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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환Juancho Oct 19. 2021

방송국 입사 6개월 후기

수습기간이 끝났다

 출근 날이 4월 12일이었고, 오늘은 10월 18일.

정확히 190일 지났다. 그 사이에 내 주위의 꽤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나 또한 그랬다.


뭐가 달라졌는지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되돌아보며 정리도 할 겸.

 

1. 월급을 받는다.


나는 완전히 직장인이 되었다. 가장 달라진 점이다. 더 이상 '껀 바이 껀'으로 돈을 받지도 않고, 출장 때문에 끊은 KTX 표 영수증이 누락되진 않을까 불안하지 않다. 놀라운 일이다. 티 내진 않았지만 항상 애가 탔었는데. 지금은 매월 정해진 날에 정해진 돈이 통장에 꽂힌다.


돈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그러니까 졸업도 취업도 늦었겠지) 오히려 방송사에 들어오니 더 벌고 싶다. 왜냐면 돈 쓰는 게 너무 즐겁다. 물욕 때문은 아니다. 여전히 그런 거엔 큰 관심이 없고.


그런 기쁨이 있더라. 현주랑 맛있는 거 먹을 때 '잔액 걱정 없이' 주문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꼈다. 구부정하게 노트북 하는 엄마를 보고 지체 없이 네이버에서 '등받이 쿠션'을 살 때의 그 순간과, 친구들 생일 소식을 카톡에서 발견했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하기'를 누를 수 있는 상황이 주는. 나로선 큰 변화다. 한창 곤란할 때의 난 편의점에 들어가 1200원짜리 캔커피를 살까 말까 10분 동안 고민하다가 그만두곤 했다. 그 레쓰비 쏠트커피 정말 먹고 싶었는데.


물론 수습 기간 동안 받는 돈이 많진 않다(고 선배들이 말다). 어쨌든 이제 난 어떻게 돈을 모아갈지를 고민한다. 이게 젤 큰 변화.


2. 예능 프로그램 보는 게 일이다.


지망생 시절 같이 준비하는 형에게 들었던 이야기.

"예능피디는 앉아서 하루 종일 예능 보는 게 일하는 거야, 쩔지"


사실이다. 내가 그러고 있다.


달라진 있다면 시청 목적이 조금 바뀌었다는 거. 지망생 때는 주로 품평했다. 혹은 면접용 답변을 만드는 데 급급했다. 지금은 '만들려고' 본다. 기시감이 들지 않는 걸, 독창적인 걸 그리면서. 퀄리티 있는 참고하기 위해. 그래서 플랫폼 무관 어떤 예능이든 1,2화는 무조건 챙겨본다. 포맷을 살피고 어떻게 만들었나 보려고.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현장을 겪어보니, TV 화면 속 사정이 더 잘 보인다. 이렇게 편집한 이유와 저런 그림을 쓴 이유도 짐작된다. 혹시라도 제작진에 내가 아는 이름이 있다면? 응원하는 마음. 반대로 속으로 삼킬 때도 있다. '대체 왜 이렇게밖에? 좀만 더 신경 쓰면 될 텐데...'


계속 보면 물리는 시점도 생긴다. 특히 밥 먹을 때나 쉴 때. 예전엔 집에서 항상 예능을 켜 밥 먹으면서 봤는데, 이젠 공부하듯 접근하니까 재미가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콘텐츠를 두 부류로 나눴다. '순수하게 보고 싶은 것(1배속 시청을 고집함)'과 '그 전이라면 관심도 안 줬을, 일로서 보는 것(최소 1.5배속으로, 거의 2배속으로 처리)'으로. 쉬어야 할 땐 절대 후자를 보지 않기로 했다.


3. 워라밸 경계가 희미하다.


이번엔 방송사 인턴할 때, 메인 연출인 팀장님이 해준 얘기. "PD의 단점은 워라밸이 없다는 거? 항상 신경쓰고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이것도 사실.

PD의 출퇴근 시각은 제각각이다.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출퇴근 시각이 정해지지 않았다'가 맞기 때문이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다'가 주는 무서움이란.


스케줄은 항상 프로그램 중심으로 돌아간다. '9to6'처럼 임의의 시간이 통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방송은 대개 주당 1편씩 털어야 하니, 매주 반복된다. 일반 사무직의 '프로젝트 끝' 개념이 없는 것이다. 마치 대학생이 매주 같은 과목 조별과제 발표를 하는 느낌? 벼락치기를 할 수도, 스케줄에 맞춰 착착 진행할 수도 있다. 선택은 각 조 리더가 하는 거고 내가 어느 팀에 있느냐에 따라 스케줄은 천차만별.

  

정작 출퇴근 시각은 별 문제도 아니다. 왜냐면 출퇴근과 상관없이 일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 예를 들면, 유투브를 보다가 '아! 이거 괜찮다' 싶은 거가 있다? 동료에게 바로 연락해서 뭔가를 바꾸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하며... 자막 쓸 때나 편집할 때 써먹으려고 메모를  때도 있겠지. 반대로 내가 자고 있을 때 작가님한테 전화가 올 수도 있다. "갑자기 A씨가 촬영 안된다고 해서요 촬영구성안을 바꿨..." 회사에 없어도 이런 연락은 맨날 주고받게 된다. 직장인과 자유인 사이에 어딘가 존재하고 있는 느낌. 나랑 맞는다.


4. 그래서


수습이 끝났고, 지금은 정식 배치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 장면을 봤고 몇몇 일을 했으며,

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눴다.

회사에 대한 불만도 갖게 되었으며, 글로 쓰기 어려운 걱정들도 생겼다.


주절주절 써놨지만, 결론은 좋긴 좋다.

내가 하고 싶일을 하는데 돈까지 준다니. 뭘 왜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건 내게 재밌는 일이기에.


복 받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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