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직 시작중

오늘의 부족함은 내일의 재료가 된다

by 류주복

첫 경험은 엄청난 부족함으로 시작되었다.


입사 4년 차, ERP라는 용어조차 업계에 상륙하기 전이었다. 신입사원 딱지를 떼고 있던 나는 전북 익산시에 있는 K전자의 MRP 시스템 구축 PM이라는 그럴듯한 직함을 달게 됐다. 멋지게 표현하자면, 단순한 보직 임명이 아니라 '기술 너머의 사람'을 마주하라는 현장의 호출이고, 현실적으로는 서비스 사업의 경력이 시작된 것이다.


첫 고객사인 K전자는 전북 익산 수출자유지역을 대표하는 앵커 기업이었다. 단순 조립이 아닌 광반도체 설계 + 제조 + 패키징을 아우르며 당시 한국 전자부품 산업에서 희소한 기술 축적 기업 중 하나였고, 지금도 비메모리 반도체·광센서·LED 전문 기업으로 익산에서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상장 회사이다.


K전자의 정보화 추진 사업을 위해 국산 MRP 패키지를 기반으로 추가 기능을 개발하여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수주에 성공했다.


회사의 선배들로부터 주어진 프로젝트의 가이드라인은 명확했다. "MRP 패키지에는 이미 검증된 베스트 프랙티스가 녹아 있으니, 웬만하면 건드리지 마라." 최소한의 개발만 허용된 일종의 '커스터마이징 제한령'이었다.


매주 월요일 새벽, 서울발 첫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내려가 금요일까지 현장을 지켰다. 현업 부서와 협력사 개발팀 사이를 미친 듯이 오가며 요건을 정의하고, 좁은 화면 안에 최적의 로직을 설계해 넣었다.


3개월의 강행군 끝에 마주한 시스템 테스트 결과는 완벽했다. 데이터는 의도한 흐름대로 흘렀고, 로직은 오차 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사용자 테스트와 교육장에서 터져 나왔다.


현장 작업자들의 눈빛에는 적대감이 서려 있었다. "이 기계가 들어오면 우리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라는 근원적인 공포가 거부감으로 분출됐다.


반면 관리자들은 "지금보다 보고서 기능이 더 형편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원한 건 10년 뒤에나 가능할 법한 실시간 데이터 분석과 화려한 시각화 대시보드였다.


회의실은 매일 얼음장 같은 긴장과 당황의 연속이었다. 어렵게 예산을 마련해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고객사 기획팀장과 전산실장의 눈에는 상황 역전을 바라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두 가지를 실행에 옮겼다. 현장 작업자들에겐 1:1 맞춤 교육을 진행하며 이 시스템이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단순 반복 업무를 줄여주는 도구임을 설득했고, 관리자들에겐 엑셀 기반의 임시 보고서를 제공해 당장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한 달간의 치열한 '변화관리' 끝에 프로젝트는 간신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그렇게 프로젝트팀은 박수받으며 고객사 사무실을 나섰지만, 애절한 눈빛의 고객사 기획팀장과 전산실장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생각하면 짠하다.


K전자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이번엔 이미 MAPICS 패키지를 도입해서 사용 중이던 H약품으로 가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H약품은 국민 감기약 화이투벤, 매일 술 먹어야 하는 직장인 아빠를 위한 프로헤파룸 등 간판 제품을 비롯한 여러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던 대한민국 대표 중견 제약회사였다.


아무리 먹여도 살찌지 않는 허약 체질 인생들을 위한 살찌게 하는 약도 판매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살찐 게 건강의 상징이기도 했다지만, 오늘날 기준으로는 매우 낯설다.


CIO는 구면이었다. IBM이 후원하던 MAPICS 패키지 사용자 모임에서 그 CIO가 회원 중 가장 불만이 많은 분이었다. 잘 써보고 싶었지만, 지원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H약품은 IBM 메인프레임도 도입했었는데, 지원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의도에 있던 IBM 건물 정문 앞에 메인프레임 기계를 트럭에 싣고 와 내려놓고 가서 담당 부서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


나중에 그 CIO를 MAPICS 사용자 모임 회장으로 추대하고 나서야 좀 조용해 지셨다.


