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인기 없다고? 월드컵에게 물어봐

비인기 종목, 축구를 위한 변명

by 가나다 이군

축구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아마도 전 세계 300여 국가들 중에서 어느 나라건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 4개를 고르라면 축구는 빠지지 않고 포함될 것이다. 축구는 무엇이 되었건 공 같이 생긴 물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은, 즐기는 스포츠다. 게다가 쉬지 않고 빠르게 전개되는 경기 방식과 매우 단순한 룰(오프사이드 외엔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룰이 별로 없다) 덕분에 TV 시청 시에도 집중도가 높은 덕을 보는 종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축구라는 종목의 스포츠가 힘을 못 쓰는 두 나라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 이 두 나라에서 축구는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에 밀려 4대 스포츠에 포함되지 못한다. 이 4대 종목은 자기네가 만들거나 다듬어서 내놓은 종목이라는 점에서, 불과 몇 세기 전, 유럽에서 떨어져 나온 아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차별화의 욕망도 작용했을 것이지만,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그런데 ‘왜 그럴까 보다’도 먼저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동네 운동장이나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종목이 축구이며, 프로축구 리그가 있고, TV로 중계도 되며, 경기장은 관중으로 꽉 들어차고 그들의 응원 또한 여느 나라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축구는 정말로 인기가 없는 걸까?


애피타이저 : 결승전이 끝날 때까지 월드컵이 끝나지 않는 나라


월드컵은 어떨까. 이들은 월드컵도 보지 않을까? 프리미어 리그 중계도 인기가 없을까? 결론은 당연히 '아니올시다'이다. 채널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프리미어 리그나 분데스리가, 세리에 A 등의 중계도 언제든 시청할 수 있다. 월드컵 또한 개막전에서부터 결승전까지 끊임없이 이슈가 되고 중계 또한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축구는 인기 종목의 상위에 들지 못할까?


2002년 월드컵 당시 주최국인 한국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면 나머지 경기는 운동장이 텅 비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우려는 한국이 4강까지 올라가면서 해소되었지만, 실제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염려를 낳았던 대목이었다. 어쩌면 일본과의 공동 개최도 그 때문일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우리나라 축구는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제외하면 예선 3 경기짜리 월드컵을 치를 뿐이다. 더욱이 단일 민족이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를 신줏단지처럼 받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팀의 예선 3 경기를 마치면 월드컵의 환상에서 벗어나 모두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월드컵이 약 한 달간 개최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또다시 4년의 기다림을 이어간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나 미국은 확실히 다르다. 월드컵의 결승전이 끝날 때까지는 월드컵이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 인구가 유입되어 살아가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그 안에서 또 다른 월드컵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해당 국기가 달린 차량이 달리고 집집마다 자국 국기가 걸린다. 이곳에선 월드컵에 관심이 없어도 어떤 나라가 출전하고 또 어떤 나라가 이겼는지 길거리에서 알 수 있다. 당연히 마지막 남은 두 개의 국기가 결승 진출국이다.


자국 국기를 달고 다니는 축구팬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딱 한 번 올랐을 뿐, 월드컵과는 거리가 먼 캐나다에서 이러한 현상을 지켜본다는 것은 더욱 재밌는 일이다. 결코 국민의 대부분이 축구를 도외시하거나 관심이 없는 환경은 아니라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축구에 대한 관심이나 저변은 결코 여느 나라에 비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여가시간을 활용한 비정규적인 놀이라는 측면 외에도 축구는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캠프나 어른들의 동호회 활동에서도 타 종목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일단 대중의 관심이 많은 종목으로써 인기의 기반은 마련되어 있어 보임에 틀림없다.


미국 동네에서는 조기 축구를 할까? 미식축구를 할까?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을 살펴보자. 축구가 인기 있는 이유는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종목이며, 빠른 진행의 경기 방식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종목이 너무나 많은 반면, 아이스하키, 농구에 비하면 축구가 그리 빠른 스포츠도 기술력이 높은 스포츠도 아니다. 예를 들어 아이스하키를 보고 있자면, 선수와 퍽을 쫓아 눈동자 굴리느라 팝콘 집어 먹을 겨를도 없다.


