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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Nov 07. 2018

<범인은 바로 너>가 실패한 이유 (上편)

이게 다 드라마 때문이다

<범인은 바로 너> (이하 <범바너>)시즌 2 제작이 확정되었다. ‘넷플릭스 x 유재석’이라는 문구로 한창 떠들썩했던 1년 전. 다들 뭔가 획기적인 콘텐츠를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을까. 당장 넷플릭스에 가입한다는 둥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많았다(그게 나다). 하지만 시즌 1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많이 소비되지 못했고,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 했다. <런닝맨>이나 <크라임씬>의 아류작 취급을 받기도 했다. 왜 대중을 사로잡지 못했을까?


나는 <범바너>가 취한 드라마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와 예능 사이의 어딘가


<범바너>의 방식은 드라마다. 플롯이 있다. 일면식이 없는 (것으로 설정된) 7명은 의문의 초대장을 받아 게임을 하러 갔다가 살인을 목격한다. 그 계기로 ‘K의 탐정단’이 만들어지고, 탐정이 된 7명은 매 회 사건을 해결한다. 프로그램은 출연진의 연기로 흘러간다. 출연진은 극 속 캐릭터가 되어 준비된 대사를 친다. 그러다가 현실과 충돌하기도 한다. 탐정 유재석이 단서를 추적하다가 폴댄스학원 ‘레나바’를 갔는데, 알고 보니 박나래가 원장이라 당혹스러워하는 식이다. <범바너>가 보여주는 재미의 대부분은 이런 현실과 설정의 충돌에 있다.


안재욱과 유재석은 추리하다 말고 20분동안 폴 댄스를 배운다. (출처: 넷플릭스)


리얼과 언리얼의 교차. 이런 방식, <음악의 신>과 <UV 신드롬>이 시도해 성공한 전략이다. 카메라 앞에서 이상민이 채권자에게 망신당하고, 유병재가 이지혜에게 뺨을 맞는 모습들. 짠 듯 안 짠 듯한 상황과 출연진의 돌발 행동. 거기서 웃음이 터진다. 진짜일까? 보는 사람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가짜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목표가 없는, 농담 따먹기를 위한 플롯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바너>에게 모호함은 독이다. 출연진과 시청자에게 추리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추리 프로그램의 성패는 시청자가 몰입 여부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범바너>는 완전히 실패했다. 프로그램 전반에 보이는 드라마식 연출 때문이다. 순서대로 제시되는 단서. 오차 없이 맞아 떨어지는 문제 풀이. 긴박한 상황에도 구도와 합이 딱딱 맞는 카메라 앵글까지. 2화 다이너마이트 씬이 이런 특징의 집약체다. 우현이 던진 다이너마이트를 3분 안에 제거해야 하는 탐정단. 아침의 기억을 되살려 문제를 풀어야 한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출연자들. 그러다 30초가 남았을 때 탐정단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힘을 합친다. 뚝딱뚝딱, 결국 3초가 남았을 때 유재석이 폭발과 관련한 뇌관을 제거! 그리고 이어지는 어설픈 생존 세리머니. 이 모든 과정은 클로즈업 샷과 바스트 샷으로 이어진다. 긴박함은 없고 민망함이 남는다.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모든 것은 대본대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30초 안에 답을 못 찾으면 이들은 깔려 죽는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김종민. (출처: 넷플릭스)


이런 방식은 출연진과 시청자를 완전히 갈라놓는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 짜고 치는 고스톱을 우리가 왜 봐야 하는데? 어차피 다 풀고 범인을 잡을 거면서.’ <범바너>의 장르는 추리 예능이다. 함께 범인을 잡을 것을 기대하고 클릭한 시청자가 이 드라마 속에 들어갈 공간이 어디있는가.


추리와 드라마의 불협화음


성공한 기존 추리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더 적나라하게 문제가 드러난다. <크라임씬>은 제작진과 출연진의 거리가 멀다. 롤 카드와 단서를 던져 주고 추리는 출연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설령 결정적 단서를 누군가 놓쳤더라도 제작진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대로 간다. 시청자가 모르는 만큼 출연진도 모른다. 그래서 시청자는 기꺼이 추리에 참여할 수 있다. 범인이 누굴까 고뇌하는 플레이어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짜고 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시청자는 탐정 놀이에 마음껏 몰입할 수 있다. 본방송에 진행하는 실시간 시청자 투표는 덤이고.


결백을 외치는 그녀의 울음에 시청자도 함께 흔들린다. (출처: JTBC)


<대탈출>은 어떤가. 이들도 시청자에게 추리할 공간을 내줬다. 대탈출에는 ‘얻어걸린 추리’가 많이 나온다. 답을 맞혀야 열리는 열쇠를 강호동은 힘으로 부수는 식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반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처럼. 일일이 단서 풀이를 해주지도 않는다. 동시에 정교한 카메라 앵글을 과감하게 포기한다. 가까이서 출연진을 담지 않는다. 멀리서 찍어 흐린 화면, 세련되지 못한 화면이 많다. 이미 세트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멀리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할 뿐이다. 그래서 출연진이 고생 끝에 방을 탈출할 때 시청자는 함께 기분 좋다. 강호동과 시청자는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드라마에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나 빼고 다 짜고 친 판에 플레이어로 들어가고 싶진 않다. <범바너>는 그 점을 간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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