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이민자의 아들딸이다

First Nation에 감춰진 캐내디언의 속내

by 가나다 이군

인디언 인형처럼


흔히 유럽인들이 이주하기 오래전부터 드넓은 북미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던 원주민을 가리켜 '인디언'이라 부릅니다. 그것의 어원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이 그곳을 인도로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400년 넘게 불리어 오면서 인디언이란 단어에는 호전적이고 미개한 종족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또한 포함되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서부 개척민의 시각에서 원주민을 바라보았던 미국 서부 영화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토끼처럼 폴짝폴짝 거리는 춤을 추며 '나의 마음은 인디언 인형처럼' 어쩌고 하는 가요를 흥겹게 따라 부르고, 아이들에게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하는 동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디언이란 호칭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의미하는 외래어이자 고유명사로 고착된 듯합니다.


기사 제목을 인디언이라 기술한 캐나다 현지 한인 신문 기사


그런데 정작 캐나다 사람들은 그들을 인디언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첫 번째 거주민이란 의미로 'First Nations'이라 부릅니다. 캐나다 사람들이 인디언이란 단어를 쓸 때는 인도 사람들을 지칭할 때뿐입니다. 공식적으로도 그렇지만 실생활에서도 이들을 인디언이라 부르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뉴스나 공문서 등 보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원주민 'Aboriginal'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First Nations란 말을 선호하고 또 사용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미국 또한 공식적으로는 'Native American'이란 명칭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캐나다의 정서와 여전히 사회계층 및 인종 등 많은 차별이 존재하는 미국 사회와의 정서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단순히 '인도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의 의미를 바로잡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 원주민에게 가한 자기 선조들의 행위에 반성하는 조치들을 취해왔고, First Nations라는 호칭은 그러한 취지의 출발점에 있는 것입니다.


북아메리카 지역의 Fisrt Nations / 이미지 출처:구글 검색 후 편집

이러한 배경에는 그들 스스로에 대해서도 이주민 immigrant라고 인정하는 정서가 깊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캐내디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유럽 등지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본다면 아버지 세대 혹은 할아버지 세대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 거의 모든 캐내디언은 이주민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캐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처음에 살던 원주민이 있었고', 자기들은 '그다음에 건너온 사람들' - 할아버지가 건너오셨든 아버지가 오셨든, 그래서 '지금 캐나다 땅으로 건너온 너희나 우리나 똑같은 이주민이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민족, 단일 국가 혹은 단일 민족과 같은 출처 불명의 이데올로기적 사고방식에 갇혀서 살다가, 태평양을 건너와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매우 신선한 충격 같은 걸 받았습니다. 사고(思考)의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서 살다가 스펙트럼의 다른 쪽 끝으로 넘어왔다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이는 캐내디언들의 가치관과 생활양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키 Key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주민 아니면 이주민의 자손


알다시피 세계적으로 이민자의 나라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세 나라가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호주)입니다. 그중에서도 캐나다는 가장 차별이 없고, 객관적, 주관적으로 이민자가 정착하기 좋은 사회문화적 환경을 지닌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지난 3월 타계한 이민자 출신 피터 멍크라는 세계 최대의 금광회사 설립자가 있습니다. 헝가리 출신으로 나치를 피해 20세에 캐나다로 건너온 그는 단 한 단어의 영어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후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캐나다를 대표하는 경제인이 되었고, 캐나다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며 토론토 종합병원에 1억 7500만 달러(우리 돈으로 1천7백억 정도)를 기부하는 등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박애주의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기부하는 것에 대해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캐나다는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않는 나라였다. 그래도 정부나 학교는 내 장래에 관심을 두었다."라며 "사람들은 내가 토론토를 위해 지원하는 것을 고마워하지만 나는 이 나라가 나와 내 가족에게 베푼 것에 대해 더 크게 감사한다. 캐나다는 문을 열어주었고 나 같은 이민자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흔히 미국의 정체성을 모자이크라고 한다면 캐나다는 용광로라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융화되고 화학적인 결합을 중시하는 사회가 바로 캐나다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또한 많은 이민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사장도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건너온 이민 2세이며, 언뜻 떠올려보아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콰도르, 도미니카, 멕시코, 루마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라오스, 중국, 크로아티아, 브라질, 가나, 세네갈 등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 출신이 다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대회가 열리면 참으로 재밌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 국가대표팀이나 선수가 경기에 패하면 그것으로 그 대회는 사실상 끝난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캐나다에서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거리마다 혹은 학교나 사무실마다 자신들의 출신 국가의 깃발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출신이나 이민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남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별이나 왕따 같은 것은 가장 큰 이슈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캐나다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해 보면 적어도 부모 세대 중 한 명은 이민자 출신인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이민 관련 얘기가 나오면 '나도 어머니가 어디 출신이다'. '할아버지가 어디서 오셨다'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나도 이민자 출신이다'라는 사고 思考는 지금의 캐나다를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의식 意識 중에 하나입니다. First Nation은 이러한 캐나다 사람들의 선하고 합리적인 의식의 바탕에서 탄생한 말입니다.


