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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Nov 12. 2018

마미손의 미학 (上편)

마미손, <쇼미더머니>, 그리고 대한민국

<쇼미더머니777>가 끝났다. 나플라, 슈퍼비, 루피, 키드밀리. 스타가 탄생했고, 회자됐다. 마미손도 그 중 한 명이다. 진작에 탈락한 데다가 고작 10분 남짓 나왔을 뿐인데.

“한국힙합 망해라!” 그 외침은 너무 유치하다. 하지만 좋다. 병신같지만 멋있다. 나는 왜 마미손을 응원하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공채주의 대한민국


나는 방송 PD가 되고 싶다. 아주 강렬하게. 일을 조온나 (욕을 해서 죄송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진심이 전해질 것 같다.) 해도 안 지칠 자신이 있다. 제작과 연출에 감각이 있다고 자신한다. 근데 아직 백수다.


왜? 공채를 못 뚫었다.


정규직 PD가 되는 길이 좁다. 1년에 뽑히는 신입, 50명이 채 안된다. 무작정 현장으로 뛰어들 수도 없다. 내가 내키지도 않지만, 나를 받아주지도 않는다. 불안정함과 박봉은 내게 걸림돌이고, 지원자의 고학력은 그들에게 부담이자 불안 요소다.


지금도 수많은 비정규직과 준비생이 공채를 준비한다. 시작이 다르다. 공채로 가야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더 수월한 길이 열릴 것임을 모두가 안다. 공채가 뭐길래.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공채에 좌절하는 당신,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 위안이 될 수도. (출처: Yes24)


대체로 어떤 시험을 치고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그 신비로운 권위를 얻는다. 주류 문단일 수도 있고, 명문대일 수도 있고, 대기업일 수도 있다. 시험에 합격해서 그 단체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만 한번 들어가고 나면 쉽게 퇴출되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 단체 구성원이 되는 입시에 통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자격증처럼 작동한다. 이 신비로운 권위를 ‘간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권위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중


공채가 무엇인지는 다 안다. 수십년 간 대한민국을 받쳐온 사회 양식. 아마 없어지지 않을 거다. 가장 쉽고 익숙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건하다.  힘은 갈라치기에서 나온다. 합격한 사람과 떨어진 사람을 완벽하게 구분짓는다. 본사와 파견의 차이. 9급 공채와 무기계약직의 차이. 공채 PD와 외주 출신 PD의 차이. ‘공채 출신’이 주는 힘은 압도적이다. 퍼포먼스나 그 사람에 대한 평가 모두에 출신이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공채에 매달린다. 한번 합격하면 평생 가니까. 합격을 위해 본인의 색깔을 공채 기준에 맞춘다. 그게 옳다 나쁘다 평가할 생각은 없다. 현실을 얘기할 뿐이다.


정도는 약하지만 예술문화 바닥도 그런 것 같다. 공채 우선주의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문학상 출신과 인터넷 커뮤니티 출신, 작품을 읽지 않아도 벌써 느껴지지 않는가. 대형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면 주위에서 기대한다. 데뷔하지 않아도 그렇다. 너무 공고하다. 어디든 제도권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시작을 못한다.


실력으로 Show and prove, <쇼미더머니>


그러던 와중에 <쇼미더머니>가 나왔다. 컨셉이 단순하고 명확했다. 기존의 질서를 깨는 방식이었다.


첫째, 실력으로만 붙는 경연. <쇼미더머니>가 처음 시작될 때, 힙합 팬과 뮤지션 대부분이 반발했다. (진성 '힙찔이'인 나도 그랬다.) ‘리스펙’이 없다는 게 이유다. 어디나 그렇듯, 힙합 씬에도 견고한 권력 체계가 존재했다. 힙합을 이 땅에 뿌리내린 1세대, 가요 따위에 ‘변절’하지 않고 꿋꿋이 힙합의 자리를 지킨 사람들에 대한 존경. 지금의 작업물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대한민국 힙합’이 수여한 명예를 훈장처럼 목에 매달고 있었다. 그런데 <쇼미더머니>는 그 명예를 인정하지 않았다. 불구덩이에 오르면 다 똑같다.


불구덩이 앞에서는 힙합 대부도 예외가 없다. (출처: Mnet)


60초 안에 해야할 것은 오직 랩뿐이다. 이제까지의 성과는 필요 없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입사 30년차 회사 임원에게 신입사원이 할 법한 업무 발표를 맡기는 식이다. 평가는 대중이 하고. 세상에는 파워포인트는커녕 엑셀도 못 다루는 과장이 존재한다. 그 분들, 쫄리지 않을까? 원썬은 ‘짬에서 나온 바이브’를 주장했다가 바보됐다. 그는 ‘힙합 1세대’로 존경받던 래퍼다. <쇼미>는 힙합 씬을 새롭게 바꾸었다.


둘째, 뽑는 사람과 뽑히는 사람의 경계가 모호하다. 시즌 2에서는 심사위원이 팀원을 뽑아놓고, 다음 스텝에서 심사위원도 참가자가 돼 자기가 뽑은 팀원과 겨뤘다. 시즌 3부터는 심사위원(프로듀서)도 함께 탈락시켰다. <슈퍼스타K>에서 제작진이 이승철에게 ‘당신도 경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쇼미>는 그게 된다. 반대로도 가능하다. 시즌 2에서 실력으로 증명한 스윙스는 바로 다음 시즌에서 심사위원의 자리에 올랐다. 어떻게 보면 건방지고, 한편으로는 쿨한, 대중에게는 괴상망측할 수도 있는 그런 방식으로 <쇼미>는 성장했다.

나보다 센 사람 솔직히 없지! (출처: Mnet)


<쇼미>가 없으면 힙합을 못해요


논란도 반발도 많았지만 어쨌든 <쇼미>는 승승장구했다. 7년이 지났고 7개의 시즌이 만들어졌다. 힙합은 대중문화의 주류에 안착했다. 강력히 거부했던 힙합 씬도 이제는 <쇼미>를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불었다. 나플라, 루피, 키드밀리, 행주, 슈퍼비, 비와이, 씨잼... 다 적지도 못할 래퍼들에게 ‘쇼미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쇼미>에 나오지 않으면 인정을 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힙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쇼미>를 목표로 랩한다. 그 간판을 달아야 돈을 버니까. 대학교 축제에 섭외가 되니까. 몸값이 올라가니까. 7년 사이에 ‘<쇼미> = 힙합’의 공식이 생겼다. 경직된 생태계를 파괴했던 <쇼미>는 어느새 더 견고한 공채로 자리잡았다.


일단 <쇼미>에 얼굴을 비춰야 기회가 생기는 구조. (출처: Mnet, SBS, JTBC, EBS)


지금 대한민국의 래퍼들은 <쇼미>에 나간 래퍼와 그렇지 않은 래퍼로 나뉜다. 전자는 쉽게 인정받는다. 좀 더 나아가 볼까. <쇼미> 출연 래퍼들 중에서도 급이 갈린다. 심사위원을 해본 래퍼와 그저 참가자에 머문 래퍼. 매드 클라운도 <쇼미> 공채 시스템의 수혜자다. 그것도 심사위원까지 해본, 정말 인정받는 래퍼였다. 더 이상 아쉬울 게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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