!

이런다고 6두품이 진골, 성골이 되겠냐만은 그래도 독서 1.0시대보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온 시기를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독서 1.0 시대에 나는 책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고 2.0시대에는 책을 데이터화 하는데 집중했다. 이제 독서 3.0 시대 책을 통해 '읽을 만한 글'을 써볼 때가 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메모가 필수. 메모는 행위라기 보다는 자세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문장 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이 책과 내 독서에 가장 임팩트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하며 여기 남긴다.


"책은 눈이 아닌 손으로 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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