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고 없는 것
여행 시작할 때, 지역주(酒)를 하나씩 먹어보리라 다짐했다.
이번에는 꼭 술과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적 허영심이겠지만 술 문화에 흥미가 있었다. 대학생 때 접한 거라곤 소주, 맥주(+가끔 먹던 빼갈도...)뿐이지만 증류주니 버번이니 이곳저곳에서 들었던 짧은 지식들도 있고, 멕시코에서 살 땐 투어까지 신청해 데낄라를 홀짝거렸다. 여행도 왔겠다 그 지역 특산주를 마시면 꽤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런고로 전주에서 정의를 만나자마자 전주 술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의는 친구이자 같이 공부했던 동료. 지망생 때 <실패 챌린지>를 같이 만들었다. 지금은 전주KBS에서 PD로 일한다.)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강주를 한 병 사줬다. 재료인 배(梨)와 생강(薑)을 이름에까지 붙였다는 이 술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명주. 이전에 대한민국식품명인을 인터뷰한 경험이 있어, 이강주 빚는 과정도 취재했다고 일러줬다. 호오~ 이 고마운 동생. 내가 번지수를 잘 찾았구나.
잘 찾은 정도가 아니라 정의는 애주가였다.
어느 정도냐면 집 한쪽에 주류 섹션이 있고 (각국의 양주인데 대충 세어도 50병은 넘는다.) 브랜드별로 전용 잔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그 모습 자체로 진귀한 구경거리였는데 들어보니 여행 다닐 때마다 각국의 술, 관련 굿즈들도 사는 모양이었다. 선반 위에도 잔이 많았는데 색깔도 제각각이고 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의는 그중 하나를 꺼내주었다. 이강주와 잘 어울리는 유리잔.
그가 모은 술만큼이나 정의는 아는 것도 많았다.
터키 술 문화는 요래요래 있고, 위스키와 럼은 어떻게 다른지, 이 브랜드는 이 맛이 난다거나... 궁금한 걸 척척 대답해준다.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는 정말 술과 친해지고 싶어졌다. 멋진 취미를 가지고 싶은 마음 반, 드라이한 맛이니 블랜딩이니 하며 아는 척도 해보고 싶은 마음 반. 꽤... 멋있는데?
각설하고, 몇 년 만에 만난 우린 드디어 근황을 나누고 고충을 털어놓으며 꿈을 얘기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고생 많았다. 얼굴 보니 좋다. 짠~
분명히 말해둔다. 그날 술자리는 너무나 즐거웠다. 마지막엔 함께 영화를 보며 감상에 젖기까지 했다. 심지어 정의가 본인 방을 내준 덕에,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환대해 준 그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심술궂게도 잠에 드려는 순간까지 몹쓸 생각은 떨쳐지지 않았다. 그게 뭐냐면
'... 당최 술은 뭔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네'
여태껏 술과 친해지지 못한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살면서 술이 맛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
싫지는 않다. 그저 어영부영 받아들여온 것이다. 더운 여름 시원한 생맥주라든지 고소한 파전에 곁들이는 달달한 막걸리 같은 것들. 허나 분위기에 취한 것이었을 뿐, 냉정하게 보면 술 자체를 즐긴 적은 없다. 9년 전 투어에서 내 돈 주고 산 데낄라가 아직도 창고 어딘가에 쳐박혀있으니... (20대 초중반의 수많은 술자리와 술 강권을 대체 어떻게 견뎠는지 의문이다) 정의와 함께 한 이강주 또한 '느좋'이고 안주도 끝내줬으나, 술 자체가 맛있다는 생각은 글쎄. 이번에도 실패다. 정의야 미안해.
난 순천에서도 '술과 나 사이의 거리'를 생각했다.
뭐랄까, 내 DNA에는 술을 맛있어하는 세포가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정의처럼 될 순 없다. 그래도 술을 싫어하진 않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한 번씩 도전한다. 위스키든 와인이든. 번번이 실망하지만 막연한 동경을 지닌 채로. 그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도 애쓰지도 말자. 이 정도가 내가 결론 내린 '술과의 적당한 거리'다.
결국 삶이란 '나와 내가 아닌 다른 것과의 거리'를 반복해서 재는 과정이 아닐까.
태생적으로 나와 가까워서 뭐든 잘 맞는 게 있고,
원래부터 멀기 때문에 뭘 해도 고생스럽게 느껴지는 객체가 있다.
처음에는 둘 간의 거리를 알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상해 가면서, 교류하고 부딪혀 가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기대와 달리 너무 멀 수도, 예상과 달리 무척 가까울 수도 있다. 삶이란 여러 거리감을 쌓으며 내가 어떤 쪽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거리감을 '호환성'이란 단어로 달리 부를 수도 있겠다.
[술과 나는 호환되지 않는다] 같이 단순한 버전으로. 이 경우 나는 술과의 불협화음을 깔끔하게 인정할 수 있다. 비교대상이 술이 아닌 커피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졌을 거다. 별 노력 없이도 커피와는 호환이 잘 된다. 농구라면 더더욱 다르다. 농구는 내 1취미니까, 내가 더 다가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에도 호환성이 작용한다.
정확히 말하면 개개인은 자기만의 호환 단자가 있어서, 호환되지 않는 사람끼린 웬만한 노력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안 섞인다. 아이폰으로 아무리 드롭박스 날려봤자 갤럭시가 못 받잖아.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릴 땐 열심히 들어보려고도 하고 내 취향을 열심히 설명해보곤 했지만 돌아보니 '억지로 술 들이켜기'였을 뿐.
너무 고통받거나 애쓰지 말자. 과도하게 나를 옮길 필요가 없다.
그저 '적당한 거리감'을 찾아가면 된다.
타인과 나의 호환성을 생각하면 뭐든 툭툭 털어낼 수 있을 지도.
술 못 마신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것도 모자라 이런 글까지 쓰다니.
나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