CIO가 원한 건 생산 계획 모듈 추가 개발이었다. 레시피 구성, 재고 관리, MRP 로직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일종의 PM 면접이었던 셈이다. 내가 책으로 배운 이론을 줄줄 외고 원가 계산까지 설명하자, MRP 전문가이니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며 당장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경쟁 없이 수주한 기쁨은 잠시였다. 생산 품목도 많지 않고 전량 계획생산 형태인 데다 원재료 혼합, 가공, 포장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공정으로만 본 것이 화근이었다. 실제 구현은 상상 이상으로 난해했다.


제약의 특성상 혼합되지 말아야 하는 원재료 조합 배제 조건이라든지, 반대로 기계 준비시간을 줄이기 위한 흐름생산 스케줄 조정, 포장라인의 용량 등등 생산 계획 로직부터 각종 제약사항, 긴급 상황 예외 처리까지 지금 기술로도 쉽지 않을 추가 요건이 끝도 없이 불어났다.


AS/400 기종의 주전 프로그래밍 환경인 RPG는 Report Program Generator라는 말 그대로 트랜잭션 처리와 보고서 작성에 최적화된 언어이다. 그 복잡한 현장의 복잡한 조건 분기와 시뮬레이션을 돌리려니 하드웨어와 언어의 한계가 명확했다.


코딩에 소질이 없던 내가 RPG 공부를 좀 해보려 해도 BASIC, FORTRAN이나 C와 한참 다른 명령어 체계와 컬럼의 위치가 의미를 갖는 고정 포맷은 직관성과 이해도가 매우 떨어졌다. 직장 생활의 자세는 생계형이었지만 코딩은 취미형에 그쳤던 나는 끝까지 RPG를 마스터하지 못했다.


당시는 RPG 프로그래머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일자리는 많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없는' 전형적인 희소 기술 시장이 되었다고 하니 세월이 많이 지나긴 했다.


급기야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협력사 개발팀장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혹시나 꾀병이면 다행이겠다 싶어 고객 CIO와 함께 병문안을 가봤는데, 진짜 아파서 입원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나는 매일 고객사로 출퇴근하며 그때까지의 산출물을 문서화하고 가끔 공장 포장라인에서 포장 작업도 도우면서 '볼모'로 자리를 지켰다.


프로젝트 종료 사인을 구걸하던 내게, CIO는 기묘한 역제안을 던졌다. "당구와 볼링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탁구 시합을 해서 나를 이기면 종료 사인을 해주겠다." 당시 내 눈에 비친 그는 지금의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지만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풍채 좋은 중년의 신사였다.


첫 시합 날, 나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번듯한 운동복과 운동화에 전용 버터플라이 라켓까지 챙겼다. 반면 CIO는 양복 정장에다 구두 차림으로 대충 하우스 라켓을 집어 들었다. 결과는 처참한 완패였다. 소싯적 동네 탁구장에 좀 드나든 나에 비해, 그는 선출 고수였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탁구 시합을 벌였다. 땀을 흘리며 탁구공을 주고받는 시간들이 쌓였고, 마침내 한 달 후 종료 없는 종료 보고서에 종료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덤으로 국민 감기약 화이투벤 한 박스와 그 고객사 구내식당의 명물이라는 김장김치까지 한 통 얻어서 말이다.


그 CIO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는데, 몇 년 후에 사업을 하시면서 고객의 고객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내 골프 인생의 머리를 올려주시기도 했다. 아직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다.


초보 PM으로서 몸으로 들이받으며 보낸 이 두 프로젝트는 내게 세 가지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일정과 인력, 그리고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실전 프로젝트 관리 기법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정형화된 시스템 분석과 개발 방법론의 중요성이었다.


가장 뼈아픈 교훈은 세 번째였다. '사람을 이해해야 기술이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조직의 혁신은 로직의 정교함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과 소통의 흐름에서 완성된다. 기술보다 사람, 일정보다 소통, 방법론보다 이해가 먼저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온몸으로 아프게 배웠다.


다행히 이후 IBM이 제공한 방대한 지적 자산과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가르침 덕분에 부족한 현장 경험들을 체계적인 역량으로 빠르게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 나를 이겼던 CIO의 탁구 실력은 단순한 운동 능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초보 PM의 조급함을 다스리고, 비즈니스 관계의 본질을 가르쳐주려던 노련한 선배의 한 수였다. 결국 남는 건 시스템 화면이 아니라 사람과 나누었던 땀방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곧이어 마주친 거대한 시험대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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