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위반 범칙금이 천만 원이라구요?

우리에게 낯선 교통 시스템 3가지

by 가나다 이군

캐나다 온타리오 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규정 속도 보다 50Km 초과 시 10,000달러의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경고판을 볼 수 있습니다. 캐나다 달라를 계산하기 쉽게 1,000원으로 환산하면 천만 원입니다. 교통위반 범칙금이 천만 원이라니요. 이렇듯 캐나다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낯선 교통 시스템이나 제도 때문에 가끔씩 놀랄 때가 있습니다.


캐나다의 교통 시스템은 오른 방향 주행, Km 단위 사용 등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큰 불편 없이 적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좌회전 규정(특별히 좌회전 신호가 없는 구역에선 직진 신호에 좌회전이 가능), 유턴 규정(웬만한 구역에선 특별히 금지 표시가 없는 한 유턴 가능) 등 일부 다른 규정이 있지만 금방 익숙해질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운전 습관으로는 낯설기도 하고 적응하기 힘든 경험 세 가지를 꼽아 봤습니다.


고속도로나 하이웨이의 속도위반 범칙금이


정지신호 STOP SIGN


캐나다에서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는 생경스러움은 바로 STOP 정지신호입니다. 사거리 혹은 교차로에 있는 정지 표시판은 신호등을 대신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 신호 앞에서는 무조건 정지했다가 출발해야 합니다. 정지신호 교차로 통과 룰은 단순합니다. 먼저 도착해서 바퀴가 완전히 정지한 차량이 먼저 출발합니다. 한마디로 선입선출입니다. 그래서 교차로에 정지할 때는 항상 누가 먼저 정지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만약 동시에 도착했다면 오른쪽 차량이 우선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 신호 앞에서 무조건 정지했다가 출발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생경스러움과 작은 문화적 충격 같은 걸 겪게 됩니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사방에 다른 차량이 없어도 지킬 것은 지키고 지나갑니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입니다.


"차도 없는데 이 사람들 왜 다들 섰다가 가지?"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 표지판은 있습니다. 일시정지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수 십 년을 운전하면서 이 표지판 앞에서 잠시라도 정지했었던 기억을 되살려보지만,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제어/통제받지 않으면 규범이나 약속이라 해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습성이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지나는 사람도 없고, 다니는 차도 없는데 왜 구태여 섰다 가야 하는데? 오히려 이건 낭비이고 비효율이야!"


무사고 모범 운전자였던 제가 항상 스스로 합리화했던 말입니다. 자율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방종하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도로에서는 신호등이 없으면 규칙이 없습니다. 운전자가 지켜야 할 룰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목마다 거리마다 신호등이 있어야 하고, 신호등이 고장이라도 나면 교통순경이나 모범택시 기사라도 나와서 수신호를 해야 정리가 됩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아무리 교통량이 많은 큰 사거리의 신호등이 고장 나도 교통순경이 필요치 않습니다. 누군가 수신호를 주며 정리해주지 않으면 제각각 먼저 가려고 난장판이 되는 한국의 교통 문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습관대로 해오던 대로 먼저 온 차량이 한 대씩 교차로를 통과합니다. 웬만해선 경적 소리 한 번 들리지 않고 사람들은 차분하고 익숙하게 행동합니다. 물론 토론토나 몬트리올 같은 대도시에서는 신호등이 없으면 곤란해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몸에 배어있는 기본적인 펀드먼트가 다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와 함께 앰뷸런스나 소방차, 경찰차가 사이렌을 켜고 달리면 거짓말처럼 앞다투어 길가로 차들이 정지합니다. 홍해의 기적이라구 자랑하는 한국의 동영상을 보면서 여기서는 항상 벌어지는 일인데 새삼스럽네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헌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인 스쿨버스의 경우는 그야말로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장관입니다. 6차선 사거리 한 방향에 스쿨버스가 플래시를 점등하고 서있는데, 네 방향 모든 차들이 정차하여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기에 문화적 충격이 더욱 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진국이란 의미는 단순히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풍요만이 아니라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시민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캐나다에 와서 깨닫게 되는 순간들입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그러한 시민의식이 선험적으로 서구인에게만 주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오래된 학습의 경험이자 관습일 뿐일까요? 모두 해당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한 가지가 빠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시민의식은 강력한 벌금과 함께 성숙해집니다.


