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는 화이트보드를, 가슴으로는 따뜻한 카페인을
초보 PM 자격으로 경험한 두 번의 매운 프로젝트에 다소 의기소침해져 있었던 내게 경북 포항시에 있는 K산업의 ERP 구축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거대한 시험대였다.
K산업은 철근, H빔, 산업 기계, 철판 제조용 롤 등이 주요 제품이던 당시 포스코 다음으로 큰 철강회사였다. 포항은 흔히 포스코의 도시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두 개의 축으로 돌아갔다. 하나는 포스코, 다른 하나가 K산업이었다. K산업은 1973년 포항제철 준공 시기에 맞춰 포항에 공장을 세운 뒤, 26년간 성장하며 포스코와 함께 지역 경제를 떠받친 기업으로 평가된다.
포항에서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K산업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학교, 상권, 주거지까지 생활권 단위로 회사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상호가 사라질 당시에 직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안타까움을 표했다. K산업 포항공장은 지금 H제철 포항공장으로 계속 가동되고 있다.
K산업은 1990년대 중반까지 성장을 지속하고 있었으며, 회사의 미래를 걸고 전산화를 진행했다. 1차 컨설팅 프로젝트를 통해 방향성을 수립하였고, 후속으로 2종류의 외국산 MRP 패키지를 커스터마이징하여 3개 사업부 MRP, 통합 자재관리, 통합 원가관리 등 5개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주사업자인 IBM이 컨설팅 사업에 이어 전체 PMO를 맡고 고객사 프로젝트팀 및 협력사 직원 등 총 100명 이상의 상근 인력이 맞물려 돌아가는 초대형 정밀 기계였다.
IBM은 PM이 상주하고, 여러 전문가가 프로젝트 단계에 따라 투입되는 형태의 팀을 구성했다. PM은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사수 역할을 해 주셨던 분으로, 역시 인품이 훌륭하고, 조용하지만 강한 리더십의 스타일이었다. 내가 아직 핏덩이 애기 때 만났는데 이젠 같이 늙어가고 있다.
고객사는 회사의 업무에 정통하며 IT에 관심이 있는 에이스 직원들을 각 사업부에서 총동원하여 50명의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재무팀에서 경험이 많은, 인품과 리더십이 뛰어난 분이 PM으로 임명되었다.
이 두 분의 PM은 동갑이었다. 갑과 을은 동갑이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두 PM은 프로젝트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놀랄 만큼 한결같이 평정심과 상호 존중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 그 인간관계는 나중에 IBM PM은 IBM을 떠나 H제철의 그룹CIO가 되고, 고객 PM은 모그룹 계열사 대표가 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나도 여전히 IBM 소속으로 그 관계에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메인 협력사로는 N사가 선정되었다. N사는 서버, 네트워크, 4세대 언어/DB/통신 SW, 정보처리 용역에 강점이 있던 중소 SI/솔루션 회사였고 전성기인 그 당시에 7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SI사업부 임원이 사실상 총괄 PM 역할을 수행했으며 5명의 개발 PM과 40명의 개발자들이 참여했다. 그 외 여러 명의 철강산업 및 MRP 전문 컨설턴트가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그 대형 프로젝트의 작은 톱니바퀴였던 내게 주어진 임무는 개발 시행서, 산출물 목록 및 문서화 템플릿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애초 계획은 프로젝트 초기에 한 달 정도 일정이었지만, IBM PM의 요청으로 연장되었다.
프로젝트는 상세설계와 코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었다. IT시스템 구축 시 현업과 개발팀 사이에서 예외 없이 발생하는 갈등의 전형적인 단면이었다.
고객 프로젝트 멤버들이 시스템 구축에 대한 완벽주의와 책임 의식을 갖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한정된 기간 내에 주어진 업무를 개발하고자 할 때, 모든 업무가 자동화된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사명감 충만한 목표는 너무 강하게 팀원들을 옭아매고 있었고 실제로 위험 요인으로 구체화하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IBM은 떠나면 그만인데 본인들은 현업으로 복귀해서 시스템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니 부담감도 매우 심했을 것이다.
