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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Dec 18. 2018

<진짜 사나이>를 볼 때마다 찝찝하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우리



TV에서 <진짜 사나이>가 나온다. 지난여름 우연히 뵌 할머니가 함께 떠오른다. 이번 글은 할머니 이야기를 빙자한 <진사> 이야기다.




어느 노부부와 예비 PD


한 방송국 PD 공채 실무평가를 치를 때 일이다. 돌발 과제를 받았다. 6mm 카메라를 들고 100초 원테이크 영상을 찍어야 했다. 제한 시간은 지금부터 180분, 주제는 ‘TMI(Too much information)’.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나름 밌었고 스토리도 금세 짰다.


상황) 학교 과제 중인 요즘 학생 A. 내용은 다 완성했고, 어르신들을 상대로 한 인터뷰 영상만 찍으면 된다. 제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밖으로 나온 A.

A : 어르신, 얘기 좀 하실 수 있나요? 선생님 얘기 듣고 싶어서요. 혹시 TMI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B : ??? 뉘슈? 이게 뭐여?
A : 아, 저는 학생이고요~ TMI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B : TMI? 그런 건 잘 몰러...
A : 아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가려고 한다.)
B : 잠깐, 젊은이. 대학생인가?
A : 네. (???)
B : 저번 주에 우리 손자가 그 명문대 있잖아, (갑자기??) 한국대, 한국대 알아? (네...) 거기를 대학교에 입학을 해서 내가 입학식을 갔는데 (세상 행복한 표정)
A : ... (귀찮음의 호흡들)
B : 요즘 젊은이들이 참~ 이러쿵저러쿵 ~ 까르르까르르 (신세 한탄으로 주제 넘어감)
A : (얘기를 끊고 뒷걸음질 친다) 예. 선생님, 들어가세요~.
B : 아니, 잠깐 얘기하자며...

A : (멀어지며 혼잣말로) 아, 완전 TMI네


대략 이런 이야기. 나름 블랙 코미디를 담은 페이크 다큐. ‘굳이 필요 없는 정보, TMI는 장난처럼 쓰이지만 사실 듣기 싫을 때 쓰는 무서운 말이다. 우리는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절정은 마지막 대사, 그리고 지가 먼저 말 걸었으면서 도망치는 A의 모습. 페이오프 가득한 비꼼에 무수히 많은 악수의 요청이...! (그때는 감격해서 눈물 났는데 지금 보면 쪽팔려서 눈물 난다.) 이제 배우가 필요했다.


수색역 앞 주차장에서 산책 중인 노부부를 발견했다. 용기 내 말을 걸었더니 웃어주신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젊은 청년이 기특하다며 사과를 주신다. 심지어 할머니는 예전에 연극을 하셨단다. 그럼 이제 섭외를 하자. 그래서 그런데... 저랑 같이 영상 찍어주실 수 있나요? 별로 어렵진 않아요! 속으로 생각했다. 취지도 좋고, 대사도 짧고... 그런데 할머니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건 안돼.” 아까 전 사과를 주시던 모습이 아니다. 나를 한참을 보시다가, 나지막이 입을 여셨다.


“내가 이 꼴을 누구한테 보여준다고.”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계셨다.


앗, 설득에 들어갔다. 진짜 방송도 아니고, 불편하시면 상체만 클로즈업으로 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그랬다. 휠체어를 탔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주제만 신경 썼으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완강했다. 아깐 분명 취지도 좋고 잘해보라 말씀하셨는데... 시간은 재깍재깍. 급한 대로 할아버지와 찍었지만 결과물은 실망스러웠다. 그 날 내내 할머니 생각에 찝찝했고, 다음 날엔 할머니께 죄송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국 그 회사엔 떨어졌다.


방송은~ 장난이~ 아니야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구상과 구현은 완전히 다르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게 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제까지 쓴 프로그램 기획안들이 얼마나 보잘것없어 보이던지. 내 목표인 ‘캐릭터 버라이어티(지난 글  https://brunch.co.kr/@juancho/10 후반부 참고)’를 만들려면 어떤 능력과 센스가 필요한지도 생각하게 됐다.


