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고민이 될 때는 역시

by 조정환Juancho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될 때, 나는 그저 냄새 맡고 날아든 꿀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자리 앞에는 꿀 대신 ‘사회 멘토’라는 명찰, 그리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박수. 행사가 끝날 때가 되자 나는 비로소 사회 선생님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순 없지. 나가는 문을 열며 생각했다.


텐션을 올려야겠군, 서점으로 가자.


3화 BGM) Led Zeppelin 'Immigrant song' https://www.youtube.com/watch?v=y8OtzJtp-EM


목적은 세 가지였다.

첫째, 검정고 이해하기. 솔직히 아무것도 몰랐다. 시험이 언제 있는지, 몇 문제인지, 합격 커트는 몇 점인지도. 일단 알아야 했다. 둘째는 수업계획서 쓰기. 팀장님께서 당장 이번 주까지 작성해서 보내 달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이렇게 덜컥 뽑다니 꽤나 허술하군(2화 참고)’ 사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정부 지원 센터는 그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마지막은 생색내기. 명색이 선생님인데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었다. 교재 연구도 하고, 수업의 방향도 고민하고 뭐 그런. 겉멋이라고? 인정~ 어쨌든 나는 서점에 들어가 ‘검정고시’ 코너를 뒤지기 시작했다. 곧 ‘완벽 대비’라 적힌 책을 찾아 펼쳤는데


중학 검정고시 사회과목 목차. 압도적... 분량! (출처: yes24)


헉, 당황했다. 내용이 너무 많다.


불쑥 중고등학교 때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은 ‘진도 나가야 한다’ 같은 류의 말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저렇게 진도에만 급급할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왜냐면 그 ‘진도’의 실체라는 게 교과서 읽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애들이 다 자든지 몰래 만화책을 보든지 교탁에서는 그저 책만 읽는다.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 고요한 교실에 퍼지는 단 하나의 목소리.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참 별로다. 이런 게 정말 시간 낭비지.


하지만 목차를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몇 백 명의 학생들에게 이걸 다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항상 쫓기듯 수업을 했던 거군. 당장 내가 맡는다고 생각하니 깜깜하다. 사회 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반이 전부다. 고작 이걸로 시험을 준비해야 하다니. 그때의 비밀(?)을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방식이 있다.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수업은 내가 진행해야 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수업해야 하나?

진도를 꼭 다 나가야 해?


왜?


생떼 아니다. 반항도 아니다. 킹리적 갓심이다. (출처: '귀귀' 웹툰)


- 내가 가르칠 곳은 어디인가? 청소년 '지원센터'다. 학교가 아니다.

- 수업을 들으러 올 청소년은 누구인가? 그냥 개인이다. 무슨 말이냐면 ‘□□중/고 △학년’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디 기관에 소속된 '학생'이 아닌 것이다. 그저 도움을 얻고자 여기를 방문했을 뿐.

- 나는 누구인가? 센터장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지만 사실 그냥 백수이며, 무면허 선생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는 수업은 기성 학교에서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태도에 따라 수행평가 점수를 매기는 일도 없고, 성적으로 우등생 열등생 나누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지금도 교실에서 빈번하게 벌어질, ‘훈계’, ‘선도’라는 명목의 각종 강요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시 짚어보자, 학교 밖 학생들에게 학교의 질서를 요구한다는 것이 적당한가? 자의든 타의든 제도권을 벗어난 이들에게 내가 제도권 교육을 들이밀어야 하나? 음... 그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영 껄끄러웠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과목 선생님들은 모두 ‘학교식’ 수업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들 사이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하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도를 다 훑어 주고, 학생이 지각하면 뒤에 서있게 하거나 못 들어오게 하고, 진도를 다 나가면 기출문제 풀이하는 그런. 센터 직원분들도 되도록이면 선생님들이 수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길 바라는 눈치. 각종 제약이 발목을 잡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분명 적당히 돈만 벌고 가자는 주의였는데... 어느새 나는 선생님의 입장에 서서 상황에 몰입하고 있었다.



내 맘대로 할까 말까(진짜 저분이 썼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학교식’ 수업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출석부도 버리고, 진도에 대한 강박도 던지고, 각종 회유와 협박도 금지하는 ‘학교 밖’에 걸맞은 강의를 해보기로 했다. 나도 처음 해보는 거라서 낯설지만 일단 계획을 짜 보기로!


결국 학생들 때문이다. 오리엔테이션 때 느꼈던 그 온도차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어른들의 엄청난 애정과 학생들의 엄청난 무관심. (2화 참고) 나는 그 무관심을 무시하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 오로지 그들을 위한, 그들에 의한 수업을 만드는 것. 그게 학교 밖의 무면허 선생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닐까.


솔직히 나도 그게 훨씬 편하다. 고민이 될 때는 역시 내 맘대로!! 욕을 먹든 피해를 입든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야 불확실한 일을 성공시키는 데 흥미를 느끼는 타입. 맘대로 수업을 만들어보고 싶다. 크크크 정말 재미있겠군.


물론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잘 짜인 논리와 과감한 돌파, 태연한 표정과 준비된 여유까지. 아직 며칠 남았다. 승부를 앞둔 토르처럼, 나는 신나서 첫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