반면에, 개발팀 처지에서 보자면 컨설팅 단계에서 기본 설계가 진행되었음에도 막상 상세 설계에 들어가니 기본 설계 산출물의 활용도가 매우 떨어졌다. 어제 확정한 요건과 개발 스펙이 현업에 의해 추가되고 변경되는 일이 매일 발생했다. 여기에 과중한 문서화 부담이 더해졌다.
설계 단계에 이미 계약을 초과한 인원이 투입되고 있었지만, 계획 대비 프로젝트 진도율은 30%에 불과했다. 일정은 지연되고 있었으며, 더 이상의 야근은 결국 팀을 소진시킬 뿐이었다.
몇 달 동안 관찰한 내용을 '프로젝트 현안에 관한 협의 및 검토결과' 보고서로 작성했다. 분석과 설계라는 표준화의 늪을 지나면, 개발 부하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 임계점을 넘기는 데 필요한 노력은 더 많은 코딩이 아니라, 더 명확한 선택과 집중이란 게 요지였다.
정량적인 프로젝트 관리 데이터를 근거로, 시스템화해야 할 영역을 명확히 하고 업무 부하와 일정 관리를 더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권고를 보고서에 꾹꾹 눌러썼다.
고객 PM 및 IBM PM의 승인을 받고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수립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보따리를 쌌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고객 프로젝트팀은 모든 수작업을 박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했다. 팀원들의 책임감은 숭고했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을 질 수 없는 경직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현업의 모든 지엽적인 요구사항까지 시스템에 녹여내려다 보니, 정작 흘러가야 할 주요 기능은 부수적인 기능들에 가로막혀 탁해지고 있었다.
개발팀은 "이것까지 해야 하나?"라고 의문을 품지만, 고객의 강한 요구에 밀려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모든 문제와 불만이 나에게 집중되는 듯한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현업과 프로젝트팀을 잇는 ‘조정자’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 양사 PM은 내게 상주 연장을 요청했고, 개발 부문 리더로 근무는 그렇게 시작됐다. 내가 작성한 실행계획이 제대로 돌아갈 때까지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양사 PM으로부터 개발 부문의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고, 곧바로 프로젝트 사무실을 나와 현업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두 분의 모험에 가까운 위임에 감사드린다.
“컴퓨터로 다 된다면서요! 이걸 다 못 만들면, 전산화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현업 부서장의 고함과 함께 두꺼운 요건 정의서가 탁자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한쪽에는 “요구한 기능이 다 안 들어오면 시스템을 못 쓴다.”는 완벽주의 현업팀이, 반대편에는 “이 일정에 이 범위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연이은 야근으로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개발팀이 있었다. 양사 PM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서로를 향한 불신이 기술적 논쟁을 넘어 인신공격으로 번지기 직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이트보드 중앙에 굵은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리고 한쪽엔 '생산성', 다른 한쪽엔 '전산화'라고 적었다. “지금 우리는 모든 업무를 전산화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살리는 시스템'을 만드는 중입니다. 여러분이 요구하는 그 10%의 부수적인 기능 때문에, 나머지 90%의 핵심 기능이 버그와 일정 지연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건 책임감도 완벽주의도 아니고, 다 같이 침몰하자는 고집입니다.”
장내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개발팀에게도 쓴소리를 던졌다. “개발자 여러분,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지 마세요. 안 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수작업이 더 효율적인' 방법임을 데이터로 증명하세요.”
그 자리에서 끝장 토론을 선언했다. 모든 요건을 '핵심 기능'과 '지원 기능'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 기능, 없으면 공장이 당장 멈춥니까?”
“...아니요, 그건 아닌데 나중에 보고할 때 좀 번거로워서...”
“그럼 과감히 뺍니다. 대신 수작업으로도 이 데이터와 맞물리게 입출력 양식은 제가 직접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수백 개의 지원 기능 요구사항을 쳐냈다. 양사 PM의 전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엔 자기 팔이 잘려 나가는 듯 고통스러워하던 현업도 복잡한 기능이 빠진 자리에 핵심 기능의 속도가 살아나는 것을 수치로 확인하자,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개발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무조건 다 쳐내거나 무조건 다 해내야 한다는 압박을 거두고,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확정 짓자 신기하게도 개발 속도가 더 붙기 시작했다. "이 범위 안에서는 우리가 책임지고 완벽을 기하겠다."는 자율적인 의지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개발팀과 패키지의 기능을 주제로 공부하며 현업의 요구사항에 어떤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하는지, 전체 시스템의 통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했다.