일단 미국과 캐나다는 스포츠의 천국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종목은 말할 것도 없고, 얼티밋 프리스비(Ultimate Frisbee), 라크로스(Lacrosse) 같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스포츠 종목이 동네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매년 대회가 열리고 TV로 중계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비인기 종목은 여기서는 비인기 종목이 아니다. 동네 수영장에서 싱크로나이즈 연습을 구경할 수 있고, 동네 운동장에서 투포환을 던지고, 동네 아이스링크에서 쇼트 트랙이나 피겨 스케이팅을 구경할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종목의 선택이 가능하고 또 실제로 즐기고 있다. 또한, 돈과 부모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예체능 활동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맨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실타래나 고무타이어 걷어차며 노는 것 밖에 없는 환경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축구도 하지만 이 또한 하고 싶은 사람만 할 뿐이다. 물론 아이스하키나 농구, 야구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동등하고 공평하게 열려 있다. 그래서 라크로스에 관심 있는 사람은 라크로스를 하고, 크리켓이나 소프트 볼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걸 한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의문이 생겼다. 선수인가? 아니면 선수를 시키려고 그러나? 올림픽이나 세계 대회에서의 우승이 목표일까? 하지만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속속들이 깊이 있는 사정이나 내막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냥 좋아서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선수를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고 그래서 대단한 선수가 되어야만 하는 우리네 관점에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활 체육과 스포츠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우리의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 전 국민이 즐기는 생활 체육으로써의 축구와 '프로'라는 명칭으로 대변되는 스포츠로써의 경계가 확실한 것이다. 이는 생활체육 인프라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출발선이 다르다. 미래의 직업으로 혹은 생존을 위한 유일무이한 생계 수단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는 어떤 종목이든 중고등학교 시절에 선수 생활을 하면 오로지 그 길로 성공하기 위해 몰빵 해야 해야만 한다. '그거 해서 먹고살려면' 선수 시절 내내 눈에 띄게 잘해야 하고 국가대표라도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에선 즐기다가도 잘하면 각광받는 프로 선수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취미로 혹은 부업으로 혹은 프로가 아닌 전업으로 즐길 수가 있다. 즉, 특급 대우를 받는 프로 선수로서가 아니라 생활체육인으로서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예체능 특히 스포츠 천국이라는 인프라가 갖춰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목격하게 되는 스포츠 종목은 역시 축구다.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지만 가장 쉽게 시기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축구의 장점이 이곳에서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할까? 역시 축구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다. 그런데 축구하는 아이들이 천지에 널렸는데, 메시나 호날두 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기 없는 건 프로의 문제


인기 종목의 문제는 결국 생활 체육과 프로 시스템의 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는 생활 체육의 일환으로 활성화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거나 중계를 보고 있지만, 돈으로 대변되는 프로세계에서 축구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종목일 뿐이다.


여기에는 철저히 '돈'과 관련이 있다. 프로 선수나 구단의 관심은 돈벌이에 있다. 더욱이 선수나 구단, 그리고 이를 추구 팬과 결합시켜 주는 미디어 또한 상대적으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레벨에선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뿐만 아니라 축구 또한 인기를 누리는 종목이기는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과 명성을 각오해야 한다.


참고로 4대 종목과 축구와의 연봉 수준을 비교해 봤다. 아래 표에 따르면 돈과 명성으로만 판단한다면 굳이 이 나라에서 축구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구글 검색을 통해 분산된 개별자료를 하나로 정리하였음)


구단과 미디어 입장에서 보자면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아직은 돈 되는 장사로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런데 구단으로서는 축구라는 종목의 시장을 키워나가고 싶고, 또 실제로 크고 있고 나아가 더 클 수 있다고 믿겠지만, 상업 방송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45분 이상을 쉬지 않고 경기를 치르는 축구는 광고하기에 적절한 종목이 아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광고를 끼워 넣지만 광고 담당자의 입맛에 그다지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클래스 있는 선수의 부재, 그리고 전반적인 경기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아마도 우리가 빅리그라고 얘기하는 프리미어리그나 프리메라리가, 분데스리가 혹은 세리에 A 등의 유럽 리그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한국 프로축구의 현실 또한 다르지 않다. 실제로 TV 중계를 통해 MLS 경기를 지켜보고 있자면, K리그나 J리그나 크게 다르지 않음이 느껴지고, 이내 채널을 돌리게 된다. 역시 떨어지는 경기력으로는 팬의 관심을 붙들어 매어 둘 수 없다.


