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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왔다. 센터다. 심장이 덜컹. 저기요, 그렇게 니 멋대로 수업하시면 안 되죠... 아니면 정환 씨 아쉽지만 저희 센터랑 좀 안 맞네요... 이제 그만 나오시는 게 좋겠어요. 그런 전화면 어떡하지. 갑자기 분위기 긴장MAX. 분명히 문 닫고 수업했는데, CCTV라도 있던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선생님~ 2월 12일에 꿈드림 선생님 대상으로 교육이 있는데, 참석 가능하실까요?”
5화 BGM) 캐스커 - 잔상(Inst.) https://www.youtube.com/watch?v=1_wKJ4uwXRU
매년 있는 행사라고 하셨다. 2시 반까지 오셔야 해요. 안도의 한숨~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가능할 것 같은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된다. 나는 시간 부자니까. 알고 보니 의무는 아니었다. 그래도 가기로 했다. 정식 선생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으쓱한 마음도 있었고, 무슨 교육을 받는 건지 궁금했다. 교육이 진행되는 곳은 제물포역 근처에 있었다.
가는 길. 문득 중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고, 나는 그 시절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기억에 안 남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대체로 수업은 그냥 지나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패싱. 학교에서 애들은 보통 밀린 잠을 채웠다. 그렇게 보충한 체력으로 저녁엔 학원 및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수업시간=취침시간’이라는 분위기가 있을 정도.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나도 종종 PMP를 앞 친구 등에 대고 몰래 인터넷 강의를 듣곤 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건방지게 그런 짓을! 화가 나는 분도 계실 거 같다. 그렇담 이 얘기 들으면 더 열 받을 텐데. 뭐냐고? 꽤나 많은 선생님들이 그런 분위기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사실. 애들이 디비 자든 만화를 보든 본인은 진도 삼매경에 빠져 교과서만 읽는 것이다. 음...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말세네 ㅉㅉ 학교 공교육이 공짜니까 귀한 줄 모르고.... 돈 쳐 발라야 될 줄 착각하지 멍청하게...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글러먹었어.’
예의 없다는 비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건방짐'으로 치부하기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왜냐고?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다. 수업을 안 듣는 이유는 그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많은 선생님의 수업이 형편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갑자기 떠오른다. 30년 교직 경력의 S 수학 선생님. 시작 종소리와 함께 분필을 든다. 판서를 시작. "다 적었냐?" 지운다. 문제 몇 개를 적는다. "오늘 15일이니까 15번 나와" 답을 못 적으면 꿀밤. 교과서에 적힌 해설을 반복한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교무실, 그의 자리엔 수학의 정석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안타깝게도 그의 수업장은 수면실을 방불케 했다.
이런 분들 많았다. 그때야 억지로 참거나 자고 말았지, 지금이라면 당장 박차고 나갔을 거다. 당신이라도 매년 교재를 새로 만들고, 강의 연구로 밤을 새우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원 강사들을 택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결론은 선생님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돼! 나도 제대로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해야겠다!
여기까지 흘렀을 때 센터에 도착했다.
교육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는 강의. 청소년지원센터가 어떻게 시작됐으며, 내가 소속된 '꿈드림'은 무슨 단체인지, 센터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등을 알려주셨다. 듣다 보니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별 어려움 없이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돕기. 그리고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 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여성가족부 산하 단체였다. 검정고시 교육 지원을 주로 하는 '꿈드림' 사업도 여가부가 주관한다. 그러니까 나는 정부 돈을 받고 일한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여성가족부를 둘러싼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이상한 가이드라인이나 만든다던가, 엄한 데다 소송을 건다던가. 그것 때문일까. 여가부에 대한 여론이 곱지 못한 걸로 안다. 어서 빨리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나도 얘네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의문 가진 적이 있는데... 알게 됐다. 세금은 허투루 쓰이지만은 않는다. 소외된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외된 친구엔 나도 포함. 백수에게 손을 내밀어 줬으니까! 여성가족부 만세! 물론 이건 농담이다. 어쨌든 내가 여가부 직원이라면 조금 억울할 것 같더라. 이런 좋은 일은 아무도 모르고, 인터넷에서 욕은 욕대로 먹고. 에휴~ 세상이 원래 이렇다.
2부는 간담회. 인천시엔 총 9개의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있다. 나처럼 과목을 맡아 강의하는 '멘토 선생님'이 있고, 멘토 선생님을 관리하고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이 계신다. 간담회는 그 두 집단이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한 30여 명이 함께 했다. 쪼렙인 나는 지켜보기로 했다.
역시 다양한 분들이 계셨다. 10년 넘게 하고 계신 40대 선생님 A. 꿈드림 지원을 받으며 검정고시 응시해 대학에 입학, 다시 꿈드림으로 와서 선생님이 된 대학생 B. 여성가족부에서 일하는 친구 소개로 입문한 청년 C. 대부분 사회복지 관련 학과 출신이고,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가, 다들 착해보였다. 억... 나는 머쓱했다. 저마다의 고충을 토로하는데, 하나같이 본인 일처럼 공감해주고 위로해줬다. 학생들이 제 말을 잘 안 따를 때는 어떡하죠? 다들 심각한 분위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 꼭 따라야 하나요?' 어딜 가나 나는 참... 그래서 입을 다물고 구경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 거리가 어둑해졌다. 배도 고프다.
사실 30년 교직 경력의 S 선생님은 나를 무척 좋아하셨다. 나를 '까불이'라고 부르셨더랬다. 지금은 당연히 퇴직하셨겠지? 잘 지내고 계실까. 나는 이제 그를 이해한다. 어른이 되었으니까. 우연히라도 어디선가 뵙게 된다면, 참 고생하셨다고 한 마디 해드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