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전쟁2>가 지나고
충전 중인데도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고사양 게임을 하거나 충전 잭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거나 할 때.
아주 서서히 줄어드는 배터리 잔량. 15%에서 14, 13을 거쳐 기어코 0까지 간다.
그런데 웃긴 게, 전원은 꺼지진 않는다.
콘센트에 꽂혀 있으니까. 최소한의 전류는 흐르고 있는 것이다. 충전기에 매달려 대롱대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24년 마지막 날, 내 꼴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몸은 움직이는데 머리는 안 돌아가는 '저속 충전 모드'
글을 어떻게 써야 할 지도 잊어버렸다.
너무 오랫동안 브런치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대학전쟁2>를 만드는 9개월은, 꽤나 고됐다.
연출 피디는 고작 6명. 보통의 팀보다 좀... 많이... 적은 숫자다.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각자의 일상을 반납하는 것.
6명의 피디는, 수면과 식사 정도만 빼고 모두 제작하는 데에만 시간을 썼다. 반년이 넘도록.
그 왜, 최선을 다해본 연애는 끝나도 아쉬움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마음이었다. '더 잘해볼걸...' 같은 생각은 들지도 않았고(그럴 리가 없어...) 마지막 화 엔딩을 편집하고 나서도 기쁘다기보단, '이제 끝인 건가' 정도의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으니 뭐 더 이상은...
그리고 맞이한 휴가. 아무도 없는 카페에 들어가 적막을 체험해 봤다. 기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만끽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셈해보고 싶었다.
지난 1년간 내가 무엇을 얻고 뭘 잃었는지를.
먼저 얻은 것.
자신감, 능력, 그리고 배짱.
대학전쟁을 만나기 전 무척 불안했다.
일하고 싶어 죽겠는데 일이 없어서. 회사 사정으로 제작 공백기가 생기고 있었고, 찔끔찔끔 주어지는 업무도 '내 일'은 아니었다. 쌓인 갈증은 불안으로 치환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버림 안되는데. 실력 쌓아야 하는데... <대학전쟁>은 비어감을 걱정하던 속을 채워줬다. 일단 뭘 많이 했다. 기획도, 촬영도, 편집도... 버거워도 계속 계속.
특히 '책임지는 것'을 거듭 겪었다. 핑계 대지도 누굴 탓하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난 작전도 짜보고 무식하게 부딪혀보기도 하며 여러 문제를 해결해 보았다. 9개월의 하드 트레이닝. 아찔하고 불안한 나날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경험을 통해 난 확실히 '나아졌다'.
일종의 '위닝 멘탈리티'도 생긴 것 같다. 2개의 시즌을 낼 동안 우리 콘텐츠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그 사실을 여러 경로로 확인하는 게 기뻤다. '의도가 통했구나.' '재밌으면 보는구나.' '하면 또 되네.' 놀라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됐다. 이런 재미. 그러니까 이제 내가 만지는 건 절대 그냥 흘러가게 두진 않을 거야.
쓰다 보니 웬 자의식 과잉인지 모르겠네. 웩, 됐고
그렇다면 잃은 건 뭘까.
음... 위에 적은 몇 개 빼고 다?
일이 끝나가자 막 아프기 시작했다.
소화도 안되고 몸이 쿡쿡 쑤시고, 체력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비단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저릿함도 상당했다. 가족을 그간 더 아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이 핑계 저 핑계로 아득해진 여러 관계에 대한 찝찝함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새삼 그동안 '일 외의 것'은 모두 최선을 다해 유예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뿐이랴.
뉴스를 안 본 지도 새로운 콘텐츠들 못 챙겨본지도 꽤 됐으니까
시야, 세상과의 거리감, 사람들과의 공간감 같은 것들도 2024년 초여름 정도에 멈춰 있다.
얻은 만큼 확실하게 잃어온 걸까. 좀 숭숭하다.
이게 벌써 몇 주 전 이야기.
휴가를 받은 난 순천으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 묵으며, 뒤엉켜있던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보았다.
비로소 2024년을 마무리하는 기분이 든다. 조금 뒤늦지만.
2024년은 정말 재밌었다.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이제 <대학전쟁2>는 끝났고, 삶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딨는지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야 그다음 스텝을 밟으니까.
25년 새해에는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최대한 그러자!
(글도 많이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