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너무 환해
오히려 마음이 저며 오는 날이면
나는 오래전 너와 걷던 길로 간다.
빛은 늘 살아 있는 것들 위에만 내리는 줄 알았는데,
어떤 날의 햇살은
떠난 사람들의 이름 위에도
저토록 고르게 내려앉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에도
나는 그곳에 간다.
우리의 말들이 젖어 있던 벤치,
서로의 침묵마저 다정했던 골목,
낡은 간판 아래 망설이듯 켜지던 저녁,
아무 일도 아닌 듯 웃다가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그 작은 계절의 자리로.
세상을 먼저 건너간 친구여,
네가 없다는 사실은
계절보다 먼저 와서
내 안의 몇몇 길을 폐허로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너를 생각하며 다시 찾은 풍경들 속에서는
무너진 자리에만 자라는 풀이 있다는 것을
나는 본다.
사라진 줄 알았던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연초록 기억들이
조용히 얼굴을 내미는 것을.
그리고 너만이 아니다.
내 곁을 떠나간 많은 사람들,
이름을 부르면 아직도
가슴속 어딘가가 낮게 울리는 이들,
한때는 나의 날씨였고
한때는 나의 집이었던 이들,
이제는 모두 저마다의 먼 하늘 아래 있거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미세한 빛들이
아직도 나의 저녁을 켜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늦게야 배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거기엘 간다.
파란 하늘이 열리던 언덕 너머,
바람이 먼저 다녀가
마음의 먼지를 털어 주던 자리,
네 웃음이 풀잎처럼 번지던 길,
우리의 젊은 날이
아직 다 닳지 않은 채
어딘가에 가만히 걸려 있는 곳.
그곳에 서면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장소의 냄새가 되고,
한 계절의 빛이 되고,
한 사람의 버릇 같은 그리움이 된다는 걸
알 것 같다.
떠난 이들은 무덤보다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의 발걸음 속에 묻히고,
추억은 아픔이 아니라
아픔을 견디게 하는 또 하나의 숨결이 된다는 걸.
오늘도 나는
초록색 웃음을 찾아
너와 함께 지나간 길을 천천히 걷는다.
바람은 비어 있는 내 가슴을 지나
한때 네가 불러 주던 이름처럼 불고,
저무는 햇빛은
아직 끝내 작별을 배우지 못한 내 어깨 위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그래,
그리움은 자꾸 사람을
처음 사랑한 자리로,
처음 잃어버린 자리로,
끝내 혼자 돌아오게 하지만
그 길 끝에서 나는 다시 배운다.
떠난 사람들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더 깊어지는 것임을.
그래서 나는 또
파란 하늘이 열린 곳,
바람이 지나간 저 언덕 너머로 간다.
너를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잊지 않고도
다시 살아가기 위해.
내 가슴속까지
깨끗한 바람이 불도록,
남겨진 날들의 창가에
너와 그들 모두의 빛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