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정환Juancho Feb 23. 2024

<대학전쟁>의 매력들

처음에는 비하인드 제작기를 쓰려했다.

 

'사실 Day1 메인 매치 <300>의 원제는 <500>이었습니다' 라거나 '서울대 팀에 여자 출연자가 없는 이유는 ~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촬영 에피소드/미공개 썰을 풀어보면 재밌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이것저것 다 써놨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일단 마음에 걸렸다.

이를테면 '<대학전쟁>은 나만의 프로그램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이 만들어낸 콘텐츠에 대해, 메인 피디도 아닌 내가 유세 떠는 건 아닌지? 내 태도가 그렇지 않아도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비칠 것 같다.

 

다시 보니 써놓은 글이 꽤 무겁다.

꼴사납기까지  것 같아 이전 글은 삭제.

그저 내가 느낀 이 콘텐츠의 매력을 적어보기로 했다.


한번 도전해보세요

 

난 <대학전쟁>이 꽤 가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기획/제작 단계부터 믿었고 글을 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특히 세 가지 특징들 때문에.


1. 이전에 없던 포맷

 

3년 전 입사 자소서에 이런 글을 썼다.

 

'세상에 콘텐츠가 너무 많아졌다. 반면 인간의 시간은 그대로다. 그래서 시청자는 생각한다. '기시감 드는 걸 굳이 봐야 하나?' 다 보기엔 시간이 아깝기에, 판단 기준이 생긴다. 본 적 없는, 그래서 궁금한 걸 선택하려고 한다. 그게 사람때문이든 포맷때문이든. 요즘 시청자는 신선하다고 느끼면 디테일이 떨어져도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 PD는 시청자의 시간을 뺏는 사람. NEW 콘텐츠를 떠올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게끔 완성할 줄 알아야 한다. 난 그 두 과정을 다 좋아한다. (... 중략)'


오... 조정환 지망생... 좀 치는데?

<워크맨> <전과자> <네고왕> 등을 만든 고동완 PD는 콘텐츠를 만들 때 '새로운 정보'를 꼭 넣는다고 하더라...

 

2024년 미디어 시장은 냉혹하다.

콘텐츠는 계속 나오는데, 대다수가 언급도 못된다. 대형 프로그램도 예외 없다. 제작비가 수백억 들었다는데, 그 돈은 칼바람이 패딩 스치듯 사라지는 모양새다. 뭐가 문제일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새롭지 않아서'다.

음... 새롭지 않으면 굳이 볼 필요가 있나? 시간 아깝다. 바빠 죽겠는데.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다가 얻어걸리는 우연한 발견’ 같은 시청은 이제 없는 것이다.


'찾아서 봐야만' 하는 지점이 필요하다.

잘 몰랐던 정보나 새로운 것이거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점에서 <대학전쟁>은 '볼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상위 5개 명문대 재학생들이 벌이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 배틀’


한 번은 확인하고 싶지 않나? 어느 대학생이 제일 똑똑할지? 연대랑 고대 중엔 누가 이길지?

 

2. 특화된 장르

 

어린 시절 슈퍼에선 ‘종합과자선물세트’라는 걸 팔았다.

90년대생 다 집합...


큰 바구니에 여러 과자들이 담겨있고, 짤락거리는 비닐로 덮여 있던 묶음 상품. 맛동산, 엄마손파이, 버터링, 야채타임... 바구니 하나만 사면, 온갖 다양한 맛의 과자를 맛볼 수 있더랬다.


TV에도 종합과자선물세트 같은 프로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한 프로그램 안에 1부, 2부, 3부가 모두 들어있다든지, 쇼/버라이어티/스튜디오 녹화 내용이 다 있는 식. <무한도전>과 <1박2일>도 그랬다. 낄낄대다가 싸우기도 했다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 감동이 있는 본격 희로애락 방송. 말 그대로 ‘시청자를 울고 웃기’는.


