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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Dec 26. 2019

EP16.아이슬란드 양, 호주 앵무새 그리고 이집트 닭

여행에서 만난 동물이야기

최근에 막 인스타그램 같은걸 생각 없이 보다가 우리나라에서 '아기 수달'을 키우는 사람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수달이라는 게 보통 어떤 성격을 가진 동물인지는 모르겠는데 아기 상태면 그래도 키울 만 한가보다 생각했다. 영상에 나오는 수달은 짧은 다리로 주인을 쫑쫑거리며 따라다녔는데 뭔가 되게 귀여운 듯 보이면서도 속으로 '과연 쟤를 몇 살까지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떼는 말이야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고는 했는데 내 기억에 한 마리에 500원 정도 했던 그 병아리를 닭까지 키우는 친구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예전에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친구는 병아리를 '영계' 정도 크기로 키웠다. 그게 내가 본 초등학교 앞 병아리의 가장 진화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병아리 키우기가 힘들었으면 신해철은 죽은 병아리 친구 얄리를 위해 <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까지 만들었을까. 수달-> 병아리->'세계여행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이라는 기적의 전개를 이어나가 보기로 했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1. 로드킬 할 뻔했던 아이슬란드, 로드킬 한 모로코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너무 친절한데 그들을 보기는 너무 힘들어' 아이슬란드 썰을 신나게 풀 때 꼭 하는 말이다. 아이슬란드 국토 면적이 100,300 제곱 km인데 인구가 약 33만 명 정도 된다. 대한민국 크기가 100,210 제곱 킬로미터고 인구가 5000만 명 정도 되니까 아이슬란드에서 아이슬란드 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슬란드 사람이 별로 없는 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건 아니고?

우리를 태워준 커플이자 범인(?)

아이슬란드에선 사람 만나는 거보다 양 만나는 게 더 쉽다.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아이슬란드의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를 반가워한다. 얼마나 반가우면 양들이 종종 도로에 나와서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몇 마리 양들이 무리를 지어 신기한 듯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나와 아내)는 그날 히치하이킹에 성공해서 염치도 없이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쿵' 하는 소리에 이게 뭔 일이야?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몽사몽 눈을 비비면서 상황을 파악하는데 저 앞에 흰 물체가 절뚝거리며 다시 초원 쪽으로 가고 있었다. 절뚝거리는 게 안쓰럽긴 한데 그래도 로드킬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왕좌의 게임과 글래디에이터를 찍었다고 합디다

그러나 로드킬 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모로코에서 택시를 타고 유명한 유적지에 가고 있었다. 그 유적지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촬영지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그 유적지는 택시로밖에 갈 수 없어서 우리는 분에 넘치는 택시투어를 했다. 택시로 가는 길에 중간에 내려서 북아프리카의 낙타도 구경하는 그런 코스였다. 그래 우리는 무려 낙타를 로드킬... 했던 건 아니고 택시로 지나가는 중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택시 기사가 고의는 아니었고 자동차가 꽤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자동차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길을 건너려다 일어난 불상사였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좋지 않은 소리와 느낌이 났고 나는 조심스레 기사에게 혹시 무언가를 밟았냐고 물었는데 택시 기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목소리로 cat이라고 말했다. 사실 동물이 죽었다는 것도 그때 굉장히 충격이었는데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한 그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더 충격이었다. 미지의 세계에서 자의는 아니었지만 생명을 해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 그땐 별 생각없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너무 소름 돋는 일이었다.


#2. 동물을 풀어놓고 보는 호주

우리나라 도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은? 개인적으로 비둘기라고 답하지 않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호주 -최소한 내가 갔던 시드니- 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동물은 앵무새다. 흰 앵무새. 나 같은 버드 포비아들은 비둘기 뒤뚱거리고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무서워서 비~잉 돌아가는데 앵무새라니. 서울에서도 종종 길거리에 비둘기들 수십 마리가 모여서 뭘 쪼아 먹고 있으면 나한테 날아오지 않아도 괜히 공포심을 느끼는데 비둘기 2~3배 크기가 되는 앵무새 수십 마리가 모여서 땅바닥에 뭘 쪼아 먹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나 같은 새 공포자들은 기겁을 할 일이다. 호주는 버드 포비아 살만한 곳이 못된다.

사진만 봐도 무서움


그런데 호주는 동물권이 잘 지켜지키로 유명한 나라란다. 그래서 동물을 풀어놓고 키우고, 구경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한 번은 호주에서 동물원 같은 델 갔는데 여기서는 캥거루를 동물원에 풀어놨다. 물론 어른 캥거루는 아니고 아기 캥거루라 내 허리 정도 되는 애들이 뛰어다니는데 그래도 울타리 밖에서 안전하게 보는(?) 우리나라 비하면 기겁할 일이다. 동물원에 갔는데 저 멀리서 캥거루가 콩콩 거리며 나한테 온다. 그리고 어떤 공원에서는 '버즈 파크' 같은걸 조성해놨는데 여기도 새들을 풀어놓고 큰 새장에 사람이 들어가서 새를 보는 구조다. 무려 공작새가 마음만 먹으면 울타리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 놨다. 호주에 곰이나 사자 같은 게 흔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내와 셀카 찍는 캥거루와 이미 한 대 맞은 외국인

#3. 이집트에 가면 꼭 정육점에 가 보세요

거듭거듭 말씀드리만 나는 버드 포비아다. 지구 상의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날개 달린 것들을 먹는 것은 매우 좋아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한국음식이 땡기고 그게 삼계탕일 때가 있다. 당연히 마트에 가서 닭을 사 와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하는 이집트 다합의 정육점은 일반적인 그것과 조금 다르게 생겼다. 다합 정육점에 가면 닭이 되게 많은데 다 살아있다는 게 문제였다.

문제의 그 정육점


한 4~5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 가운데 통로가 나있고 양 옆으로 새장이 쭈욱 늘어서 있다. 그 안에 닭들이 다소곳하게 앉아있거나 일부는 푸드덕거린다. 삼계탕을 먹고 싶다면 그 죽음의 길을 건너 사장의 눈을 보며 말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닭 한 마리를 가리키며 "얘 주세요" 하고.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아내가 있어 그 공포의 길을 지나가지 않아도 되는 행운이 있었다. 푸드덕 거리는 소리도 무서워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등치 큰 나, 메릴 스트립처럼 당당하게 새장을 헤쳐 나가 "쟤 주세요"를 외치는 아내. 그 용감한 아내도 죽이는 장면은 못 보겠는지 지목을 하고는 그 공포의 방을 다시 나와서 기다린다.


5분쯤 시끄럽게 기계 돌아가는 소리. 이내 잠잠해지더니  저 안에서 사장님이 우리를 부른다 "Come in!" 당연히 나는 못 들어가고 나의 잔다르크가 들어가서 묵직한 검은 봉지를 받아온다. 생애 처음 만져보는 냉동하지 않은 닭. 피를 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고기가 따듯하다. 아내는 그 날의 기억을 이렇게 표현했다. 참 따뜻했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방금까지 생명이었던 것을 먹는구나 생각했다고. 요즘도 생닭을 살 때면 그날의 이집트 공기가 떠오른다.


원래 세계여행에서 만난 동물 이야기를 한 번에 다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다. 시리즈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그거 아나요? 세상에서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2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또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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