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촌놈과 미국 깍쟁이

캐너디언들의 미국에 대한 시선과 애증

by 가나다 이군

캐나다가 좋아? 미국이 좋아?


캐나다에서 살다 보니 아무래도 캐내다와 미국을 비교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이민이나 유학을 고민하시는 분들 중에 종종 '미국이 좋을까? 아니면 캐나다가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도 가끔은 그런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만, 그때마다 '캐나다는 순박한 촌놈들이고, 미국은 눈 뜨고 코 베어가는 깍쟁이'라고 얼버무리곤 합니다. 실제로 미국 사람들이 캐나다 사람들을 일컬어 레드 넥 Red Neck (농사를 짓느라고 목등이 벌겋게 탄 촌놈)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물론 캐나다 사람들에겐 엄청난 욕으로 들릴 수 있으니 삼가야 하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캐내디언 같으니라구'라거나 '캐나다에나 가라'라면서 빗대어 놀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얼마 전 아들의 조기 유학 문제로 고민하던 사촌 동생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려고 했는데, 미국보다는 지금 환율이 캐나다가 좋다며? 그래서 한국하고 가까운 밴쿠버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 조카의 미래를 위해 유학을 준비하면서 미국 또는 캐나다 선택의 우선순위는 환율이었습니다. 물론 환율 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기야 했겠습니까만은 이런 현상의 원인 중에 하나는 사실은 캐나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캐나다와 미국을 크게 구분 짓지 않고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국과 캐나다의 주류는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 혹은 개신교 출신이라는 뿌리가 하나이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무척이나 닮았다가도 어떤 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 역시 엄연히 국가의 정체성과 비전, 그리고 제도는 물론 역사와 미래를 대하는 태도, 국민성까지도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출신 성분(뿌리)이 같다는 이유 만으로 막연히 나라 이름만 다르지 같거나 비숫한 나라 아니겠냐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 때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푸근해지기도 했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게 캐나다구나' 느끼면서 캐나다와 미국의 동질성과 차이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곤 합니다. 캐나다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은 참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모습에서 차이가 나고 또 왜 그럴까요? 일단 캐나다와 미국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해 봤습니다.


비유(figuration)


강남 8 학군 某 고등학교에서 전교 짱을 먹는 녀석이 있습니다. 이 녀석은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면서 운동도 잘하고, 심지어 쌈박질 또한 짱입니다. 강 건너 강북에 큰 땅을 차지하고 있는 몇몇 덩치 큰 녀석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이 녀석에 맞짱 뜰 상대는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런 놈은 안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미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녀석에게는 옆집 사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친구라고 하기엔 관계가 너무 가까운 게, 사실 사촌과 다르지 않습니다. 증조할아버지의 형제의 자손이라서 친족 범위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성(姓)도 같고, 같은 말을 쓰고, 생활 풍습도 같은, 한마디로 뿌리가 같은 사촌입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캐나다입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 둘은 친하게 지내는데, 미국이가 축구, 야구, 아이스하키, 농구 같은 운동을 할 때도 같이 끼워주고, 어디 싸움이라도 나면 같이 구경도 가고 싸움판에 같이 끼어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붙어다니다 보니 온 동네 사람들은 이 둘을 묶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동네 자치위원회를 만들 때도 같이 끼워주고, 대표를 뽑을 때도 끼워 줍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비트'의 한 장면. 구글 검색


더군다나 종갓집 사람들도 캐나다를 자기네 자손이라고 생각하여 편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캐나다는 동네에 심각하거나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중요 멤버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캐나다란 친구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우등생이 아닙니다. 처음에 강남으로 이사 올 때 땅을 좀 많이 차지했을 뿐, 넓은 땅에 식구도 많지 않고, 집안에 돈 버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돈을 좀 번다 싶은 가족은 이상하게 미국이네 집에 가서 살고, 공부도 좀 하는 애들도 미국이네 가서 살려고 하거든요. 물론 집안의 그 넓은 땅 속에 뭐가 묻혀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옛날 얘기지만 미국이와 캐나다는 땅 문제 가지고 싸운 적도 있습니다. 캐나다가 종갓집 어른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얘기니까 따지고 보면 미국이 종갓집 어른께 대들었던 싸움이었지요. 그리고 캐나다네 집에는 사실 불란서, 독일이라는 배다른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자꾸 캐나다 땅을 빼앗으려 하니까 미국이가 혼내 준 적도 있습니다. 이후로 독일이는 꼬리 내리고 함께 섞여서 사는 걸로 했는데, 불란서는 아직도 뻑뻑 콧김 불어가며 세대주 따로 내겠다고 큰소리치곤 하지요.


