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난 정말 PD가 되고 싶은 걸까

두서없는 지원동기

by 조정환Juancho

어느덧 셋째 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으로 동태찌개를 먹고, 오늘도 혼자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조금 읽었다. 커피도 한 잔. 그리고 샤워. 평화롭다. 좋다. 하지만 약간 지루하다. 몸과 마음이 어느새 이곳에 적응한 것이다. 그래서 난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생각했다.


오늘은 뭔 생각을 하면서 걸을까, 재밌는 게 필요한데. 그리고 당첨된 건 이것.


‘난 정말 PD가 되고 싶은 걸까’


당연하지!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나...


지원동기. 어느 순간부터 정제된 표현만 쓰곤 했다. 소위 ‘잘 먹히는’ 문장을 만든 다음 자소서 쓸 때와 면접에서 써먹어왔다. 하지만 결국 다 말아먹고 카드 하나 남은 이 시점에서 나는 물어봐야 했다. 너 정말 PD 일을 하고 싶은 거 맞냐? 아니라면 과감하게 접을 수도 있지. 합격보다 앞으로의 삶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3일차의 화두는 ‘PD가 되고 싶은 이유’ 됐다.


기본적으로 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이왕이면 특이하게 표현하고 싶다.
남들과는 다르게, 내 식대로.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걸 좋아한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짜 맞추고 고민하는 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치지 않는다.
오래 걸린 만큼 재밌다.
변태는 아니고.
응원단 그렇게 오래 한 것도 결국 행사, 이벤트, 문화,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었지.
글 읽고 쓰는 거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의견을 주고받는 느낌이 드니까.
하지만 논리적인 문장보다 직관적인 그림에 더 매력을 느낀다.
혼자보단 함께 일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고.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더 다채로운 것 같다.
블랙 코미디처럼, 유머가 섞인 무거운 메시지를 만드는 거에 자신 있다.
배워본 적은 없다. 그냥 내 생각.

표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


남에게 도움을 주며 살고 싶다.
하지만 직접적인 방식은 부담스럽다.
나는 건조한 편이다. 개인주의자 쪽.
감정이 넘치는 걸 경계한다.
쑥스러움도 많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주고받는 건 부담스럽다.
그래서 ‘은근히’ 돕고 싶다.
나와 남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거리에서.
내 표현으로 누군가가 웃거나 어떤 생각을 해보는, 그 정도가 가장 좋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쁜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좋겠다.
내 콘텐츠를 보고 몰랐던 생각을 떠올리면 좋겠다. 남을 도와준다면 더 좋고.
아 저것 참 재밌네, 계속 찾게 되네. 그런 얘기 듣고 싶다.

방송 PD가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더 있었겠지만, 기억나는 대로 적어봤다.


3일째 게스트하우스엔 사람이 꽤 많았다. 매일 바비큐 파티를 운영한다고 했다. 4명 이상이 미리 신청하면 사장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준다. 먹으러 가보니, 기다리는 사람이 10명도 넘다. 라이딩 온 아저씨들, 휴가 쓴 회사원들, 여행 온 커플, 뚜벅이 웨딩 포토그래퍼, 디저트 공부하는 어린 파티셰까지, 역시 제각각이다. 그 틈에 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PD가 더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