기획안 쓸 때 가장 쉬운 게 가상 캐스팅이다. 하지만 현실은... (출처: MBC)


둘째, 카메라는 권력이다. 촬영은 사람을 둘로 나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화면엔 찍히는 사람만 나온다. 이들은 도망칠 수 없다. 꼼짝 못 하고 기록되는 신세다. 많은 사람이 카메라의 존재만으로도 움찔한다.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 생각보다 정말 많다. 방송이 낯선 사람은 더하다.


그래서 캐스팅은 어렵다. 프로그램 제작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담는 일이다. 동의가 필요하다. 하다못해 배경으로 나오는 엑스트라 알바도 촬영 동의 서류에 사인한다.


하지만 <진사>의 캐스팅은 너무나 쉬워 보인다. 물론 연예인 출연자 말고, 군인들 얘기다.


나오고 싶은 연예인 참 많겠지만


출처: MBC


<진사>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가짜 사나이'라는 비판도 있지 내 생각은 다르다. 최초 설정만 제외하면 진짜라고 봐도 된다 생각한다. 촬영지도, 출연진도, 훈련도... 혹자는 ‘군대에서 어떻게 저렇게 행동하냐’고 말한다. 생각해보자. 빡세고 엄한 곳이 군대지만, 유명하고 힘 있는 사람 다 맞춰주는 곳도 군대다. 높은 사람 한 마디면 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진사>가 없던 군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설정 때문에 그렇지... 카프카 소설 <변신>은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면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그 장면을 가짜라고 하는 독자는 없지 않은가?


'진짜 군대'가 핵심이다. 연예인 패널은 교체할 수 있지만 군대는 뺄 수 없다. 해병대 캠프장에서 아무리 빡세게 촬영한다 한들 지금처럼 나올 수 있을까? 리고 그 진짜 군대의 핵심 군인이다. 출연진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특급전사, 교회에서 초코파이에 열광하는 병사, 허겁지겁 군대리아를 먹는 병사까지... 캐릭터든 연병장 배경이든 다채롭게 나온다. 인터뷰 컷 한번 없지만, 이 사람들 없으면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데 이 군인들, 어떻게 섭외했을까?


군대에 있을 때 <푸른거탑>을 재밌게 봤다. 다큐멘터리인 줄. (출처: CJ ENM 유투브 페이지)


아마 이렇게 시작됐을 것이다. 아, 아, 전달사항이 있다. MBC <진짜 사나이>가 우리 부대를 찍기로 했다. (와아아)‘아... 저는 쫌... 그런데요...’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입 밖으론 못 낸다. 하루 종일 왁스 안 하면 다행이겠지. 이내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고, 촬영 시작! 카메라는 부지런히 찍어댄다. 구보하는 일병 김군인도 찍히고 어리바리 연예인을 교육하는 최병장도 찍힌다. TV에 뭐가 나올지는 모른다. 결정권자가 도장을 찍었으니 문제는 없다.


나도 겪었다. 제대를 앞둔 병장 때, 갑자기 본부대장이 전 병력을 소집했다. 대장은 신나 보였다. 부대에 MBC <진사>가 촬영 올 거니까 막사를 빡세게 청소하자, 알았지? 너네 생활관 관물대까지 다 나올 거니까 대충 하면 안 된다잉~ 대장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우리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설령 카메라에 잡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군대 일처리가 얼마나 딱딱한 지를. 제약은 많고 기준은 깐깐하고 융통성은 없다. 근데 또 알고 보면 얼마나 허술한지... 군에서 작성한 <진짜 사나이> 촬영 허가 서류를 상상해 보자. 군 결정권자의 도장이 찍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있을까. 보고서는 수백 번의 수정을 거칠 거고, 행정 계원은 그때마다 수도 없이 불려 나테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병사들의 촬영 의사를 묻는 지휘관이 있을까? 거의 없을 거라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채널을 돌리다가 <진사>를 보면 괜히 조마조마하다. 저기 나오는 병사들과 간부들 중에, 나오기 싫은 사람은 없었을까 싶다. 그들은 티비에 나오는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받지 못한 출연료 생각을 하려나. 쓸 데 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제작진도 별 신경 안 쓸 것이다. 안 써도 된다. 군인이니까, 뭐...


하지만 나는 찜찜하다. “내가 이 꼴을 누구한테 보여준다고.” 매몰차게 거절하던 할머니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웃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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