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겐 이해하기 힘든 단어, 레이오프(Layoff)
작년 이맘때, 나는 다니고 있던 캐나다 회사로부터 래이오프(Layoff)란 걸 당했다. 외국 생활이 힘든 것은 이런 익숙지 않은 제도나 관습에 대한 낯섦 때문이다. 레이오프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매우 보편적인 제도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적잖이 낯선 단어이다.
이를 두고 누구는 '일시해고' 또는 '임시해고'라고도 하고, 누구는 '권고사직' 혹은 '무급휴직'이라고도 받아들인다. 해고란 의미가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걸로 봐서는 해고가 맞는 것 같으면서도 휴직, 사직의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해고 아니면 고용밖에 모르는 우리에겐 이해하기 아주 고약한 단어인 것이다.
내가 레이오프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캐나다 영주권 신청을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였다.
"Unfortunately, in our industry it is impossible to guarantee a year without a layoff. " (안타깝게도 우리 산업 군에서 레이오프 없는 1년(근속)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는 영주권 신청자에게 최소 1년 이상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정부 규정에 대한 회사 측의 답변이었다.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이주 공사 대표께 여쭈어보았다.
"레이오프 없는 고용을 보장하지 못한다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잘린다는 건가요?
"그렇죠. 해고죠"
내가 해고의 의미냐고 앞서서 물었었는지 아니면 그분이 먼저 해고라고 정의를 내려주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로 레이오프는 '해고(Fire)'의 동의어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레이오프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을 때는 그 의미가 사뭇 달랐다. 회사가 몇 년 새 수주 물량이 현저히 줄어든 데다가 코로나 팬데믹 선언으로 인해 앞으로의 경영 환경이 예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서에 레이오프가 있을 것이며 그 대상은 내가 될 것이란 소식을 들고 온 동료, 로버트슨에게 다시 한번 그 뜻을 물었다.
"레이오프라면 해고된다는 거야?"
"비슷한 거야. 하지만 회사가 다시 부를 수도 있어. 그러면 돌아와서 일하면 돼."
그러면서 위로하듯이 말을 이었다.
"나도 몇 년 전에 2달 레이오프 당했었어. 그러니까 바라건대 너도 복귀할 수 있을 거야."
몇 년 전이라면 공장에서 일하는 알프레도가 12월부터 3개월을 일 안 하고 놀았다던 그 해였다. '그때 알프레도도 레이오프 당한 거였구나.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잘 다니는 걸 보면 해고는 아닌가 보네.' 해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니 일단 안심은 되었다.
잠시 후 매니저는 나에게 레이오프를, 시니어였던 피터슨에게는 파트타임으로의 고용 변경 내용을 통보했다. 나는 짐짓 자연스럽게 언제쯤 돌아와서 일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매니저는 노바디 노우스 즉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EI(Employment Insurance, 고용보험 혹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ROE(Record of Employment) 서류를 떼어줄 테니 크리스틴에게 확인해 보라고 알려줬다.
매니저가 사무실을 나간 후 곧바로 짐을 싸 들고 크리스틴을 만났다. 크리스틴은 EI(실업급여)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직접 CRA(캐나다 국세청)에 보낼 것이고, 그러고 나서 너에게 이메일로 알려 줄 테니 그때 CRA 홈페이지에 가서 신청하면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십수 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 급여를 신청해서 몇 달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에 비하면 계면쩍은 것도 불편할 것도 없이 수월하고 자연스러웠다. 캐나다란 나라에서 실업급여는 마치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내는 정도의 수고만 있으면 되었다. 금요일 오후, 출근용 가방에 느닷없이 짐을 챙겨 회사를 벗어나면서 그렇게 해고인지 아닌지 모를 나의 레이오프 생활이 시작되었다.
