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골프에 대하여 | 만들어진 신

by 류주복

엉성한 자세, 잘못된 그립, 추한 스윙을 총동원해 작은 공을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보내는 아이러니한 예술이 바로 골프다. 18홀을 치고 나면 남는 건 사진 몇 장과 점수가 적힌 반성문뿐인, 유일하게 돈을 내면서 스트레스를 사는 스포츠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안되는 게 늘어나는, 체계화된 개고생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내 골프 인생은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 H중공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고객의 권유로 울산의 골프 연습장에 처음 가봤다. 재미도 없었지만, 생계형 직장인이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에 7번 아이언 똑딱이에서 그쳤다.


몇 년 후, H약품 CIO였던 분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3개월 후로 머리 올리는 날을 잡아 버리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 골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갈비뼈를 세 번이나 부러뜨려 가면서 웬만한 골퍼들이라면 다 한다는 싱글s, 샷이글s, 이븐파, 사이클 버디 등등 홀인원만 빼고 다 해봤지만, 여전히 골프장에 갈 때마다 수십 번 좌절한다.


골프 구력과 통장 잔고는 묘하게 반비례한다. 잘 치게 될수록 잔고는 더 겸손해진다. 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약 600만 명, 성인 여섯 명 중 한 명은 공을 치며 마음의 평안과 카드값의 불안을 동시에 경험한다는 뜻이다.


스크린골프와 같은 IT 기술 덕분에 시작은 쉬워졌지만, 본격적으로 빠지는 순간부터 골프는 정기 지출 항목이 된다. 그린피는 늘 비싸고, 클럽은 아직 멀쩡한데 “이번엔 진짜 다르다”는 말에 또 바꾸게 된다. 레슨비까지 더해지면, 골프는 운동이라기보다 사치스러운 취미가 된다.


비싼 그린피는, 골프장 건설과 유지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리석을 바른 으리으리한 클럽하우스와 5만 원짜리 식당 떡볶이, 팀당 30만원이 넘는 초럭셔리 리무진 카트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스코어카드는 종이 한 장인데, 영수증 뒤에 붙는 명세서는 장편 소설이다. 혁신이 필요하다.


장비 병은, 예방 백신도 없고, 일단 걸리면 사고 말든가 교체 말고는 치료제도 없는 난치병이다. 심지어, 전염성도 강하다. 특히 드라이버에 돈을 많이 쓰는 이유는, 익숙해지기도 어려운 데 멀리 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클럽 메이커들의 선동식 마케팅도 난치병 증세에 한몫 거든다. 그들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늘었다고 주장한 비거리를 다 합치면 지금쯤은 드라이버 티샷이 달나라까지 날아가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신기한 아이템들이 끊임없이 계속 만들어지는 곳이 골프 업계이다. 퍼팅이 싱글로 가는 길목을 막아서고 있을 때, 무려 NASA 출신 과학자들이 참여해서 개발했다는, ‘그린의 굴곡이 등고선처럼 보이는 선글라스’도 사봤다. 결과가 좋았다면 노벨 평화상감이다.


레슨은, 타이거 우즈도 레슨을 받는다는데 하물며 일반인 골퍼들이야 골프 입문부터 꾸준히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책이나 유튜브를 통한 독학보다 결과적으로 가성비가 매우 높다.


그런데, 레슨에서 배우는 점은 스윙 기술이 아니라, 내가 아직 멀었다는 자기 확신과 약간의 위로뿐이다. 레슨을 받아도 잘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레슨을 안 받으면 더 안 맞으니 도대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러다 보니 취미로서의 골프가 삶의 질엔 좋을지 몰라도 가성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골프를 한 번도 안 쳐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쳐본 사람은 없다. 18홀 내내 좌절했음에도 우리는 또 다음 라운드를 약속한다. 그게 골프다. 이쯤 되면 이유가 필요하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다시 코스로 부르는 걸까.


골프를 하다 보면 연애와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어렵고, 괴롭고, 그만두고 싶다가도 한 번의 좋은 순간에 마음이 다시 움직인다. 잘 될 때는 이유를 묻지 않는데, 안 될 때는 끝없이 분석한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지만, 정작 본인은 설명을 못 한다.


골프의 중독성은 성취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골프는 성공을 주기보다, 성공이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을 남긴다. 잘 치지 못해도 그만둘 수 없고, 가끔 잘 맞은 샷 하나로 모든 불만이 정리된다. 골프는 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오늘은 아니었지만, 다음엔 다를 수 있다.”


이 반복 속에서, 골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 하나에 불과한 골프에서 또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 과정은 세 개의 질문이다.


첫째, 왜 골프를 멘탈 스포츠라고 할까.


골프는 잘 치는 게 비정상이고, 실패가 기본값인 스포츠다. 밥 먹고 종일 골프만 치는 프로조차도 완벽하게 못 친다. 분명 장타자에게 매우 유리한 게임이지만 장타자가 매번 이긴다면 골프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애를 태우지 않는다.


한 번 고수가 영원한 고수도 아니다. 만년 하수에게도 그 분이 오실 때가 있다. 골프는 스코어가 낮을수록 좋은 이상한 스포츠여서, 기술보다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게임이고 멘탈이 약하면 첫 홀부터 무너진다.

