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붙들고 있지는 말자
저문 창에 마지막으로 걸린 빛이
끝내 어둠에게 자리를 내주듯,
사라지는 것들은
사라지는 쪽으로 완성되는 아름다움도 있으니
한때 우리를 지나간 사람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
오래 불러 보아도 대답 대신
바람의 결만 가만히 흔들리던 저녁들
그 모든 것은
삶의 깊은 곳에 한 장씩 접혀 들어간
편지 같은 것이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멀어졌고
어떤 사람은 오해로 멀어졌으며
어떤 것은
그저 계절이 바뀌는 동안
말없이 제 자리를 잃어버렸다
손을 놓은 것도 아닌데 놓여버린 것들,
지키려 했으나 끝내
우리의 힘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던 것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젖은 골목을 지나며 문득 떠오른 얼굴 하나,
이사 간 집의 빈 창문처럼 남은 마음 하나,
다 자라지 못한 꿈의 연푸른 잎 하나,
멀리 떠난 사람의 체온이 식은 찻잔 하나
우리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으면서도
끝내 오래 사랑하게 되니까
길 모퉁이 오래된 화랑에
빛이 바랜 채 걸려 있는 그림처럼,
여행길 차창 밖으로
한순간 스치고도 이상하게 오래 남는 강물처럼
놓쳐버린 것들은
잡히지 않아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잡히지 않기에
오래 마음의 배경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죽은 별처럼
우리의 눈에서만 멀어졌을 뿐,
보이지 않는 물가 어디쯤에서
아직도 잔잔한 빛을 흔들고 있을지 모른다
떠나간 사람 또한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어서
비 오는 날 우산 끝에 맺힌 냄새로,
낯익은 골목 모퉁이의 기울어진 햇빛으로,
우연히 흘러나온 노래 한 소절로
다시 와 우리 곁을 스쳐 간다
그리고 어떤 상실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의 나로만 열 수 있었던 문들
그러나 닫힌 문은 닫힌 문대로
한때 거기 살았던 빛을 품고 있어,
우리가 너무 오래 울지 않도록
문틈마다 먼지 같은 위로를 남겨 둔다
우리의 지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이별을 다 껴안을 수는 없어도
한때 사랑했음을 잊지 않는 일,
끝내 내 것이 되지 못한 것에도
조용히 축복을 건네는 일,
보내주어야 할 때
조금 덜 무너지며 보내는 일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작별인지 모른다
그러니
희미해지는 것은 희미해지는 대로 두자
멀어지는 것은 멀어지는 대로 두자
기억 속에서 함부로 닦아
너무 반듯하게 만들지는 말자
그날의 빛, 그날의 서늘함,
그날의 침묵과 망설임까지
조금 구겨진 채, 조금 흐린 채,
그대로 남겨 두자
마치
오래 비워 둔 방 안에 남아 있는 저녁 냄새처럼,
꽃이 진 뒤 가지 끝에 한동안 머무는 환한 적막처럼,
썰물 뒤 모래 위에 남은
희미한 물결의 문장처럼,
그리운 것들은
꼭 붙들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니까
어떤 것은
내 곁에 있어서가 아니라
한때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빛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