레이오프 이해하기 - 해고보다는 퇴사를 원하는 한국 문화
"이렇게 되기 전에 그만뒀어야 했는데...." 레이오프 소식을 들고 귀가한 나에게 던진 아내의 첫마디였다. 사전적 정의가 어찌 되었든 한국 사람에게 레이오프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고당하는 그러니까 시쳇말로 잘리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듯 한국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고용되었거나 아니면 해고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헷갈리는 레이오프의 정체성으로 인해 종종 뜻밖의 질문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레이오프 당했는데 그전에 제 발로 그만두는 게 다음 직장에서 레퍼런스 체크할 때 유리하지 않겠냐' 거나 '이력서에 레이오프보다는 스스로 퇴사했다고 적는 게 나을까'라는 식의 질문들이 그것이다. 당연히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설령 스스로 그만두었다 하더라도 레이오프 당했다고 하는 게 본인한테 유리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인력 채용 시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둔 이유가 궁금한 건 당연하다. 이때 이직의 이유를 본인의 사유가 아닌 회사의 경영 사정으로 돌리는 꾀가 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레이오프의 경우에 한해서 실업급여(EI)를 받을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어쨌든 로버트슨의 위로를 참고 삼아 처음에 두 달 정도 예상했던 레이오프 생활이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그 끝을 알 수 없는 장기전이 되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레이오프 상태가 되었지만 캐나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관련 각종 지원책과 실업급여 등을 통해 생활에는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짧게는 2-3개월 정도 지난 후엔 많은 사람들이 복귀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동네에서도 낮에 주차된 차들이 줄어들수록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거, 해고는 아니라지만 사실 잘린 거 아냐? 안 부르면 별 수 없는 거잖아?' 그제서야 레이오프 당한 지 3개월 만에 부랴부랴 관련 내용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시해고 [ 一時解雇, layoff ] : 기업이 경영 부진에 빠져 조업단축, 인원 삭감의 필요가 생겼을 때 노동조합과 협정하여 업적 회복 시에 재고용할 것을 약속하고 종업원을 일시적으로 해고하는 것을 말한다. <중략> 한국에서는 기업의 이합집산·도산 등에 따라 해고의 사례는 많으나 재고용을 조건으로 한 일시해고제는 좀처럼 이행되지 않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시해고 [一時解雇, layoff] (실무 노동용어 사전, 2014.)
그리고 몇몇 캐나다 법률사무소의 홈페이지에서 도움이 되는 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레이오프는 특정 기간 내에 정규직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직원의 고용을 줄이거나 완전히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고용주가 직원을 상시 해고에 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경영상 이유로 계속 고용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퇴직금 등 해고 비용 등의 이유로 직접 해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복귀를 전제로 했다고는 하지만 고용 기준 법률에 따라 래이 오프가 적용 가능한 최대 기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법적 해고로 전환된다고 한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정해진 일정 기간 내 복귀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해고된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온타리오주의 경우, 래이 오프가 지속될 수 있는 기간은 연속 20주(약 5개월) 동안 13주(약 3개월) 이내이며, 만약 13주를 넘기더라도 52주(약 1년) 동안 35주(약 9개월)를 초과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3개월 동안 래이 오프가 가능하며, 이 기간이 넘으면 자동적으로 영구 해고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얘기다.
나는 이미 14주 가까이 래이 오프 상태로 있었다. 그렇다면 회사로부터 업무 복귀와 관련한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영구적 해고-계약 관계의 종료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황한 나는 그제서야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려고도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직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만큼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복귀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잡고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5개월을 꽉 채우고 6개월 차로 접어들던 어느 날 마침내 매니저 댄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행하게도 그사이 연방정부에서는 코로나의 특수성을 고려해 래이 오프의 기간을 6개월까지 연장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 6개월 만에 나는 복귀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6개월 동안 해고되어 있었던 것이며, 아무런 통보 없이 그대로 영구적인 해고 상태가 될 뻔했던 것이었다.
마땅한 이유 없이 직원을 해고할 수 없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보니 레이오프라는 방식으로 회사는 직원을 사실상 해고함으로써 고용 비용의 부담을 줄이고, 피고용자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이직을 준비하는 일종의 타협의 산물처럼 여겨졌다. 얼핏 보기엔 피고용자의 억울함을 해소하려는 장치들이 깃들어 있어 보이지만, 이미 고용주에게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하다는 칼날을 쥐여준 상황에서 그 어떤 장치라도 의미 있는 수준이 될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레이오프라는 것이 노동자에게는 언제든지 길거리로 쫓겨날 수 있는 법적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그러다가 회사에서 맘이 바뀌면 다시 부를 수도 있고, 필요 없으면 부르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통보조차 없이도 해고 절차가 완료된다니 이건 사용자 입장에선 너무나도 편한 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앞에 예시한 일련의 경험을 보더라도 노동 유연성의 선진국 미국과 많은 공통점을 지닌 캐나다도 크게 다르진 않다고 생각되었다.
