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르트르, 유시민, 하루키

'왜' 없이 '어떻게'를 찾아야 할 때의 막막함

by 조정환Juancho


복잡한 머리를 비워보겠다고 시작했지만,

사실 비운 머리를 다른 무언가로 채워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출발할 때 책 세 권을 가방에 넣었다. 사르트르, 유시민, 하루키 책 하나씩. 공통점이 있다면 셋 다 ‘실존주의’를 이야기한다는 점.


사르트르 소설집 <벽> / 유시민 에세이 <어떻게 살 것인가> / 하루키 초단편소설 모음집 <밤의 거미원숭이>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핸드폰. 핸드폰은 인간이 쓰려고 만든 발명품이다. 사실 모든 물품은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다. 안경, 텀블러, 패딩, 수건, 침대. 어디 이뿐인가, 음식과 공간 같은 개념도 마찬가지.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안경은 쓸모가 없다. 쓸모. 그게 그 사물의 ‘본질’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은 왜 만들어졌나? 아무도 모른다. 다들 모른 채 태어나서, 그냥 산다. ‘실존’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이유 없이 우연에 의해 던져진 존재. 사르트르 말로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ecede Eessence.)


그렇다면 나는 예전부터 실존주의에 관심이 많다. 학창 시절 내가 한 공부의 99%는 이유를 찾는 일이었다. 왜 답이 3번인지, 이 문제에서는 왜 3을 제곱해야 하는지.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는지. 비밀을 찾고 답을 맞히는 게 재밌었는지, 수능 준비도 꽤나 즐겼다.


그런데 도저히 답 안 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 질문. 왜 나는, 왜 인간은 태어났는가. 공부를 하다 보면 ‘왜’가 정말 중요하다. ‘왜’를 알면 ‘어떻게’가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가 쉬워진다. 거, 출제 의도를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나. 왜를 알면 헤매지 않는다.


하지만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살지 답이 안 나온다. 10대 때 처음 맞닥뜨린 난제.


왜가 없이 어떻게를 찾아야 한다니, 그 상황은 고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는 거겠지. 아니면 이유를 만들거나. '네가 내 삶의 이유야', 드라마에도 그런 대사 나오던데.


어쨌든 내게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이랑 얘기도 나눠보고, 마왕의 고스 상담소도 듣고, 책도 읽는다. 그러면 대강의 답을 찾는다. 안심. 그러곤 잊어버린다. 하지만 해결되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미제사건 같은 고민은 제주도 올레길까지 따라온 거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게스트 하우스 휴게실에서, 카페에서. 세 권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온갖 부조리가 녹아 있는 사르트르 소설. 죽음을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는 유시민 에세이. 대체 뭐가 뭔지 제각각 스토리의 하루키 월드. 세 책 다 거기에 '왜'는 없다. 하지만 세 남자는 열심히 '어떻게'를 찾는다. 그 흔적을 따라가보는 나. 쉴 때는 이렇게 시간을 보냈다.


걷지 않을 때에도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