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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Dec 13. 2018

2038년에도 TV는 살아 있을까

유투브에 맞서는 TV 예능의 생존법


어제 최종 면접을 봤다. 저번 주엔 한남동까지 가서 신체 검사를 했다. 이 일로 진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겠군 했다가도, 붙으면 군소리 없이 가야하나? 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며 설레발 쳐본다. 피디, 입사, 방송국 같은 단어가 정말 눈 앞에! 불안하지만 설렌다. 어설픈 행복을 만끽하는 하루하루. 더이상 시사상식도, 필기시험용 작문도 보고 싶지 않다.


A: PD가 되면 뭐 만들고 싶어요?
B: 음... ‘캐릭터 버라이어티’를 만들고 싶습니다. 캐릭터 버라이어티란... 이러쿵저러쿵


어제의 한 장면을 더듬다가 잡생각을 시작한다. ‘브런치에 어떤 글을 쓰면 사람들이 많이 볼까’ 같은 게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한다. 그러다가 문득 방송국 피디가 되어 있는 나를 떠올려봤다. 편집실이나 촬영장에 있는 모습을. 그런데 걱정된다. 웬걸, 마냥 즐겁지가 않다.


이번 글은 걱정에 대한 이야기다.




TV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미지 출처: 신문과 방송)


점점 사람들이 TV를 안 본다. 핸드폰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카페에서도 볼 수 있다. 리모콘을 둘러싼 눈치싸움도 옛 이야기. 울 어머니는 퇴근하시면 안방에서 푹(POOQ)으로 드라마 본다. 나와 동생은 노트북 삼매경. 텅 빈 마루에 아버지만 남아 TV를 본다. 아버지는 외롭다.


TV는 더 고독해질 운명이다. 이제는 유투브를 보기 때문이다. 요즘 아기들은 식당에서도 얌전하다. 유투브에 시선이 뺏겨 울 생각을 까먹는 수준. 2049세대는 유투브에 익숙하고, 0019는 유투브가 곧 삶이다. TV를 위한 공간은 없다. 집 전화기가 사라지듯 TV도 사라질 것이다. TV 방송국, 특히 예능국의 운명은 시한부 인생 같다. 수십 년 독점하던 웃음을 죄다 빼앗겼다. 자신의 존재 이유인 그 웃음을.


살려야 한다 (출처: SBS, KBS, MBC, JTBC)


살아야 한다. 그래서 예능국은 시도한다. 인기있는 웹 콘텐츠를 TV에 옮겨본다. 유명 1인 크리에이터를 출연자로 내세우는가 하면, 유투브 소스로 예능을 채운다. 하지만 죄다 실패.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나 KBS <영수증> 정도만 성공했다. 이런 시도를 계속 해야 할까. 하는 사람도 , 보는 사람도 찝찝하다.


TV와 웹 콘텐츠의 조합, 왜 어색할까. 태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웃음 포인트도, 제작 문법도 다르다.


<와썹맨>을 티비에 싸서 드셔보세요


탕수육을 좋아하신다는 게 학계의 정설 (출처: 유투브 ‘룰루랄라 스튜디오’ 채널)


2018년 최고의 웹예능 <와썹맨>을 보자. GOD 박준형이 구독자가 추천한 ‘핫플’을 찾아가는 프로그램. 박준형의 여포 캐릭터와 예측 불가능한 시민들의 반응이 반복된다. 재밌다. TV에 옮기면 어떨까? 냉정하게 보자, 박준형 캐릭터를 빼면 <VJ특공대>와 포맷이 같다. 기획안 단계에서 막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용은 그렇다 치자, <와썹맨>은 편집이 ‘진짜’니까. 일단 호흡이 짧다. 말과 말 사이의 틈은 웬만하면 자른다. 서사 구조도 무시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웃긴 장면에 일단 멈춘다, 쇼트에 자막을 넣고 강조, 하던 이야기를 끊고 다음 시퀀스로 넘어간다. TV로 옮겨보자. 어지럽다는 불만, 스토리가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지 않을까? 프로그램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생길 거다.


