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정환Juancho Nov 15. 2018

마미손의 미학 (下편)

기꺼이 불구덩이에 뛰어든 사람아

이전글) https://brunch.co.kr/@juancho/3


공채주의 대한민국과 <쇼미더머니> 이야기로 상편을 채웠다. 그래서 마미손은? 이제 시작한다.




<쇼미> 개국공신, 공채 2기 매드클라운


재야의 고수 정도로 여겨지던 래퍼 매드클라운(이하 맫씨)은 <쇼미2>로 빵 떴다. 귀여운 외모, 어눌한 인터뷰는 여성 팬을 끌어들였고, 텅트위스팅(tongue twisting) 스킬을 바탕으로 한 거친 랩은 남자 팬들마저 설레게 했다. 결국 그는 대형 기획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과 계약한다. 3년 후엔 <쇼미5>에서 프로듀서를 맡는다. 그가 한 일은 참가자 래퍼들의 옥석을 가리는 일. 순식간에 공채 시스템의 정점에 오른다.


이현도가 말했다. "매드 클라운, 쟤는 경연에서 '산토끼' 불러도 올라갈거야." (출처: Mnet)


그러는 동안 <쇼미> 공채 체계는 더욱 굳건해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上편을 참고하시라.) ‘쇼미 출신’이 간판으로 작용하면서 그 간판을 따려는 사람들로 몰렸다. 기회의 문은 점점 좁아졌다. 시즌 3까지만 해도 많이 보이던 일반인 참가자 수가 점점 줄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길바닥 출신 경력직들이 신입 공채에 지원하니 말 다 했지. 벽이 공고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머리가 벗겨진 선배들이 말했다. 80년대엔 경영 나와서 삼성 들어가면 바보 취급을 받았다. 혹은 뭐 이런 거. 대학 졸업하기만 하면 대기업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더라. 지금? 그야말로 역대급 헛소리. 올해 삼성 직무적성검사 GSAT엔 10만 명이 응시했다. 몇 명 뽑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취준생들은 뛰어든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야만 한다. 마땅한 답이 없으니까. 몇 달 전부터 스터디를 한다. 그런데도 떨어진다.


쇼미는 어느새 삼성 같은 존재가 됐다.


맫씨는 믿고 쓰는 <쇼미> 공채 출신이었다. (출처: Mnet)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간판을 따고 싶지만 좌절하는 사람들이 한 트럭. 상황이 이쯤 되자 <쇼미>를 비난하는 래퍼와 리스너들도 생겨났다. ‘<쇼미> 래퍼는 변절자’, ‘초심이 다 사라졌다’, ‘이제 래퍼 말고 가수’ 같은 말들이 떠돌았다. 그 비판은 분명 날카롭지만 태생적으로 질투가 섞여 있다. 그리고 대표적 쇼미래퍼 맫씨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안온한 기득권 속,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반대의 가사. 그는 아마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다. (출처: Mnet)


비판에 대한 그의 답은 ‘마미손’. <쇼미더머니777>, 맫씨는 복면을 쓰고 지원서를 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줄에 서서 대기했다. <쇼미2> 때 모습 그대로였다. 어수룩한 모습으로 앉아 눈만 꿈뻑꿈뻑. 사실 모두가 그를 안다. 제작진뿐 아니라 참가자, 심사위원까지. 핑크색 복면 정도로 정체가 가려질 리 없다. 하지만 맫씨는 끝까지 복면을 벗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기성 래퍼들이 쓰러졌던 불구덩이에 선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출처: Soundcloud, Mnet)


처음이었다. <쇼미>에서 심사위원이 도전자로 돌아간 것은.

도박이었다. 탈락하면 이제껏 <쇼미> 안에서 쌓아온 권위를 다 잃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불구덩이에서 떨어졌다. 그가 가사를 절은 게 일부러 그런 건지, 정말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뭐, 어쨌든. 그는 나왔고, 떨어졌다.


■ 매드클라운과 스윙스, 마미손과 심사위원으로


스윙스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둘은 출신이 같다. <쇼미2> 동기이자 개국공신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한 명은 심사했고, 한 명은 지원했다.


맫씨가 정체성을 찾아 쇼미 안팎에서 헤매고 있을 때, 스윙스는 행동을 확실히 했다. 그의 권위를 세우는 방향으로. 바로 시즌 3에서 프로듀서를 맡고, 이어 회사를 차렸다. ‘저스트뮤직’, ‘인디고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래퍼를 모으고 본인이 대표가 된다. 그 영향력으로 <고등래퍼>를 찍고 또 미래의 래퍼를 키운다. 이제 그는 랩을 뱉는 것보다 다른 래퍼에 대해 평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그의 코멘트에 수많은 래퍼 지망생이 귀를 기울인다. “증명해, 증명해, 증명해, 또!” 몇 달 전 스윙스가 낸 ‘Keep going’의 가사. 그가 하려는 증명은 무엇일까. 그가 하려는 도전이 래퍼로서의 도전일까, 아니면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도전일까.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시간은 흘러버렸다.


힙합을 강조했던 둘에게 권위가 따라왔다. 한 명은 만끽했고 한 명은 내던졌다.(출처: Mnet)

스윙스는 힙합 씬에서 가장 ‘Real’을 강조하던 래퍼다. 마미손의 도전을 보며 스윙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공채에 합격하는 것 외에 다른 구직 방식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교수의 추천으로 부동산 회사에 입사한 과 선배가 있었는데, 다들 그런 방식은 뭔가 부적절하고 수치스럽다고 여겼다.

나는 사표를 낸 뒤 부모님과 대판 싸우고 집에서 나와 고시원에서 살았다.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동아일보 공채에 합격할 때까지 반년 정도를 그렇게 보냈다. 소중한 경험을 한 시기였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중에서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마미손은 광탈했지만 이번 시즌 최고의 스타가 됐다. 병맛 코드 때문에? 노래가 좋아서? 치밀하게 노린 것이든 얻어걸린 것이든 다 좋다. 각박하고 높은 공채의 벽에 좌절하는 내게 마미손이 새로운 성공 방식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공채에 떨어진다고 인생 망하니? 아니거든. 그냥 이거, 다 계획이야.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여러분! 이거 다~ 계획인 거 아시죠?!’


병신같지만 멋있다......! (출처: Youtube)


그래서일지 모른다. 내세울 간판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마미손을 열렬히 좋아한다. 심사위원을 악당이라 부르고, 내 심정을 아냐고 대신 외쳐주니까. 나는 마미손이 더 성공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마미손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며칠 전 본 면접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다시 공채다. 이번 주엔 다른 방송국 필기시험도 본다. 현장에서 바로 뛸 수 없을까 싶어서, 조연출 구인 공고를 뒤졌다. 메일 다섯 개 보냈는데 일주일째 답장이 없다.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인생은 원래 이런 거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사실 다들 그런 처지다. 오늘은 2018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 수능을 치르고 있을 학생들,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마미손의 미학 (上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