개인의 잘못이나 법규 위반으로 인한 범칙금의 수준이 어마어마합니다. 개인의 일탈을 사회적 책임으로 묻는 것은 어느 정도 바람직해 보입니다. 결코 선진 시민의식이 돈 때문이란 얘기는 아닙니다만 필요조건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과속 1,000만 원의 범칙금은 상징적인 의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부러워하거나 문화충격을 겪는 항목들은 벌금이 비싼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본문의 금액은 모두 편의상 1달러=1000원으로 환산한 금액입니다)


- 스쿨버스 상단의 적색등 점멸 시 미정차 40만 원-2백만 원(벌점 6점), 5년 내 재위반 시 100만 원 - 400만 원(벌점 6점, 6개월 이하의 징역형 가능, 차주에 대해서도 동일 벌금 부과될 수 있음)

- 정지표시, 교통신호등, 철길 건널목 신호위반 11만 원

- 긴급차량 양보 위반 시 : 2년 이내의 면허 정지, 40만 원-200만 원 벌금 (5년 내 재위반시 100만 원-400만 원, 6개월 이내 징역형 가능)


3 초의 미학 - 느림의 신호 체계


한국의 교통 신호 체계 하에서 정지선은 마치 레이스를 준비하는 출발선과 같습니다. 왼쪽 혹은 오른쪽 신호를 지켜보고 있다가 노란불로 바뀌는 순간 뛰쳐나가면 정면의 내 신호는 어느새 파란불로 바뀌어 있습니다. 내 신호를 보지 않고도 내 신호를 가늠하여 출발하여도 교통 법규를 위반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측출발이 가능합니다.


캐나다에선 가로지르는 신호가 빨간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었다고 내 신호가 파란불로 바뀔 거란 생각으로 예측 출발했다가는 여지없이 빨간불, 정지신호에 출발하게 됩니다. 모든 신호는 약 3~5초 정도의 인터벌을 갖고 변경되기 때문입니다.


즉, 교차로에서 내 앞의 직진 신호가 노란색 신호로 바뀌었어도, 가로지르는 차선의 신호에서는 여전히 빨간색 정지등입니다. 이 상태로 몇 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초록색 직진신호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내가 노란불에 교차로를 통과하더라도 이쪽 신호는 여전히 빨간불이기 때문에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물론 캐나다에서는 직진 신호 시 좌회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좌회전 차량에게 틈을 주기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론적으로 보면 노란불(황색등)에서는 진입이 금지되는 상황이므로 이 또한 위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좌회전 차량들은 정지선을 넘어서 대기합니다)


아무튼 몇 초 간의 시차가 주어진다고 해서 예측 출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다른 방향의 차량이 지나갈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는 셈이지요. 실제로 이런 시스템이 교통사고를 얼마나 감소시키는지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분명 효과는 있어 보입니다. 약 3초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호 체계, 모든 상황이 충분히 정리된 후에 다음 신호, 한국의 교통시스템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인데 왜 이런 시스템은 적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회전교차로 Round-about


영어로는 라운드 어바웃(Round-about), 우리는 로터리라고 부르는 회전교차로는 시민의식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시민의식의 총체적 집합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지신호와 같은 선입선출의 룰이 적용됩니다.


교통의 흐름이 중요한 구역에서는 신호등으로 흐름을 자꾸 끊기보다는 회전교차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확실히 운행 중인 차량이 없는 차선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이 작동하여 다른 차량이 정지해 있는 것보다는 효율적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실제로 교통 흐름을 원활히 하고 소요시간의 단축 효과가 있다는 통계 자료와 함께 신호등을 없애고 회전교차로를 증설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멀쩡한 신호등 교차로를 없애고 두 개의 커다란 회전교차로를 이어서 만들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8 자 모양의 회전교차로를 만든 것인데 이곳은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길목이자 고속도로 진입로가 있는 지역이어서 차량 통행이 매우 번잡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회전교차로 이전의 신호등 체계의 모습을 담은 구글맵 위성사진


길게 늘인 8 자 혹은 아령과 같은 모양의 회전교차로로 재편한 도로의 모습. 구글맵 이미지


하지만 회전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와 '꼬리물기'의 습관이 남아있는 한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물론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중소도시이기 때문에 증설이 가능한 시스템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토론토나 몬트리올 같은 대도시에서는 회전교차로를 찾아보기 어려운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지신호, 신호체계와 함께 회전교차로를 얘기하는 것은 나도 급하지만 상대방도 급하다는 양보의 마음과 조금 늦게 가도 늦는 것이 아니다는 느림의 미학, 그리고 구성원들이 규정한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시민의식이 발현되는 현장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벌금의 영향도 매우 크겠지만 말입니다.


과연 이런 모습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의 정서가 이상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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