물론 미국이와 캐나다는 같이 살 수도 있었어요. 미국이가 본가에서 독립하여 분가할 때 캐나다 보고 같이 합쳐서 살자고 했는데 캐나다가 거절했지요. 어떻게 집안 어른들하고 연을 끊냐며 여전히 종갓집 어른을 가장으로 모시고 지내면서 제사도 드리고 하겠다는 게 미국이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 안의 노비 문제와 원래 그 터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미국이와 캐나다의 생각이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미국이만 완전히 독립해서 살게 되었는데, 최근에 연로하신 종갓집 어른께서 '캐나다도 이젠 혼자 살아도 되지 않겠니' 하며 분가시켜 주는 바람에 얼떨결에 캐나다라고 호적을 내어 호주가 되고 문패도 바꿔달았지요.


그러면서 캐나다와 미국이의 다른 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는 누구라도 돈과 힘을 길러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장땡이라며 무한 경쟁을 아주 중요한 생활 방식으로 삼고 있지요. 그래서 가족 중에 어떤 사람은 헐벗고 못살기도 하지만 잘 사는 사람은 아주 잘 산답니다. 반면에 캐나다는 조금 못 먹고 못 살더라도 같이 어울려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번 돈을 나눠서 같이 먹고사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또한 미국이와 캐나다네 집에는 세계 각국에서 같이 살아보자고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국이는 이들이 일으키는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어요. 미국이네 사람들 중에는 이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고 때로는 차별을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캐나다네 집에서는 그런 문제가 비교적 적어요. 캐나다는 어차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라 인정하고 함께 사는 길을 택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캐나다는 여기서 위안을 삼곤 합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도 차별하지 않아'라든가, '우리는 너희보다 조금 못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희처럼 배고파서 죽어나가는 사람을 지켜보고 있지는 않아.'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자꾸 미국이네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옆 집의 잘난 친구를 부러워하면서도 애써 '난 걔와는 달라!'를 외치는 반면, 잘난 친구들이 으레 그렇듯이 미국이는 가끔씩 필요한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할 뿐, 캐나다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죠. 또한 미국이가 워낙 힘이 세고 잘 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한 문제들도 따지고 보면 캐나다가 감당해야 할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캐나다네 젊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공부하려고 미국이네 집으로 옮겨 가 살기도 하고, 미국이네 노래와 구경거리가 담장을 넘어 퍼지면서 자기네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법으로 막아보려고 발버둥 치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전 미국이네 사람보다는 캐나다네 사람들이 좋답니다.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모를 망정, 일단은 착하고 순진하니까요.



이웃에 사는 잘 난 사촌은 (때론) 적(敵)이다.


캐나다와 미국은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이 가깝게 살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동류성을 공유하면서 서로 돕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무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는 별 수 없는 이웃사촌입니다.


그런데 앞선 비유에서 처럼 사촌이 이웃에 살게 되면 경제적으로나 생활이 약간 밑도는 집에서는 몇 가지 애로사항이 발생하곤 합니다. 일단 성적이 밑도는 집 자식들은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끊임없이 잘 사는 사촌의 자식과 비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모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교되곤 하지요. 보다 좋은 집에서 살면서 좋은 차를 타고 맛있는 외식을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아버지는 종종 가족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합니다. 반대급부적인 강점이나 어딘가 나은 점을 찾아서 당당함을 호소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저 집보다 화목하잖아.' 라거나 '우리 애들은 저 집 보다 키가 크거든.' 가끔은 허세를 부리게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 이들을 애증의 관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캐나다도 미국에 대해 그런 애증의 시선을 보내는 몇 가지 경우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즐기면서 보호한다 - 문화/스포츠


문화/스포츠적으로 캐나다는 완전히 미국의 속국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인 것 같습니다.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의 인기 스포츠는 미국 리그의 한 자리를 얻어 활약하고 있으며, 심지어 캐내디언들은 미식축구인 NFL도 빅 이벤트로 인정합니다. 재미있는 건 가끔 TV 등에서 영화나 음악을 소개할 때 캐내디언 누구누구가 출연했다는 등의 소개를 빠뜨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 여기 사람들도 미국 영화에 자기네 국민이 출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팝스타 혹은 할리우드 스타 중에 캐나다 출신이 의외로 많습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캐나다의 드라마와 쇼는 내버려 두면 완전히 미국 방송에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거의 미국의 마당인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차적으로 동시간대에 놓여있으며, 결정적으로 언어와 풍습이 같기 때문이겠지요.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미국 문화 컨텐츠의 강점을 생각하면 캐나다의 문화적 펀드먼트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등잔 밑에서 간신히 버티는 형국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캐나다도 자국 문화의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와 같은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Canadian Content(캔콘)이란 것인데, 캐나다 라디오-텔레비전 및 전기통신 위원회(CRTC. Canand-ian Radio-television and Telelcommunications Commission)에서 내놓은 캐나다산 콘텐츠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와의 차이라면 캔콘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라디오 및 전문화된 방송 채널에도 적용된다는 점이지요.


