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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Jul 28. 2022

엉겁결에 말게 된 아침방송 VCR

2년 차 피디가 되어버린 나

휴가를 갔다 왔더니

이전 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이미 나는 아침 생방송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내가 교양을, 심지어 아침방송을 하게 될 준 몰랐는데 어쨌든 하게 됐고 하고 있다. (월~금 MBN <생생정보마당>이란 프로. 참고로 내가 속한 본사 팀은 금요일 VCR 제작 및 생방송을 한다)

어느새 6개월 가까이 됐다.


금요일 아침 10시부터 11시까지!


일장일단이 있다.


단점은 '원하지 않는 장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침방송은 정말 'TV적'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걸 골라서 보는 시청자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맞닥뜨린다.

트렌드에 뒤처진 형태의 콘텐츠다.

퀄리티는 뒷전인, 정보성 짙은(협찬용 VCR가 대다수) 영상들이 공장식으로 찍혀 나오는 게 현실.


이런 형편이기에, 아침방송을 하다보면 자주 현타가 온다.

내가 원하던 게 맞나. 누가 보긴 보는 거니. 이런 생각들.


달리 말하면, 그렇기에 부담이 없다. 장점이다.

누가 보긴 보냐? 그러니까 용기가 생긴다. 맘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복귀 첫날, 팀장님은 말하셨다. 솔직히 다들 원해서 이 팀에 온 건 아닐텐데,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가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아침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형식이나 지출 규모 같은 거 부담 갖지 말고 하고픈 거 있음 다 얘기하라고. (정말 감사한 Best ever 팀장님 ㅎㅎ) 이런 곳에 있으니 부담은 줄고 마음은 한결 편하다.


연차에 비해 많은 경험을 한다는 점도 좋다.

카메라만 최소 10대인 예능 현장과 달리, 여기선 촬영 나가는 제작진이 고작 5명 내외다. 완전 소규모인 셈. 피디는 많아야 두 명이다. 어떤 때엔 내가 메인 연출을 해야한다.


1년 차 PD에 불과한 내가! 현장에서의 최종결정권자다. 출연진과 직접 소통하는 건 기본. 앵글을 보며 카메라 감독님과 직접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이다. 촬영 이후엔 가편- 종편-송출까지 VCR을 직접 만진다.


one of them으로서 콘텐츠의 n분의 1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메인 PD로서 방송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다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시야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연출로서의 무게감을 짊어지게 되니까.


촬영을 위해 리포터 분들과 함께 하곤 했다. 지나고 보니... 재미ㅆ었..다...


문득 지난 6개월의 기록을 세어봤다. 30번 좀 안되게 촬영을 나갔고 20번 정도의 생방송을 겪었다.


그리고 15분짜리 VCR을 2개 말아보기도 했다.

말았다는 건, 메인PD로서 해당 콘텐츠의 모든 과정(기획-촬영-편집-송출)을 책임졌다는 의미인데

쉽게 말해서 내가 제작한 15분짜리 본편 영상이 전국방송에 나갔다는 말.


교양PD 식으로 말하자면 '봉'한 셈이다. (RT가 최소 50분 이상인 예능 장르에서는 메인 연출로 프로그램을 내는 경우를 입봉이라고 하는데, 교양 장르에서는 보통 10~20분 내외의 코너를 제작할 때 이 단어를 쓴다. 나는 예능PD로 성장하길 원하지만 어쨌든 여기서는 그랬다는 얘기다.)


나의 두 번째 VCR <옆집 CEO - 플라워디렉터> 편
나의 입봉 VCR <옆집 CEO - 희귀 관상어 CEO 편>


입봉작은 <옆집 CEO>라는 인터뷰 콘텐츠 코너. 옆집 이웃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본인의 분야에서 성공한 CEO를 찾아가 각자의 철학을 들여다본다는 콘셉트다.


2번의 VCR 제작을 통해 나는 PD로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단 엄청 헤맸다. 예고를 편집하는 거랑 본편을 붙이는 건 완전 다른 STAGE의 일이었다. 메인 연출로서 결정을 내리는 건 서포트하는 것보다 몇 배는 까다로웠다.


계속 벽에 부딪혔고 작가 및 선배들의 코멘트를 소화하느라 너무 버거웠고 와중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애썼다. '나는 생각보다 더 좆밥이구나' 되뇌다가 그날 새벽쯤에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가 다시 다음날 아침에 좌절하는 것의 반복.


그러다가 방송 후 출연자분께 '대박대박! 편집도 짱이고...'라는 문자 혹은 '찍을 땐 두서없이 말한 거 같은데 편집을 너무 잘해주셨다' 같은 감사인사를 받을 때에 비로소 살짝 안심했다.


뚝딱거리다 보니 22년 여름. 마침 회사엔 신입 기수 분들이 들어왔다. 난 다시 새 팀으로 이동할 타이밍.


어느새 나는 2년 차 피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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