이세상 논리가 아니다. (출처: 유투브 ‘침착맨’ 채널)


<침vs펄토론>은 어떨까.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주제를 갖고 하는 엄격.근엄.진지 심층 토론’ 그럴싸하지만 실상은 이말년과 주호민의 아무말 대잔치다. 어이없는 얘기를 진지하게 뱉는 게 웃음 포인트. 길이가 50분인데도 조회수가 높고 인기가 많다. 1039 시청층을 노리고 TV로 옮겨볼 순 없을까? 무엇보다도 화면이 단조롭다. 카메라는 미동도 없이 두 명만 비춘다. 새로운 그림을 만들자니 핵심 포맷인 토론이 죽는다. 꿀잼 B급 감성을 자랑하는 <침vs펄토론>도 TV로 넘어가면 조잡한 아마추어 영상으로 전락한다. 다르다. 문법과 웃음 포인트가 애초에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송국은 웹의 소스를 스크랩해 TV로 붙여넣는 데만 애를 쓰고 있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인터넷 웃음’을 어떻게 TV에 합칠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웹 콘텐츠가 만들 수 없는 웃음을 TV에 보여줄 궁리를 해야 한다.


약점 채우려다 강점 다 날려먹기 전에


제작자 입장에서 웹 콘텐츠의 가장 큰 강점은 가성비다. 적은 비용과 노동력으로 그럴싸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기술과 플랫폼의 발달 덕이다. 심지어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할 수 있다. 카메라 하나로도, 한 명의 출연진만으로도 촬영은 가능하니까. 그림이 단순하고 촬영물이 적으니, 편집할 절대량도 적다. 3분짜리여도 업로드에 문제가 없으니, 사소한 컨셉 하나로도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반대로 말하면 스케일을 못 키운다. <침vs펄토론>을 초호화 세트장에서 찍은들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설령 다섯 명의 작가가 추가된다고 해도 대본에는 티가 안 날 것이다. <와썹맨>도 마찬가지다. 카메라 스태프가 10명 늘어나도 정작 찍을 화면이 없다. 웹 콘텐츠의 태생적 한계다. 출연자 한 명당 카메라 하나가 붙는 SBS <런닝맨> 같은 콘텐츠는 만들기 힘들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압도적 세트장...! 압도적 촬영...! 압도적 압도...! (출처: tvN, 채널A)


그러니까 방송국 예능PD는 유투버의 위협을 걱정할 게 아니라, 그들이 기술력으로 절대 메꿀 수 없는 지점을 봐야 한다.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는 건 아니지만... 결국 비전은 그런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나중에 나는 가상 세계를 만들고 싶다. 거대한 촬영장에, 어떠한 규범이 있는 가상 세계를 만들고, 다양한 캐릭터를 캐스팅한 뒤, 공동 목표와 개별 미션을 주는 시뮬레이션 예능 게임. 인간관계와 신뢰를 다룰 수도 있고(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골든 슬럼버>를 감명 깊게 읽었다. 영화  때 사카이 마사토와 함께 울었다), 비정함과 배신을 다룰 수도 있다. 나는 캐릭터 버라이어티라고 이름 붙였는데, 될 지는 모르겠다.


지망생의 특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꼼짝 못하는 처지다. 신문 읽고 책 읽고 브런치 글 쓰고... 기획안을 구상하다가 구겨버리고! 이게 바로 백수의 삶. 지망생 주제에 20년 후 방송국 환경이나 걱정하고 있다니. 그렇지만 이런 말이 있다.


‘빛이 나는 순간순간의 기억은 황홀했지만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을 떠올리다보니 때때로 토가 쏠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런 건 사실, 시청자들은 알 필요조차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가가 소설이나 잘 쓰면 되지, 나 사실 이거 쓰면서 되게 괴로웠다구요 어쩌구 고백해봐야 본인만 구차해질 뿐이다.’
- 나영석PD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중에서


그렇다. 나는 지망생이다. 그러니까 이런 잡생각도 공들여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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