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거인의 MDC 엔진을 설계하다

카피캣에서 브랜드 리더로, 그 위대한 체질 개선의 서막

by 류주복

"주식투자로 1억을 만들려면, 2억을 투자하면 된다."는 뼈아픈 우스갯소리가 있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이 단순한 원리가 왜 이리도 어려울까. 내 투자 철학은 "오르면 놔두고, 떨어지면 오를 때까지 놔둔다."는 이른바 '망부석 투자법'이다. 덕분에 큰 재미는 못 봤지만, 동학개미 시절에 샀던 S전자 주식이 8만전자 재탈환을 넘어 신고가를 갱신하는 모습을 보니 대주주라도 된 양 흐뭇하다.


HK자동차의 ITSP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S전자 혁신팀으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왔다. 90년대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 부활한 IBM의 혁신 사례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IBM 부활 스토리를 담은 장표를 들고 미팅에 나섰다.


"내용은 좋습니다만, 저희가 알고 싶은 건 구체적인 실행력입니다. 마케팅, 제품 개발, 공급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IBM이 어떻게 '시장지향적 포인트'를 전사에 녹여냈는지 그 디테일이 필요합니다."


2주 뒤 재방문 약속과 함께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나는 팀을 소집해 미국 본사와 밤낮없이 소통했다. 다행히 미국은 추석 휴가가 없었다. 90년대 당시 혁신을 주도했던 영역별 전문가들의 지식을 빨아들여, 전사 혁신을 '시장과 고객 지향'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관통하는 방대한 자료를 완성했다.


"와! 바로 이겁니다. 당장 저희 혁신팀 전체를 대상으로 발표해 주십시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발표는 일이 점점 커져 혁신팀 미팅을 거쳐 MDC 위원회로, 그리고 마침내 CEO가 주재하는 전사 임원회의로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었다.


당시 S전자는 외환위기 이후 제조·원가 우위만으로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운 기치는 MDC(Market Driven Company). 제조 중심에서 고객 우선·시장지향 경영으로 체질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선언이었고, 이는 곧 '시장지향 혁신(Market Driven Change)'을 의미했다.


수원 본사에서 열린 전사 임원회의 날. 전략컨설팅 펌의 딱딱한 보고가 끝난 뒤, IBM의 MDC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장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발표 후 강평에서 CEO는 "카피캣 제조 기업에서 브랜드 주도형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개발부터 제조, 영업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신호가 전사적으로 관통되는 구조를 강력히 주문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당시 현장의 분위기는 CEO 홀로 광야에서 'MDC'를 외치는 듯한 고독함이 느껴졌다. 임원들조차 Market Driven(시장지향)과 Marketing Driven(마케팅 주도)을 혼용할 정도로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 시절 뿌려진 '고객 가치'라는 씨앗은 결국 훗날 S전자를 세계 1위의 반열에 올렸다. 20만전자의 흐뭇한 수익률 뒤에는, 당시 우리가 함께 고민했던 그 치열했던 '체질 개선'의 고통이 거름으로 깔려 있었던 셈이다.


임원회의에서의 강렬한 발표 이후, 정식으로 컨설팅 제안 요청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세상을 바꿀 폭풍이 시작될 것만 같았지만, 현실의 시계는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멈춰버렸다. 실제 계약 최종 승인에 이르기까지 무려 6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었다. S전자의 MDC 전환은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기에, '실패해도 되는 연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제조로 먹고산 지가 몇 년인데 갑자기 마케팅 타령이냐"는 내부의 거센 회의론과 마주하며, 우리는 혁신의 당위성을 넘어 '실행의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해야만 했다.


애초의 제안은 3년에 걸쳐 전 사업부의 프로세스를 동시에 갈아엎는 거대한 설계도였다. 그러나 글로벌 제조 거물과 글로벌 서비스 리더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변화를 구성원과의 충분한 교감없이 한 번에 밀어붙이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것을.


수십 번의 미팅마다 범위는 가로세로로 정교하게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었다. "이 프로세스가 실제 현장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가?", "이 KPI가 현장의 왜곡을 불러오진 않겠는가?"라는 질문들이 칼날처럼 날아왔다. 예산과 범위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밀당은 소모적인 기 싸움이 아니라,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처절한 '돌다리 두드리기'였다.


결국 전략은 수정되었다. 전면 도입 대신 '단일 사업부 시범 프로젝트'를 통해 먼저 모델의 유효성을 검증하기로 한 것이다. 범위 역시 마케팅 프로세스 정립, 역량 프로그램 개발, KPI 포함 변화관리라는 '핵심 엔진' 구축으로 압축되었다. 이는 혁신의 축소가 아니라,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전쟁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최종 조율의 벽은 높았다. 이제 다 끝났나 싶으면 어김없이 "검토할 게 더 생겼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함께 고생하며 자료를 준비했던 팀원들의 눈에는 생기가 사라졌고, 나 역시 매일 밤 수만 개의 슬라이드 더미에 깔리는 악몽을 꿨다. 제안서는 누렇게 바랬고, 뜨거웠던 혁신의 의지가 지루한 절차 속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재처럼 느껴지던 어느 날.


"자, 이제 다 끝났으니 계약 합시다!"


혁신팀으로부터 처음 전화를 받은 지 꼬박 8개월 만이었다. 꿈에 그리던 소식이었지만, 막상 현실 같지 않은 소식이 들리자, 나의 내면에는 환호성 대신 깊은 침묵이 찾아왔다. 그토록 긴 시간 동안 갈구했던 '기회'가 이제는 거대한 '압박'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하아, 이제 진짜 시작인데...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 기업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온데간데없고, 당장 내일 아침 고객사 사무실로 출근해 무엇을 첫 장표로 내밀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방대한 IBM의 방법론과 S전자의 복잡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어 보였다.


막 시작한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워져 있었지만, 나는 한참 동안 꺼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전쟁터에 나갈 칼을 손에 쥐었으나, 정작 그 칼을 어떻게 휘둘러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한 패잔병처럼 막막했다.


그 막막함 속에서 내가 붙잡은 것은 결국 '현장'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그 혼돈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눈물겨운 실제 프로젝트 수행 에피소드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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