골프는 같은 스윙을 하는데 결과가 매번 다르다. 그런데 사실 같은 스윙을 하는 골퍼는 없다. 그렇게 희망할 뿐이다. 그리고 다음 샷까지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다. 멘탈이 약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면 더 망하게 된다. 미스샷을 만회해야지 하는 욕심은 점수를 복리로 쌓이게 한다.


둘째, 왜 골프를 치면 성격이 드러날까.


골프는 남 탓이 거의 안 된다. 공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고, 네트 건너편의 상대도 없으며, 샷을 감시하는 심판도 없다. 결국 실수의 원인이 전부 ‘나’로 귀결되는 스포츠이다. 그래서, 남 탓하는 사람은 캐디, 동반자, 바람, 태양, 잔디, 까마귀 및 그외 365개가 넘는 핑계를 대고, 자기 성찰형은 말없이 다음 샷을 준비하며, 분노형은 골프채를 내동댕이친다.


골프는 내 실력을 보여주기보다, 내 태도를 드러낸다. 내 스윙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곧 성격이다. 골프에서 스코어는 속일 수 있어도 태도는 동반자들에게 생중계된다. 가까운 퍼팅을 놓쳤을 때, OB 냈을 때, 벙커에서 세 번 만에 나올 때, 웃고 넘기는 사람, 입 다무는 사람, 말 많아지는 사람, 갑자기 조용해지는 사람 등 위기 때 나오는 반응이 진짜 성격과 비슷하다.


또, 회사에서는 직급이 사람을 보호해 주지만, 골프장에서는 모두가 동등하게 못 친다. 사장도 OB를 내고, 임원도 쓰리펏을 하며, 팀장도 뒤땅을 친다. 평소에 쓰고 다니는 가면이 벗겨지는 중립지대가 골프 코스이다.


셋째, 왜 골프를 인생과 닮았다고 할까.


인생이 잘한 일보다 아쉬운 일이 더 기억나듯이 골프에서도 18홀 중 기억에 남는 건 미스샷뿐이다, 완벽한 인생, 완벽한 하루가 없다. 인생에서 이미 지나간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골프에서도 OB가 난 공, 해저드에 빠진 공은 다시 치러 갈 수 없다. 그게 룰이다.


방금 친 샷을 바꿀 수 없고, 더 중요한 다음 샷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골프공은 나무를 맞고 살아 돌아오기도 하고, 완벽한 샷이 도랑에 빠지기도 한다. 운을 탓해도 결국 내 스코어로 기록된다. 인생도 환경, 운, 타이밍이 변수지만, 좋든 싫든 결과는 결국 내 몫이기 때문이다.


골프도 인생도 잘 풀리는 날보다, 잘 참고 넘어간 날이 더 값진 게임이다. 또, 골프는 유일하게 스스로 벌타를 선언해야 하는 스포츠이다. 슬쩍 속이면 당장은 편해 보이지만 하늘이 보고 땅이 보며 캐디와 동반자들이 본다. 결국 스코어도, 신뢰도 같이 무너진다. 인생도 비슷하지 않던가.


그래서, 골프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인생 이야기까지 흘러가게 된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아예 소설로 써 놓았다. 마이클 머피 원작 <내 생애 최고의 골프>라는 소설이다. 책 울렁증이 있다면 소설의 기본 구조를 그려낸 동명의 영화도 좋다. 귀차니스트를 위해 줄거리와 해석을 간단히 덧붙인다.


주인공 마이클 머피는 인도로 가는 길에 스코틀랜드에 잠시 들렀다가, 전설적인 골프 코스인 ‘버닝부시’에서 라운딩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수수께끼 같은 골프 고수 ‘시바스 아이언스’를 만난다. 이 인물은 단순한 프로 골퍼가 아니라, 골프를 명상, 스윙을 수행, 라운딩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가르치는 존재이며 다음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는 왜 완벽을 추구하는가.

.몸과 마음은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

.잘 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 하루 동안의 라운딩 속에서 주인공 마이클은 스승 시바스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보다 자기 안에 이미 숨 쉬고 있던 가능성을 발견한다.


시바스는 무언가를 주입하는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마이클 스스로 본성을 마주하게 하는 ‘깨달음의 계기’이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골프 이야기의 외형을 한 ‘자아 발견과 깨달음’의 스토리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불교와 선 사상을 떠올렸다. 작가 마이클 머피가 동양의 수행법에서 영감을 얻었듯, 부처 또한 집착과 무지가 사라질 때 괴로움도 소멸하며 누구에게나 열반의 길이 열려있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골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깨달음은 멀고 필드는 가혹하다. 골퍼는 결국 골프장이라는 가장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에서, 비싼 그린피와 오이씨디라는 실존적 고뇌를 견디며 시험받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생의 거창한 깨달음은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골프장에 편재하는 절대자 ‘골신’을 영접하고, 그를 따르는 독실한 ‘골신교도’가 되는 실용적인 길을 택했다.


