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기사가 더 문제다.
지난 6월 19일 연합뉴스는 "은행들, 조선업 협력업체 직원들에 신용대출 사실상 중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이 기사는 언뜻 보면 조선업 위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조선업 협력업체 근로자가 자신의 신용 한도보다 많은 돈을 대출한 후 파산을 신청하는 이른바 ‘먹튀 대출’을 지적하고 있다. 채무자들이 악의적으로 채무를 늘린 후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방법으로 파산제도를 악용한다는 것이다.
기사 일부:
“울산지역 과다대출 후 개인파산 신청 잇따라…파산ㆍ면책 결정 4배 증가”
기사 링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6/16/0200000000AKR20160616161700057.HTML?input=1195m
조선업 협력업체 직원들이 구조조정 여파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신용대출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 위기로 생활고를 겪는 근로자가 신용대출 한도의 3배에 달하는 돈을 금융기관에서 빌린 뒤 갚지 않고 파산 신청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중략) '먹튀 대출'은 조선업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울산의 동구에서 자주 발생한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조선업 협력업체 노동자의 대부분은 20, 30대의 젊은 청년들이다. 젊은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사내하청 노동자로 대체하여 인력을 수급하는 조선업의 기형적 노동시장구조 때문이다. 즉, 조선업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 사이에 ‘먹튀 대출’이 만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 2030부채케어 팀은 위 기사의 그러한 주장과 인식은 채권자 중심의 불균형한 시각으로 채무자의 모럴 해저드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담고 있음을 비판하고자 한다. ‘먹튀 대출’이라는 말은 채무자가 빚을 못 갚는 게 아니라 안 갚는다는 뉘앙스다. 이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채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허술한 이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위 ‘모럴 해저드’ 란 인식의 바탕에는 ‘파산 신청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잘못된 통념이 있다. 그러나 법원은 파산에 매우 보수적이고 파산 여부는 채무자뿐 아니라 채권자 의견도 수렴해 결정한다. 또한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면책을 받는 것은 아니다. 면책 받지 못한 파산자는 잔존 채무가 있다면 새로 취득하는 재산을 강제로 환가, 변제할 의무를 진다. 파산을 하면 각종 법률상 제한을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도 따른다. 파산은 채무 청산을 위한 최후의 법적 단계이며, 파산신청은 곧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절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연합뉴스는 칼바람이 부는 울산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먹고 튀는 사람들”로 몰아세우고 있다. 사회적 인식에 대한 영향은 차치하고 일단 팔리는 기사부터 쓰고 보는 “먹튀 기사”부터 바로잡을 일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가 88%를 넘는 우리나라 실정에 비추어 볼 때 파산을 과하게 신청한다는 지적보다는 진작에 파산 신청을 하지 않아 심각해지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가 더 합리적이다.
더불어, 사례자들의 법적, 도덕적 과실이 밝혀진 바 없는 상태에서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례자 김씨가 의도적으로 금융사의 기술적 허점을 노렸다는 근거가 없다. 단순히 목돈 5천만원이 필요해서 하루동안 여러 금융사를 돌아다니며 대출을 받았을 수 있고, 대출자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은 금융사 직원이 아닌 이상 알기 어려운 점이다. 또한 은행은 김씨의 통장에서 대출금 전액을 회수했는데, 과연 ‘먹튀’하고자 한 사람이 자신의 대출금을 통장에 고스란히 남겨두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남는다. 이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금융사의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기사에 언급되었어야 마땅하다. 두 번째 사례로 자신의 대출 한도액을 높인 B은행 고객도 과실이 없다. 한도액 상향 조정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금융사의 결정이다. 빚도 상품이고 금융사는 판매자다. 더 많은 상품을 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 한도액을 올려줘놓고 일이 틀어지자 오롯이 채무자를 탓하는 금융사의 태도는 이기적이고 뻔뻔하다.
가계부채 1200조원 시대, 우리는 채무자를 잠재적 범법자로 보거나 이들의 모럴 해저드에 대해 과하게 우려할 것이 아니라, 금융사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신용을 보지 않고 신용대출을 해주는 금융사도 분명 책임이 있다. 금융은 다른 분야보다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격차가 매우 큰 시장이다. 과연 금융사가 소비자의 신용정보를 몰랐을까? 일단 팔아놓고 판매자가 어떻게 되든 돈만 받으면 된다는 심보로 신용 대출을 남발한 것이 우리 눈 앞에 1200조의 가계부채로 닥쳐온 것이다. 정작 분식회계,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선 업체는 수조원대의 혈세로 구제받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채무를 진 근로자 개인의 모럴 해저드를 지적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인의 면책은 경제살리기면서 왜 개인의 면책은 모럴 해저드인가? 심지어 개인이 파산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하는 데도 욕을 먹는다. 우리 2030부채케어는 채권자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이러한 인식에 맞설 것이다. 특히 미래를 짊어질 청년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채무자도 함께 살 수 있는 금융 환경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