반면에 이들이 얘기하는 4대 스포츠는 각 종목 별로 세계 최고의 경기력을 자랑한다. 다시 말하면 전 세계에서 농구 좀 한다거나, 야구 좀 한다는 선수는 죽기 전에 한 번은 뛰어보고 싶은 리그라는 얘기다. 그리고 축구는 그 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경우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축구 좀 한다는 사람들은 자기네 리그보다 유럽 리그에서 뛰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축구는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리그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있는 데, 당연히 그게 우선이지 않겠는가?


물론 투자가 먼저냐, 경기력이 먼저냐는 관점에 따라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 혹은 중기적인 투자만으로 해당 리그의 수준이 한순간에 뛰어오르지는 않는다는 건, 일본의 J리그나 중국의 슈퍼리그 등을 봐도 알 수 있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싸움이란 얘기다.

토론토 FC 더 레즈 The Reds의 응원 모습-이미지 출처:구글검색


축구는 애국심


한국에서 축구의 위상은 아마 4대 종목 안에는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 인기 있다는 부분이 국가대표 경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축구는 애국심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국내 프로축구 리그 경기장에는 한 번도 안 가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심지어 군대를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축구밖에 할 게 없어서 수비수로라도 뛰었던 경험이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동네마다 야구장이나 아이스링크가 널려있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가 있다면 축구의 우선순위는 많이 밀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축구가 국가 단위로 묶어서 애국심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종목이 아니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자신의 출신 국가 또는 선호 리그 등 저마다 응원하는 팀이 따로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캐나다 팀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장점, 그러니까 '축구를 좋아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유입되는 나라'라는 점에서의 장점이 제공하는 역기능이다.


따라서 축구 종목으로는 한국에서와 같은 대규모 길거리 응원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에 하키나 야구 등은 캐나다나 미국팀을 응원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축구는 온 국민이 한뜻으로 국가대표의 승리를 기원하는 종목으로써의 한계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다.


2014 브라질 원드컵 당시 토론토 이튼센터. 캐나다에서의 월드컵은 모든 이들의 월드컵이다.


축구가 비주류가 아니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비주류인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전 세계 국가에서 축구를 좋아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서, 여타 국가 특히 제3세계의 나라들과는 달리 다양한 종목과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 종목으로써 절대 권력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과 프로의 세계에서 투자와 경기력의 차이가 만들어낸 관심,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축구라는 종목이 국가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묶어 내지 못하는 한계까지 기술해 봤다.


그런데 과연 대중이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류 스포츠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이것뿐일까? 여기 모든 이유를 관통하는 보다 근본적익 간단한 원인이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들이. 유럽과 달리, 미국이나 캐나다 사회에서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문화, 예술 심지어 스포츠는 사회 주류층의 것들 만이 살아남았다. 적어도 주류가 인정하고 용인한 것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들이다. 클래식 음악이 전자라면, 재즈가 후자일 것이고, 테니스, 승마가 전자라면 유럽에서의 축구가 후자일 것이다.


영국 노동자들의 스포츠인 축구는 전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 중에 대표적인 종목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축구는 시간도 돈도 여유롭지 않은 부모의 자식들이 남는 시간에 즐기는 여가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인생역전의 꿈을 심어주기도 한다. 전 세계 아이들이, 특히 제3 세계의 아이들이 유럽의 빅리그를 상상하며 꿈을 키우듯이, 미국에서는 또 하나의 가난한 사람들의 스포츠인 농구가 그 역할을 한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주류인 그들에겐 시간도 돈도 없다. 스포츠에 관심을 쏟거나 투자할 여유도 없거니와 그들은 소비의 대상도 아니다.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장을 만드는 노력 자체가 무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투자가 늘지 않는 것이다.


축구팬이 비주류인 이상, 미국과 캐나다에서 축구는 2류 스포츠일 뿐이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