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아줌마. 책에서 제대로 자극받다

가키야미우의 이제 이혼합니다를 읽고

by 주부혀니


도서관 신간도서 부스를 훑어보다가 제목이 눈에 쏙 박혀서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게 된 책이 있다.

가키야 미우의 [이제 이혼합니다]

나 이혼하고 싶었던 걸까? 읽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제목이었다.


이 책은 출가한 두 딸과 가부장적인 남편을 둔 58세의 평범한 주부 스미코의 이야기다. 스미코는 급식소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알뜰하게 집안을 챙기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부장적인 데다 자신을 하나도 배려해 주지 않는 남편을 못 견디게 싫어하게 된다. 남편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 공황증세까지 생긴 상태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지만 노후연금과 집을 포기할 수 없어 마지못해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스미코. 여러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홀로서기로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행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세심한 묘사로 표현한 작품이다.


책의 제목이 [이제 이혼합니다]지만 가만히 읽어보면 이혼 장려서적은 아니다.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이혼하는 것의 중요성이 아니라 '의존적인 삶이 사람을 얼마나 위축되게 하는지'에 대해서다. 이 책에서는 여자가 일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보여준다.

맞벌이를 하면서 자녀를 돌보는 것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일을 가져야 하며 육아는 아내만의 몫이 아니라 부부 모두의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남편이 아내와 함께 육아를 책임지고 제 몫을 한다면 육아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음을 넌지시 속삭인다.


책을 읽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내 얘기가 떠오른다. 나는 결혼하고 맞벌이로 일하다가 둘째를 낳고 나서 일을 그만둔 케이스다. 큰애 낳고 맞벌이를 하면서 남편과 많이 싸웠었다. 남편은 육아를 자기 일이라 여기지 않고, 돕.는.것.이라 생각했고 육아를 하는 척만 했다. 육아의 대부분은 내 몫이었다. 3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귀를 했던 나는 갓난아이를 키우고 유축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전투? 끝에 퇴직하기로 정했다. 그 후로 십 수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육체적으로 매우 바쁘기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지만 아이들이 기관에 가고 여유 시간이 생기기 시작한 때부터는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육아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부업거리를 찾았다. 블로그도 하고 체험단도 하고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한 만큼 돈이 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나이는 40대 후반이 되었다. 이제 와서 나는 공허해졌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퇴직하기 전의 내 직장이 너무나 아깝다.


책 속에서 작가는 시종일관 내 손으로 돈을 버는 사람만이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은근하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저 멀리 타국에 사는 매서운 필력을 가진 작가에게 계속 수동공격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돈을 손에 쥔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지만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이 그저 돈을 번다는 단순한 의미뿐 아니라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힘'임을 떠올렸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철저히 외면하며 살아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의 틀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고, 탄력을 받아 작가의 소설을 10권 이상 빌려 읽어보았다. 겨울 끝무렵부터 늦은 봄까지. 때론 웃으며 때로는 상처를 입으면서 꿋꿋하게 그녀의 작품을 읽어냈다. 그녀는 매우 우직하게 일관된 메시지를 주고 있었는데 '세상 사람 저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품들은 '자립'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58세 여성 스미코가 홀로 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결혼, 맞벌이, 출산, 육아, 마찰, 휴직을 거쳐 퇴직, 전업주부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무엇을 잃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먼저 직장을 잃었고, 매달 월급을 받는 자의 생동감을 잃었으며, 집이 아닌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면서 느끼는 유능감도, 도전의식도, 자신감도 잃어버렸다. 물론 당연히 얻은 것도 있다. 그 세월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귀여운 아이들을 낳았고, 그들이 커 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별처럼 반짝이던 아름다운 순간들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내 개인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잃어버린 것이 많은 선택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가키야 미우의 [이제 이혼합니다]. 주인공 스미코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서 마치 동지를 만난듯한 반가움, 육아를 돕지 않는 남편에 대한 속 시원한 일갈, 자립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힘이 되는 위로가 담긴 책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한 권의 책을 통해 내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를 객관적으로 보게 해 준 좋은 책이다. 전업주부라면 반드시 공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추천하고 싶다.


그럼 이제는 중요한 하나의 질문만이 남았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조금 서글픈 기분이 들기는 해도 가슴속에 자립에 대한 의지가 솟는 것이 느껴진다. 전업으로만 살아왔던 편안한 날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파트타임 알바라도 내 손으로 번 돈이 통장에 꽂히는 그 기분을 다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 가지 모습으로만 살아왔던 것 같다. '집안의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나' 뿐만이 아니라 '사회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찾을 날을 기대한다.



덧붙임

돈이라는 것이 참말로 희한하다. 전업주부로 십 수년을 일해왔는데 손에 쥐는 것이 없다 보니,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 그렇다. 전업 주부도 소정의 월급을 따로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돈이라는 것. 단순히 물물 교환을 할 때 사용하는 재화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묘한, 뭐라 표현할 지 모르겠지만 아주 대단한 어떤 것이다. 매우 물질적이기만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힘과 노력과 사랑과 감사 같은 온갖 정신적인 것들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가치까지도. 물론 다른 나쁜 것들도 함께 녹아들어 있다. 피와 눈물과 비열함과 쓰라림과 고통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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