예를 들어 텔레비전에서는 일정 비율의 캔콘을 방영해야 하는데, CRTC로 부터 Canadian Program Certification이라는 허가를 받은 드라마 등의 캐나다 프로그램들은 일정한 시간을 할당받는 인센티브를 받게 됩니다.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노래에도 캔콘은 적용됩니다. 모든 AM과 FM 방송국에서 매주 방송되는 모든 음악의 35%가 캔콘에 해당되어야 하며, 그중 35%의 음악은 주중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 사이에 방송되어야 합니다. 참고로 캔콘을 흔히 "MAPL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이는 CRTC가 캐나다 음악이라고 정한 네 가지 기준입니다.


M (Music) – 전적으로 캐나다인이 작곡한 음악일 것.
A (Artist) – 음악과 가사 (또는 음악이나 가사 중 어느 하나)가 주로 캐나다인에 의해 연주되었을 것.
P (Production) – 실황으로 된 음악이 (1) 전적으로 캐나다에서 녹음되었거나,

(2) 전적으로 캐나다에서 공연되어 캐나다에서 실황으로 방송될 것.
L (Lyrics) – 전적으로 캐나다인이 작사했을 것.


어찌 보면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그만큼 자국 문화 보호가 절실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캐네디언들은 이러한 문화적 지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미국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저 같은 생활권에 사는 같은 문화적 생활 방식의 소비 정도랄까? 얼마 전 디즈니랜드 60주년을 맞아 몇몇 캐나다 방송이 디즈니랜드에서 현장 방송하는 것으로 봐서도 문화적 동질감은 유지되고 있고 또 그것을 굳이 거부하려고 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한 가지에서 낳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 - 국가와 사회, 그리고 경제


문화/스포츠 분야와는 달리 사회/경제적인 이슈에 대해서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과 꽤나 다른 시각을 지닌 것 같습니다. 한 가지에서 난 형제이지만 가는 길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미국은 몰라도 적어도 캐네디언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고. 마치 영화 '영웅본색'의 형사와 조폭 형제처럼.


그렇다면 무엇이 캐나다와 미국을 가르는 핵심일까요? 다소 비약적인 주장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국가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미래 비전 등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개인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되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물리적인 장치 즉 담장으로써 국가가 있으며, 사회는 개인이 삶을 영위하는 장(場) 즉 마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꾸려나가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대단히 진보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캐나다는 결코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사회주의의 장점 요소를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자본주의를 꺼내 든 중국과 반대 진영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이 자본주의의 총아라면, 캐나다는 수정자본주의의 총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유럽의 그것과는 또 궤를 달리하니 유럽의 그것은 수정 사회주의라 할 수 있겠지요 -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정의한 구분이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 혼란스러웠던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캐나다는 미국과 같은 정체성을 지닌 나라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가 출발한 나라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최첨단의 자본주의를 구가하는 미국과 지척에 사는 형제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부딪쳐보니 사뭇 생각도 많이 다르고 사는 방식도 많이 달랐습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영웅본색'의 한 장면. 구글 검색


이러한 의식의 차이가 현실 정치에서 반영되면서 제도적인 측면에서부터 미국과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됩니다. 미국이 기회의 균등을 통한 경쟁 지향의 사회라면, 캐나다는 균등한 삶의 질을 함께 나누는데 보다 진력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캐나다는 미국과 같은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육아', '교육', '실업', '노후'에 대해서는 사회와 국가에서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이 여실히 드러나 보입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소득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정부에서 Child Benefit과 같은 다양한 복지기금이 지급됩니다. 절대로 아이들을 굶기거나 내버려 두지 말라는 취지이겠지요.


