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일기(西小門 日記)
이르다면 이른 아침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통근버스는 서소문을 지난다
성벽 어딘가에 조그마한 문門이 있어
백성百姓의 시신屍身이 나들었다는 부근 어귀
미명未明에 지친 어깨들이 쏟아진다
시청역 한 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시선視線을 비껴가면
선혜청 창고 터엔 배추 써는 인부人夫들의 입김으로 후끈하고
귀퉁이 라면집은 벌써부터 대목이다
저만치 삼각산 품에 깃든 청와대와
수백년 왕조王朝의 안채가 보이고
길 건너 이오니아식 궁궐과 아관파천의 공사관
그 앞 언제나 우리의 군경軍警이 지켜주는
문단속 든든한 미국 대사관저가 있다
발아래 점점이 붐비는 사람들, 침묵으로
생계生計를 호소하는 시위자도 한 점일 뿐
고층 통유리엔 바람 한 결 들지 않는다. 정오正午의 낯선 여유다
반半이 접힌 하루, 소금이 녹아 내를 이루었다는
서소문 밖 하천가 구내식당은 일과日課처럼
허기에 찬 인간들을 제 아구에 넣고 있다
목멱산을 등지고 팔다리 잃은 숭례문이 땅 속 굉음에 시달리며
무너지고 있다. 서울역은 멀리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성문 밖 가난한 자의 땅, 피묻은 약현성당
그런데 기억은 첫 여인女人의 성소聖所일 뿐
서른여섯, 처진 어깨 한 번 세워 보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이르다면 이른 퇴근
동아일보를 지난 노선버스는 어김없이
죽어 돌아갈 수 없는 백성百姓들의 길로 빠져 나간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