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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Dec 31. 2018

스무 살에 마광수 수업을 들었다면

2018년 마지막 날 일기


요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아니 낼모레 서른 방구석 백수가 시작부터 허언증 ㄹㅇ;;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다. 화 낼 일도 없고, 항상 차분하며, 머리도 잘 돌아간다. 일과도 아주 단순하다. 집에서 커피 마시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취침, 혹은 여자친구의 퇴근을 기다린다. 돈이 없어 술을 맘대로 못 먹는 거 빼면 불편할 것도 없다(나중에 잘 되면 꼭 베풀 거임!). 이제껏 살면서 지금이 가장 편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다. 17살 때부터 찾아다녔으니 10년 만이다. 작년에 막연히 꿈꿨던 방송 PD라는 목표가 올해는 뚜렷해졌다. 흔들리지 않으니 그냥 이루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민이 없어졌다. 사실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안 됐다. 그 전엔 정리가 잘 안됐다. 뭔가 알겠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


계기가 있다. 서점에서 우연히 마광수의 책을 마주쳤고, 이렇게 쓸 수 있게 됐다.


두 유 노 마광수?


故 마광수 (1951- 2017) 시인, 소설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냥 야설이다. 정말 ‘뜨악’한다. 인터넷 익명 게시판도 아니고 정식 출판된 책에 이런 표현들이 있다니. 낯 뜨겁고 대놓고 야한 수준이라 여기에 옮기긴 힘들다. 궁금하면 읽어보시길. 문장이 쉬워 술술 읽힌다. 아쉽게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김영하 쪽이 더 섹시하고 재밌다.)


정작 나를 자극한 건 다른 데 있었다. 어떻게 대놓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알 거 다 아는 사람이, 27살 때 최연소 대학 교수가 됐다는 사람이,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 뭔 생각으로... 진짜 변태인가? 마광수는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가 쓴 에세이와 교양서적을 여러 권 빌렸다. <마광수의 뇌구조>,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 <멘토를 읽다>, <인간에 대하여>. 글이 쉬워서 단숨에 읽었다.


출처: yes24


그런 얘기하면 외않되?


많은 사람들이 마광수를 괴짜로 안다. 거의 색마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해다. 그저 과하게 솔직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인간의 본능인 성(性)을 죄악시하지 말자, 무조건 덮지 말고 더 많이 말하자, 그럼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사회는 더 건강해질 거다, 라는 말을 소설에 담았을 뿐이다. 점잖게 말하면 ‘대한민국에 팽배한 지나친 엄주의를 깨자’는 얘기. 책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역시 더 궁금하면 마광수를 읽어보시길.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막연한 추정을 근거로 내세우며 이른바 ‘외설적 표현물’(어떤 것이 외설이고 어떤 것이 외설이 아닌지는 정말 모르겠지만)의 창작자를 형사범으로 처벌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논리적 근거로 내세우는 이들이 많다. 인간의 성(性)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동물적 쾌락에 중점을 두어 성을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짐승들은 적어도 그런 식의 ‘위선’은 없다. 짐승들은 성과 죄의식을 결부시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성을 죄의식에 결부시켜 어거지 거짓말을 늘어놓는 게 예사다. 도대체 ‘숭고하고 아름답게’ 섹스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이처럼 개방된 세상에서 생식을 위한 섹스만을 ‘할 수 없이’ 하거나 ‘경건하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피임을 하는 것도 죄요, 오럴섹스 등의 애무를 나누는 것도 죄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뻔뻔스럽게 주장할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요,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얼렁뚱땅 도덕가로 행세하며 사회적 기득권을 챙길 수 있는 게 바로 인간 사회인 것이다.
역사상 거대한 악(惡)은 모두 다 이성을 빙자하여 저질러졌다. 참혹한 자연파괴도 이성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살상무기의 개발이나 세계적 규모의 전쟁들도 ‘역사를 지배하는 이성의 힘’을 확신하는 몇몇 엘리트 독재자들에 의하여 감행되었다. 늑대 소녀 가마라는 선교사의 ‘이성교육’ 때문에 죽어갔다고 볼 수 있고, 러닝셔츠를 입고 있다가 비 맞고 감기 들어 죽은 남태평양 원주민들도 선교사의 ‘이성훈련’ 때문에 죽어갔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은 결코 비윤리적인 변태심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원초적 욕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런 욕구들은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말이나 글 또는 예술작품 등을 통해 대리배설시키면 어떤 부작용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윤리적 결벽주의자에 의해 음험하게 숨겨져 병적으로 변형될 때,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가 국민의 영웅이 되는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곧 감추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인간사회의 문화계가 이뤄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이 ‘은폐된 이중성’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병의 근원은 솔직하지 못해서 생긴다. 돈을 벌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된다. 철저한 장인정신을 가지고 통속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돈을 벌고 싶은데 통속적이라는 말을 듣기는 싫다 보니,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양다리 걸치기’ 식의 어정쩡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는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요한복음 구절이자 연세대 교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라고 했다. 그토록 야한 글을 쓰는 것도 그저 쓰고 싶어 쓰는 거다. 방식의 문제 때문에 진심을 숨기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까.