교육 또한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기에 일절 가구소득에서 비용이 지출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최근에 온타리오 주는 무상 교육 제도를 대학교까지 확대했습니다. 실업급여 및 노후연금에 대해서도 탄탄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편안하고 안전한 노후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상의료입니다. 캐나다 병원에서 수납처를 찾는 일은 에버랜드에서 잃어버린 100원짜리 동전 찾는 일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어누 누구도 어떠한 진료나 치료를 받았던 돈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회보장제도뿐만 아니라 SOC라 불리는 사회 간접 자본 시스템에 있어서도 국가와 사회의 몫이 강조됩니다. 우스갯소리로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발견하는 다른 점이 첫째는 도로 표지판이고 둘째로 톨게이트라고 합니다. 도로 표지판에 제한속도가 60이라고 똑같이 쓰여있어도 캐나다에서는 60Km를 의미하는데 반해 미국에서는 60마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는 국제 공인 시스템에 보조를 맞추려 노력하여 대분분의 단위를 국제 표준인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자기들 도량형 단위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정부의 할 일이 이런 것이라면서 유료 도로가 극히 제한적인 반면에 미국에서는 이용요금을 징수하는 톨게이트를 거치지 않고는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캐나다는 인류가 지닌 보편성에 기초한 긍정적인 가치관 또한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웁니다. 예를 들면 캐나다는 미국의 다양한 차별적 풍토 즉, 인종, 여성, 기타 등등의 온갖 차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우린 쟤네완 달라'라는 표정으로 말입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열위에 빠진 캐나다는 미국에 대해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무기로 가치관의 차별화를 내세우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은 호혜평등, 공동체, 국가 등 여차하면 사회주의적 색채를 띄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캐나다가 사회주의를 지향하거나 표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캐나다는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미국과는 달리 무분별한 자유주의에 대해 경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미국과의 차별화와 자긍심을 세우고 있는 듯 보입니다.


'모자이크'와 '용광로'의 차이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총기 사고나 온갖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캐나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캐나다 사람들이 목에 힘주는 요소 이기도 합니다. 캐나다가 아무리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해도 범죄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발생 빈도와 범죄의 심각성 측면에서 현저히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출발은 같았지만 각각의 사회와 구성원이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지향하는 가에 따라 각각의 사회가 얼마나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시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거봐, 우리는 너희와 이렇게 달라.'를 위한 노력이 이런 다름을 만들게 된 배경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입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땅을 지녔지만 그에 비해 너무도 적은 인구에서 비롯되는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민에 대해 깊은 고민을 지닌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이는 캐나다 사회에서 차지하는 이민국의 역할과 비중이 큰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민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할 기회가 있겠지만, 캐나다 사람들이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중요한 시각 차이가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과 자신들을 '모자이크'와 '용광로'의 차이라고 얘기한다는 점입니다.


문화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캐나다는 포용, 융화 정책을 기본으로 합니다. 개인을 온갖 차별로부터 보호하고, 모든 국민이 동등한 권리와 인권을 인정합니다. 북부 흑인 노예를 받아들였고, 영어권만이 아닌 독일, 프랑스 등의 문화를 인정하며(캐나다는 영어와 불어가 공용어이다) 출발한 캐나다의 역사 자체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캐나다는 온갖 재료를 한 데 모아서 하나의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 내는 용광로에 비유하고 미국은 모자이크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캐나다는 항상 이방인이 정착하기 좋은 나라로 선정됩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인종, 성별, 빈부 등속으로 인한 차별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사회 이슈로 상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캐나다도 완벽한 유토피아 사회가 아니기에 미국과 마찬가지로 반대급부적인 부작용이 존재하고 이에 대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여 놓으니 그다음은 그들을 하나로 묶을 뭔가가 필요한데, 사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민족/인종/국가가 모였으니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더욱이 캐나다는 캐나다란 이름으로 독립적인 국가활동을 펼친 것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신인 아닌 신인, 중고 신인이니까요. 註1)


아무튼 순박함을 잃지 않고 차별 없는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려는 마음가짐이 강한 캐나다는 우리네 시골 정서와 맞닿아 있고, 합리적 경쟁을 내세우며 네 것과 내 것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미국은 마치 서울깍쟁이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부분에서 같으면서도 다른 나라 미국과 캐나다, 그중에서도 촌놈, 캐내디언이 바라보는 미국에 대한 시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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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캐나다란 이름이 독립적으로 쓰이게 된 것도 1950년대 이후이고, 1982년인가에 비로소 헌법 같은 헌법을 독립적으로 갖게 되었으며, 단풍나무로 유명한 캐나다 국기도 1964년에서야 제정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든 개별화된 사람들(People, 인민)을 한데 묶을 공통의 끈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들은 국가관의 확립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려면 국가관을 위시한 캐나다 사회에 대한 개괄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 하겠기에 따로 언급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