고객 현업팀과 개발팀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고 소통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고객 현업팀이 나를 저녁 회식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개발팀도 내가 무조건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고객 현업, 프로젝트팀, 개발팀이 합동으로 회식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현업 부서장으로부터 "처음엔 원망했는데, 막상 잘 보니 핵심에 집중하는 게 맞았네요. 덕분에 옥석이 가려졌습니다. 앞으로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겠습니다.", 협력사 PM으로부터는 "앞으로는 모든 개발 여부에 관한 결정을 위임하겠습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동안의 애타는 수고와 노력이 모두 보상받는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지나고 순조롭게 코딩 단계가 완료될 무렵, 고객들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열린 MRP 패키지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낮에는 화려한 기술과 전략 프레젠테이션, 저녁에는 맛있는 씨푸드와 맥주가 어우러진 잔칫날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정적을 깼다. "협력사 N사가 오늘 자로 부도를 선언했습니다." 프로젝트의 한 축이 통째로 잘려 나간 순간이었다. 우리는 즉시 공항으로 달렸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말문이 막힌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귀국 후 마주한 현장은 참담했다. 월요일 아침의 프로젝트 사이트엔 누구도 출근하지 않은 텅 빈 책상들뿐이었고, 그 위에는 주인을 잃은 커피잔만이 시간이 멈춘 듯 놓여 있었다. 이미 프로젝트 기간의 절반을 함께 한 협력사를 이 시점에서 갈아치운다는 건 일정 붕괴와 예산 폭주라는 두 재난을 동시에 맞는 일과 같았다.
주사업자인 IBM은 고객사의 추가 비용 없이 끝까지 프로젝트를 책임지겠다고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내게는 N사 소속 개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한 전권과 협상 카드가 주어졌다.
채권자들로 북적이는 강남의 N사 사무실 근처에서 간신히 협력사 SI 사업부 임원을 만났다. 그분은 개발팀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분이고 직원들의 임금 채권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재개를 위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제시한 조건을 듣고는 개인적으로라도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하겠노라 약속해 주었다. 그날 오후 나는 다섯 명의 개발팀장 집 주소를 들고 한 명씩 찾아 나섰다. 동네 커피샵에서 소속 회사가 망해버린 불안과 허탈함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밀당의 협상 대신, 가능한 최대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프로젝트 계속 진행을 위한 IBM의 의지를 전달했다. N사의 마진이 없어진 만큼 개발자들 보수 인상, 항공편 및 숙소비용 제공 등이었다. 그리고 단 하나만 요청했다. "다음 주 월요일, 팀원들과 함께 일단 다시 프로젝트 사이트로 출근해 주세요."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내 손을 잡았다. 사람은 때로 치밀한 계산보다 진심 어린 제안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물론 상세설계 단계부터 쌓은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고 믿는다.
약속한 월요일 아침, 긴장된 마음으로 공항 게이트를 지켰다. 그리고 한 명, 두 명... 이제는 소속 회사가 없어진 협력사 직원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출구로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다시금 깨달았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결국 화려한 기술의 나열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겹겹이 쌓여 완성되는 연속된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텅 빈 사무실을 다시 채운 건 시스템 로직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믿기로 한 신뢰의 온기였다.
프로젝트는 빠른 시간 내 정상화되었고, 개발자들도 그 협력사 SI사업부 임원을 대표로 하는 신설 회사 소속으로 다시 뭉쳤다. IBM 협력사로 등록하는 것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대표님은 아직도 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게는 학교 선배님이기도 해서 지금까지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개발자들은 안정된 근무 환경에서 생산성을 발휘했고, 의사결정은 더 신속해져 부도 사태로 까먹은 일정을 상당 부분 만회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기술은 멈출 수 있어도, 사람 사이의 신뢰는 멈추지 않는다는 이 강렬한 경험은 나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후 내 커리어와 인생 전반에 지워지지 않는 훌륭한 발판이 되어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얻은 또 하나의 실용적인 깨달음이 있다. 프로젝트 위기 상황에서 화이트보드와 달달한 커피 한 잔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설득할 때, 머리로는 화이트보드가 가슴으로는 따뜻한 카페인만큼 확실하고 정직한 무기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