난 마광수처럼 야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글로 옮기고 싶지 않으며. 그가 겪었던 고난과 비판과 비난을 조금도 체험하고 싶지 않고, 견뎌낼 자신도 없다. 한마디로 우리 둘은 관계없는 사이. 그렇지만 책을 읽으며 조금 머쓱했다. 내게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하지 않다. 인정? 어 인정~


뭘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17살 때부터 했다. 답을 찾으려고 정말 매사에 열심이었다. 고등학생 땐 홀로 독서실에 박혀 새벽까지 공부했고, 대학생 땐 응원단을 오래 했고, 졸업할 때가 돼서도 뭔가 아쉬워서 멕시코에 교환학생을 갔다. 그때마다 성과도 얻었다. 근데 답이 안 나온다. 스트레스였다. 물론 매 순간 진심을 다했고 즐거웠으니 후회는 전혀 없다. 단지 후련하지가 않았다는 거다. 자신감보단 걱정이 늘었다. 왜 그리 걱정이 심했을까.


마광수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좀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솔직하게 하고 싶은 걸 생각하보다, '실체는 모호한 멋진 인간’이 되고 싶은 거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장래희망에다가 ‘지성인’이라고 쓴다거나(허세 오졌다...) 언제 어디서나 점잖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고 다짐한다거나... 그냥 열심히 나를 꾸몄다.


그러니까 인정을 안 했다. 내가 못하는 걸 발견하면 숨기기 바빴고, 좋아하는 게 있어도 도전을 안 했다. 그 ‘멋진 인간’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니면 그랬다. 솔직할 생각도 못했다. 어색하고 창피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연습한 적도 없어서. 그래서 최근까지 내가 솔직하지 않다는 점 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애가 정말 엄청난 용기를 가졌다.


마광수를 읽고 나니 요즘 내 마음이 편안한 이유를 알겠다.


PD라는 목표는 꾸미려고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솔직해지자!’하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20대를 거의 다 쓸 만큼 이곳저곳에서 헤매고 난 후 돌아보니 그렇게 됐다.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를 쓰고 싶어서 쓴 것처럼, 나는 그냥 그 일이 하고 싶을 뿐이다.


연세대학교 교양과목 ‘문학과 성’


출처: 나무위키


마광수 교수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를 줬는데, '에로틱 판타지 소설(=야설)’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가 연대생은 아니지만, 스무 살 때 그 수업을 들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다. 조금 더 일찍 충격을 받았을 텐데,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었을 텐데, 더 빨리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좇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개소리다. 나는 17살 때부터 이런 그런 저런 생각(=개소리)을 많이 떠올려왔고, 멋지게 포장하는 데 몰두했다. 동시에 주위에서 개소리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든가 말던가 상관없다. 누구에겐 정말 개소리니까. 인정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솔직한 게 짱이다.


아무튼 내 목표는 ‘실체는 모호하지만 멋진 인간이나 지성인’에서 ‘캐릭터 버라이어티를 만드는 PD’로 바뀌었다. 2018년에 일어난 변화다. 1년 동안 애썼다. 계속 애쓰자.





추신)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 솔직히,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복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나눠요! 내년에도 뵙길 바랄게요. 파이팅!


추신2)  저는 이 글들을 정성 들여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가 지망하는 일이 그런 일이니까요. 쑥스럽다고 빼면 아무도 제게 "제발 그 글 보여주세요"라고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재미있고 좋은 글이 널렸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더 잘 쓰고 싶습니다. 발전하고 싶어요. 채찍질이 필요합니다. 쓴소리를 듣고 싶어요. 진심으로! 형편없는 글에 좋다거나 재밌다고 말하는 고통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혹시 괜찮으시다면, 댓글이든 메시지든 코멘트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악평이면 더 좋고요! 브런치에서의 2019년 바람입니다. 그냥 지나치셔도 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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