하지만 2024년에 종합과자선물세트 같은 콘텐츠는 별 인기가 없다. 이제 사람들은, 바구니 하나에 과자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나영석 PD의 새 예능이 <데블스 플랜> 2라고 한다면 모두가 의아해할 것이다. 아니... 왜?

<신서유기> 새 시리즈나 내놓으라고 하겠지.  먹으면서 보기에 적당한 밀도의, 대단하진 않지만 소소하게 낄낄댈 수 있는 농담 같은 예능. 시청자가 나영석 PD에게서 원하는 건 그런 거다. 사실 그뿐, 더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치열한 심리 싸움은? 왜 나영석 PD한테 찾아. 정종연 PD가 만든 서바이벌 보면 되는데.

바꿔 말하면, 어떤 콘텐츠든 특화 지점이 없으면 선택받기 어려워졌다.


'구세대 예능'을 표방하던 <홍김동전>은 결국 폐지됐다. 골고루 담겨있던 이 프로그램을 난 참 좋아했다.

 

<대학전쟁>을 선택한 사람이 기대하는 바는

'똑똑한 플레이어', '천재적인 게임 플레잉', '치열한 경쟁' 정도가 아닐까?


메인 PD 선배는 계속 되물었다. '출연자의 천재성이 드러날 수 있는가?', '게임하는 모습에서 똑똑함이 보이는가?' 편집 방향도 그랬다. 의미 없는 갈등은 지양하고(관심 끌기 위해 어거지 싸움을 만들어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출연자들 전략과 천재성을 짚어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다들 너무나 똑똑했기 때문에 굳이 건들 것도 없었지만.


다행히 리뷰나 평점을 보면 그런 코멘트가 많더라. 대단하다, 멋있다, 진짜 천재 같다, 도파민 터진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입 벌리고 봤다... 두뇌 서바이벌 팬에게 딱 좋지 않나?


3. 진심인 출연자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짜를 싫어한다.


내가 보는 것이 진짜이길 원한다.

스포츠에서 가장 나쁜 죄질은 승부 조작이며

심지어 드라마나 영화 볼 때도 실제 같길 원한다.

이게 말이 되냐며, 개연성 없다고 욕먹는다. (근데 원래 영화는 지어낸 얘기 아닌가?)

 

고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가짜는 없어야 한다.

시청자도 다 안다.  이게 실제 상황인지 짜고 치는 연기인지.

출연자 나와서 그저 하하호호 웃다가 눈치 보면서 서로 포기하면 흥미가 떨어진다. 자존심 걸고 찐으로 붙으면 누가 이기는지 보고 싶은 것이다.


<대학전쟁>  촬영 날, 메인 매치 <300>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올림픽 중계 보는 것 같은데?



다섯 대학의 오답 개수가 줄어드는데, 마치 100m 달리기 하듯 엎치락뒤치락한다. 참가자들 표정도 심상치 않다. 말도 없이, 다들 초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따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20명 모두가 '진짜'다.

수많은 방송 카메라에 아랑곳 않고, 게임에 빠져들어준 것이다. 아마도 탈락하기 싫어서, 이기고 싶어서, 자존심이 허락 안 해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러니 구경하는 게 재밌을 수밖에.


사실 그런 모습은 의도한 것이었기도 한다.

섭외 단계에서 몇백 명의 지원자를 만났는데, 우리가 출연자에게 요구한 건 아주 단순했다.

그건 바로 두뇌 게임을 좋아하느냐. 그리고 잘하느냐.

그렇게 섭외 확정한 최종 24명은, 우리가 짜 놓은 판 위에서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놀아주었다.

현장에서 그 순간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만큼.


그렇게 <대학전쟁>이 만들어졌다.


요즘에는 다시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한창일 땐 고개 돌릴 짬도 없었는데, 다 끝나고 뒤돌아보니 좀 보이는 것 같다. 우리 프로그램이 어땠는지.

고민도 있고 기대도 된다. 시즌2는 더 잘될 수 있을까? 나는 더 잘 할 수 있을까?

글도 안 써진다. 이래저래 불안해서 손가락이 안 눌리는 건지.


다시 시작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