반전 反轉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혹시....?' 하는 다른 생각을 품어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감춰진 속내는 사실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적 사고방식보다 더 무서운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First란 형용사를 단다는 것은 '아무도 이 땅의 주인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의 다른 얘기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Second인 자기들도 이 땅의 주인은 아니지만, 너희들도 먼저 온 First nations 일 뿐이니 이 땅의 주인이라고 말하지 말라. 너희도 이 땅의 주인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이는 어쩌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의 새로운 정착민들이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을 어떻게 침략하고 그들의 삶을 유린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영악하게 피해 가는 영민함 마저 느껴지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합리적인 의구심의 배경에는 겉으로는 '우리 함께 어울려 잘 살아 보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상 캐나다 사회나 국가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 실질적인 혜택을 가장 많이 얻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터번을 쓴 무슬림이 국방장관 하고 여성 장관과 주지사가 넘쳐나는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정치권이나 대학 교수 등 소위 파워 엘리트라 불릴만한 사람들은 백인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조금씩 그 문호가 열리는 듯 보이지만, 매우 더디게 그것도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해 보입니다. 결국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 그리고 사회/문화적 혜택을 이끄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말은 그렇게 해도 어차피 그들의 리그가 아니겠냐는 의구심 말입니다.


또한, First nations에게 일정 영역의 주거지역을 제공한다는 것도 사실 누가 누구에게 베푼다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주거 지역을 베풀지? 물론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 근본적인 정책이라고 할 순 없을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캐나다 사람들의 소박함과 친절함은 어쩌면 이들이 태생적으로 선하고 친절해서가 아니라 사정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세 번째 Third 혹은 그다음번 Next 도 인정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생겼습니다.


-다코타족의 추장 앉은 소(혹은 웅크린 소) Sitting Bull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그래서 지구는 돈다


물론 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화해의 시도이고, 어쩌면 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할 망정, 모든 교육기관을 통해 가르치는 내용을 볼 때 과거의 반성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캐나다 사람들의 사고는 열린 미래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고들 자면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정쟁의 패배자는 모든 것을 잃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수많은 민족이나 부족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우리 한민족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그러하듯이 아메리칸 인디언이 이 땅에 먼저 살았다는 것이 지금도 이 땅의 주인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는 우리 한민족의 나라지만 현재 그 고토를 실효적 지배하고 있는 건 중국입니다. 한국이 중국에게 그 땅을 도로 내놓아라 할 수 있는 배짱도 없거니와 그런다고 중국이 돌려줄 리도 없습니다. 그렇듯이 원주민이 아무리 여긴 우리 땅이었으니 이젠 돌려달라고 한다고 캐나다가 모호크 나라로, 미국이 아파치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아메리카 땅에 살던 원주민이던 First nations이던 아니면 인디언이던 그들의 지위는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넘어갔고 그들 모두는 캐네디언 혹은 아메리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사람들이 이곳 캐나다에서 살아보고자 건너왔고, 지금도 오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올 것입니다. 이렇듯 캐나다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또 한데 모여 살아가는 용광로 같은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First nations라는 지칭은 단순히 시계열적인 순서상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입니다.


캐나다. 그들의 숨어있는 솔직한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차별을 거부하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 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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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記] 그러고 보니 '캐내디언은 누구인가?'부터 애매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캐내디언이라고 부른다면 허연 얼굴과 금빛 머리카락 그리고 퍼런 눈의 (영어 잘하는)훨친한 코쟁이를 생각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와 보면 정작 그런 사람들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캐나다는 전 국민의 22%가 소수민족이며 온타리오주는 29%나 됩니다. 특히 2016년 실시한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토론토의 경우 전체 인구의 51.15%가 한인 등 유색 소수민족 Visible Minority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엔 캐네디언은 누구인가?라는 생각도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