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바깥은 여름

by 조정환Juancho


아침 9시 반, 2평도 안 되는 이곳은 남동구청소년센터 면접실.


2화 BGM) 뷰티인사이드 OST ‘amapola’ https://www.youtube.com/watch?v=60sYc0Gnayw


한 남자가 앉아있다. 머쓱함이 묻어나지만 언제든 ‘한 번 맡겨만 주시면!’이라고 말할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청년.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린다. 앞에는 과자 몇 조각과 녹차가 있지만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중요한 인터뷰가 있는 듯. 그때 누군가 들어온다. 청년과 달리 여유가 넘치는 중년 여성. 둘은 악수를 하고 어색하게 웃는다. 같은 웃음인데 온도가 다르다.


그 청년은 나다. 반대쪽은 청소년 센터장님. 곧 나의 운명이 결정된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그러나 의외로 면접은 금방 끝났다.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대뜸 센터장님이 하시는 말씀.


“정환 씨가 마음에 들어요”


어 예~ 인생은 아름답져


그제야 나는 과자를 뜯을 수 있었다. 며칠 후 걸려온 전화, ‘정식’ 합격 통보였다. 저기 조정환 씨 죄송하지만 못 모시게 됐습니다, 라는 말을 들을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첫 출근은 그다음 주요일이었는데, 그 날은 오리엔테이션이기도 했다. 사실 날짜를 제외하고는 어떤 정보도 전달받지 못해서, 나는 내가 무슨 과목을 가르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지원서를 쓸 때에는 1지망 사회, 2지망 영어, 이런 식이었고 면접을 볼 때나 합격 통보를 할 때 누구도 내가 무슨 과목을 담당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굳이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야무진 편이 못 된다. 이미 합격인데 뭘. 귀찮기도 했다. 목요일이 왔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갔다. 이미 시끌시끌했다.


행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당시 행사 사진. 열심히 숨었다.


행사는 생각보다 컸다. 많은 학생과 어른이 앉아 있더라. 인천 각 구의 센터장부터 어느 이름 모를 국회의원, 공무원, 동네 소방서, 경찰서 관계자분들까지. 식순도 있고 귀빈 소개 시간도 있었다. 1시간 남짓한 시간에 3번의 축사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센터에서 이 오리엔테이션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로 추정되는) 무리에 섞여 행사를 지켜봤다. 잠깐이나마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의아했다. 먼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센터에서 열린 행사의 진행 방식이 학교의 그것과 너무나 똑같았다. 이건 뭐 그렇다 치고... 정말 께름칙한 건 두 번째였는데, 여기 있는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너~~무 좋아했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거다. 단상에 서서 마이크를 잡은 분들은 대개 ㅁㅁ장(長)이나 청소년 전문가라는 직함을 가진 분들이었는데, 공통적으로 이런 류의 말을 즐겨했다. '여러분을 너무 사랑해서~'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이 넘쳤다. 어떤 분은 “저는 청소년 여러분들을 너무 사랑해서”로 시작해 “여러분들도 그만큼 저를 사랑하실 거라 믿어요”라며 연설을 끝내셨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분은 나폴레옹의 명언을 꺼냈고 “여러분들도 이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요. 사랑합니다~.”라며 수줍게 웃으셨다. 본인이 얼마나 당신들을 위하고 있는지 말했다. 뭐가 잘못된 거냐고? 잘못됐다는 거 아니다. 나는 그분들을 처음 봤지만, 그 짧은 순간으로도 얼마나 청소년 복지에 애정을 갖고 살아오셨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표정을 봤어야 한다. 절반은 핸드폰을 하느라 바닥을 보고 있었고, 그 반의 반은 옆사람과 킥킥댔으며, 나머지는 무표정으로 연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도 흥미가 모습으로 말이다. 진행자가 가끔씩 던지는 농담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는데(정확히 말하면 어떤 학생도 이에 대꾸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함께 참석한 다른 어른들이 호응을 해줬기에 다음 멘트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인데 온도가 다르다. 한쪽은 과잉 애정, 한쪽은 무대응 혹은 외면. 그러니까, 오리엔테이션에서 나온 어른들의 ‘청소년 사랑’ 이야기는 일방적인 구애였다. 조금 과장하면 ‘사랑 구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나는 대체 이 오리엔테이션이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 즈음 나는 김애란 소설집을 읽고 있었다. 수록 단편 <풍경의 쓸모> 중에서


센터 안은 애정으로 가득하다. 따뜻하고 의욕도 넘친다. 하지만 밖은 싸늘하다. 아 이런 온도차. 여길 찾는 청소년이 원하는 것은 뭘까. 어른들의 무조건적인 애정일까. 아니라면 뭘지 정말 궁금해졌다. 그럼 나는 어떤 온도를 풍겨야 하는 것인가. 질문들이 제멋대로 솟아나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제 진짜 선생님이 되긴 했나 보군! 첫 수업을 5일 앞둔 날에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