골신교는 까다롭지 않다. 십일조도, 주일예배도, 금욕생활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골프 코스를 온전히 즐기고, 동반자를 배려하며, 자신의 샷 앞에 조작되지 않은 겸손함을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골신께서 이르시되,

“나는 필드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하며, 신앙심 깊은 자에겐 천 리 길 버디 퍼팅이 홀컵에 빨려 들어가고 죽으러 가던 공이 나무 맞고 살아오는 자비를 베풀 것이니라. 그러나 오만과 탐욕으로 가득 차 어깨에 힘을 주는 자에겐 반드시 OB와 양파로 응징하나니, 이는 우연한 불운이 아니라 네 마음이 지어낸 정교한 업보이니라.”


골신께서 또 이르시되,

“나는 네가 이미 지나간 미스샷이라는 과거에 묶이지 않게 막아서며, 오직 다가올 미래인 다음 샷에만 집중하게 해줄 것이니라. 다만, 누구도 완벽할 순 없기에 샷 직후 ‘아이쿠’ 하는 10초간의 짧은 자책은 허용하노니, 충분히 뉘우쳤다면 다시 고요히 어드레스에 들거라. 자, 이제 모든 번뇌를 잊고 무심으로 휘두르거라."


그리하여 마지막에 덧붙이시니,

“굿샷이 너희와 함께할지어다. 싱글 하소서.”


그리하여 나는 동료 골신교도들에게 권한다. 라운딩 시작 전 첫 홀 티박스에서 다음의 ‘골신기도문’을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려 보시라. 골신께서 당신의 겸손함을 보시고 기적과 자비를 예비하실지도 모른다.


"필드에 계신 골신이시여, 그 이름이 모든 티박스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늘집의 평화가 임하옵시고, 뜻이 연습장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필드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비거리를 주시옵고, 우리가 동반자에게 멀리건을 베푼 것같이 우리의 OB와 해저드를 사하여 주시옵고, 알까기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양파의 악에서 구하옵소서.


멀리 가는 드라이버와, 벙커를 피하는 세컨샷과,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버디 퍼트의 은총이 골신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나이스 샷.”


이 간절한 기도문이 티박스에 울려 퍼질 때, 누군가는 비웃음을 머금고 누군가는 진지하게 눈을 감을 것이다. 하지만 골프라는 미스테리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기적과 응징은 결코 평등하게 임하지 않는다. 골신께서 베푸는 자비의 크기는 결국 개개인의 신앙심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심은 지금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는가? 골신교도의 신앙 수준은 그 깊이에 따라 엄격히 7단계로 나뉜다.


[골신교도의 7단계 신앙 위계]


1단계 [강한 불신자]: 골신은 100% 없다.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은 절대 없다고 단언하는 오만한 무신론자들이다.


2단계 [사실상 불신자]: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믿는다. 아직은 기적을 체험한 바 없으니, 증거를 가져오라며 버틴다.


3단계 [불가지론적 불신자]: 없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가끔 나무 맞고 공이 들어오는 묘한 느낌은 받지만, 그것이 골신의 존재 때문이라고는 차마 인정하지 못한다.


4단계 [기회주의자]: 골프가 잘 되면 내가 잘 쳐서이고, 안되면 조상 탓이나 골프장 탓을 하는 전형적인 '선택적 신자'들이다.


5단계 [초보 골신자]: 존재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그래야만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골프의 수많은 미스테리들이 비로소 해석되기 때문이다.


6단계 [성숙한 골신자]: 거의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제는 골신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경건한 마음으로 어드레스에 들어간다.


7단계 [독실한 골신자]: 100% 존재함을 확신한다. 매 홀 골신과 대화하며, 내 스코어와 비거리, 심지어 벙커 턱에 걸린 공의 위치까지 그분이 주관하심을 고백하는 순교자적 골퍼들이다.


나의 신앙심을 스스로 돌아보건대, 골신의 자비를 갈망하면서도 가끔은 내 스윙의 물리 법칙을 맹신하는 5단계에서 5.5단계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아직 해탈에 이르지 못한 채, 골신의 존재를 반쯤 의지하며 필드를 걷는 가련한 중생인 셈이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는다.


"여러분의 신앙심은 지금 어느 수준인가? 그리고 오늘 당신의 공이 나무를 맞고 들어오기를 바랄 자격이 있는가?"


스스로의 신앙심을 확인했다면 더 이상 과거의 스코어카드에 연연하지 마시라. 1단계의 불신자든, 7단계의 순교자든, 골프장이라는 거대한 성전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중생일 뿐이다.


여러분이 오늘 걷는 그 페어웨이가 고난의 가시밭길이 될지, 은총이 가득한 꽃길이 될지는 오직 골신만이 주관하신다. 다만 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축원은 이것이다.


“비싼 그린피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평정심을 얻으시고,

동반자의 굿샷에는 진심 어린 칭찬을,

자신의 미스샷에는 10초간의 정결한 자책을 행하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골신께서 예비하신 '인생 라운딩'의 기적을 만나시길.

여러분의 클럽 페이스 정중앙에 골신의 자비가 영원히 머물기를 축원합니다.”


싱글 하소서.

나이스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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