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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06. 2023

아버님, 사랑합니다

시아버지의 소천

2008년 한국시간 11월 22일 토요일 새벽 저희 시아버님이 소천하셨습니다.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으시고 1년 정도는 정상적으로 지내셨으나

갑자기 위독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2,3일 사경을 헤매시다 천국에 가셨습니다.

아버님과의 삶은 결혼하여 1년 3개월 시댁에서 함께 살았고

중국에서 살 때 아버님이 방문하여 3개월 정도 함께 지낸 것이 전부입니다.

 

아버님이 가족들에게 정상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평소에는 말하지 않고 지내시거나 말을 할 때는 항상 소리를 지르시거나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저는 원래 아버님은 이런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님이 떠나 가신 이 시간에

아버님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아버님은 술 취하여 집에 오시거나

아니면 술을 사 가지고 오셔서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늦도록 T.V을 보시다 주무십니다.

가족들은 아버님이 들어오시면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책인 양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오랫동안 가족들과도 단절되어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아버님과 이야기라도 하려고 아버님께 다가가면

아버님은 유교가 어떻고 공자가 어떻고 별로 재미없고 줄거리도 없는

지루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십니다.

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인고의 시간입니다.

아버님께 한번 붙들리면 아버님이 피곤해지실 때까지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아버님은 저녁에 들어오실 때

연양갱, 복숭아 통조림, 캐러멜, 과자 등등을 사 오십니다.

그때는 아버님이 드시려고 사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손도 안 대고 고스란히 두었는데

며칠 동안 아버님이 사 오신 것들 중에서 연양갱을 조금 먹고는

"아버님, 이것 어렸을 때 먹던 건데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네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다음 날부터는 매일 연양갱만 사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연양갱만을...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먹으라고 사 오신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아버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버님이 한 번도 저를 칭찬하신 적은 없지만

다른 가족들에게 항상 소리를 지르시거나 화가 나셔서 말씀하시는데

저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않는 것을 알기에

아버님이 저는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저를 통해서 아버님과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집에 무엇이 필요하다, 무엇을 수리해야 한다. 언제 누가 집에 온다,  며칠에 누구 결혼식이 있다... 등등

그때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아버님은 고독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외로우셨습니다.

아버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님은 존재감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가족들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소리치셔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셨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버님이 화가 나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이 아버님 곁에 저를 두셨는지를...

하나님이 아버님을 위로하라고, 아버님의 마음을 치료하라고.

그래서 저를 부르신 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바보같이 지금에서야 이것을 깨달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조금만 일찍 아버님의 상처를 알았더라면...

조금만 일찍 아버님의 고독을 이해했다면...

조금만 일찍 아버님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것을...


아버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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