자연스레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동안 많이 듣던 '노동(시장) 유연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노동 유연성이 높지 않아 자르고 싶은 직원도 자르지 못한다고 했다.
'노동 유연성'은 상시적 해고의 다른 표현, 래이 오프는 그것을 실현시켜 주는 법적 장치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기업가가 노동의 투입량을 얼마나 쉽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느냐를 말한다. 인원 감축뿐만 아니라 일 인당 노동 시간이나 임금을 줄이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한국은 이러한 노동 유연성 측면에서 선진 사회에 비해 뒤처져있다고 하며 나아가 이는 고용주의 재량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탄력적 노동유연성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에 대한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하면 언제나 미국을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 얘기보다는 유럽의 효율성 저하되는 원인이 미국에 비해 직원 해고가 까다로운 고용 경직성에 있다고 지목한다.
노동 유연성은 사용자에게 해고의 자유, 근로시간 조정의 자유, 파견·용역·하도급 등의 간접고용의 자유, 배치전환의 자유, 연봉제·성과급제 등 임금 변화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용자에게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전적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은 환경을 좋아하고, 근로자들은 반대로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유연성이 낮은, 경직된 노동시장을 원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상 노동 유연성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개념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자들은 왜 자신들에게 유리해 보이지 않는 이런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그것을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찾는다. 하나는 자기네 사회가 최고의 가치를 보유한 최선의 시스템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스스로 개선의 여지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쉬운 해고가 또 다른 잦은 채용으로 이어지기에 불만이 상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잘리면 또 다른 곳에서 일을 구하면 된다는 식의 구조화된 고용시장 환경에 적응됐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노동 이동률이 높다는 얘긴데, 회사는 언제든 직원을 해고하고, 다시 인력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손쉽게 채용한다. 회사 입장에선 직원을 해고해도 이렇게 해고된 노동력이 사회 전반에 걸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손쉽게 채용이 가능하다. 반면에 피고용자 입장에선 당장 잘려도 당분간 실업 급여로 버티다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회사의 채용 담당자는 늘 바쁘다.
여기에서 노동 시장이 유연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고용과 해고의 구조화된 균형이며, 두 번째는 사회 안전망의 수준이다.
노동 유연성의 선제 조건: 고용과 해고의 균형, 그리고 사회 안전망의 확충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한 대표적인 나라로는 미국이 꼽힌다. 현대 자본주의 및 자유시장경제의 종주국 미국에서는 노동 시장 역시 철저히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반면에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취약하기 때문에 고용주는 경기 상황을 이유로 언제든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 하게도 이러한 유연한 노동 시장은 미국의 장기 실업률을 낮추는 요소가 된다. 손쉬운 해고는 노동 이동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다시 채용도 쉽게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실업은 피할 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원인이 되었든 결과가 되었든 유연한 노동시장은 손쉬운 해고와 잦은 채용을 유발하고 이러한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서 장기 실업률 같은 경제 지표가 개선될 수 있음을 얘기한다. 여기에 우리 사회가 지녀왔던 평생직장이나 호봉, 장기근속과 같은 개념은 사라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다음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의 전제 조건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 안전망의 수준이다. 해고와 재취업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간극을 메워 주는 역할이 고용보험 혹은 실업 급여와 같은 사회 안전망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슷한 노동시장 구조를 지닌 미국과 캐나다의 갈림길이 나오게 된다. 앞서 기술한 래이 오프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과 캐나다는 비슷한 노동시장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노동절도 9월 첫째 주 월요일로 같다) 캐나다는 실직자에 대한 사회보장이 철저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생활에 큰 불편을 겪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의 경우, 유럽이나 캐나다만큼 사회보장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당장 일자리가 없으면 건강보험 혜택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사회 보장의 취약성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대규모 실업 사태와 맞물려 재평가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 사회에 알려준 것이 많지만 그중에 두 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공공의료와 노동 유연성에 대한 고찰이다.
코로나가 보여준 미국 사회의 민낯
2020년 팬데믹이 선언되고 전 지구적인 문제로 확대되자 유럽이나 한국 등과는 달리 미국 기업이 선택한 첫 번째 대책은 감원이었다.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어떤 나라도 검증된 뾰족한 대책이란 없었지만, 미국의 기업들은 너도나도 레이오프나 직접 해고 등의 방식으로 감원부터 시작했다. 사실상 이것은 대책이 아니라 늘상 그렇게 해왔던 일종의 손쉬운 경영 방편이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항상 대규모 감원, 실업 사태가 뉴스의 주요 꼭지로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노동유연성의 결과인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같은 서구권인 유럽의 경우, 기업이 어려워도 기존 고용 안전망을 활용해 수백만 명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실업을 피할 수 있었지만 미국이 유독 두드러지게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것은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노동유연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자마자(2020년 3~4월) 미국에서는 2280만 개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 중에서 연말까지 복구된 일자리는 1200만 개 정도일 뿐이다. 당연히 실업률도 4월에는 14.7%까지 치솟았고, 미국 언론들은 5월이나 6월에는 20% 이상의 실업률을 예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두 달 만에 3천650만 명의 미국인이 직장을 잃었다고 전하며, 미국의 빈곤율 또한 급격히 상승해 지난해 11월에는 11.7%를 기록하며, 800만 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는 결국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 국민을 먹여 살릴 수밖에 없었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무제한적 양적 완화에 들어갔고, 연방정부는 2조 8천억 달러(약 3천400조 원)의 지원금을 국민에게 풀었다. 뿐만 아니라 20년 말에도 9000억 달러(약 993조 원) 규모의 팬데믹 재난지원금과 향후 9개월간 정부 운영 예산으로 1조 4000억 달러(약 1544조 원)를 편성했다고 한다.
미국이 최대 재정 적자까지 감수하며 이런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는 외형적인 이유는 고용률이 떨어지면 개인소득·소비 역시 활력을 잃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긴급 예산은 유럽이나 캐나다에서 복지시스템 역할을 대신하는 것의 다름 아니다. 경기 침체 시 미국의 미비한 복지 시스템이 가져오는 가혹한 결과인 것이다.
특히나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한 미국은 이러한 경제 위기는 의료 위기마저 동반하는데 미국인의 거의 절반은 직장을 통해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6% 정도 만이 사보험을 든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일자리를 잃으면 건강보험 혜택 없이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서 캐나다는 미국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캐나다는 국민이 낸 세금이나 부담금을 바탕으로 유럽 사회에 비견되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지속적으로 이뤄왔고 실제로 무상의료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국가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도 적절한 노동 유연성과 함께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바탕으로 미국과 같은 대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의 노동 유연성이 기업의 이윤 추구 측면에서 효율적인 건 맞겠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노동자, 특히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훨씬 더 어려운 환경을 만든 것 또한 분명해졌다. 더욱이 사회보장제도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라면 노동 유연성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와 다름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와 노동 유연성
한국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레이오프라는 일련의 낯선 경험이 코로나 팬데믹의 발발과 어우러지면서 노동시장 유연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노동 유연성에 대해서는 고용주가 내보내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눈치 보지 않고 해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얘기 정도로, 사용자의 이익 추구를 위해 주장하는 또 다른 수단쯤으로 치부하고 말았었다.
그리고 그것은 피고용자와 고용주 간에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는 일종의 타협의 형태로 반영될 수도 있는 문제라고만 여겼었다. 하지만 이것이 위기와 마주했을 때 국가와 개인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지켜보면서 단순히 일개 회사의 노사 문제가 아닌 국가 사회의 구조화된 시스템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노동시장 유연성과 관련한 모든 부문 즉 해고나 근무시간 단축 등에서 이미 법적/사회적으로 폭넓게 보장받고 있다. 다만 이것이 종신 근무 문화에 따른 문화적, 정서적 간극이 존재하고, 사용자와 발생하는 이해 충돌의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고,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노동 유연성이 높아서 피고용자가 쉽게 짐을 챙겨 직장을 떠나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글에 담아 본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레이오프라는 단어가 머리와 가슴에 와닿기 힘든 단어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